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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주봉에서 바라본 의상대(義湘臺, 587m), 소요산 주봉이다
偶入仙山無伴侶 우연히 벗도 없이 산에 올랐네
携壺木末一平頭 지팡이 끝에 술 한 병 달고
雲埋大壑松聲濕 구름 짙은 골짜기에 솔바람 불고
雨過層岩壁色秋 비 맞은 절벽은 가을 빛 짙어라
千古世情長太息 천고의 세정(世情)을 모두 잊은 채
百年豪興此遨遊 흥취에 겨운대로 여기 놀리라
登高睥下風塵裡 내려뵈는 속세는 쩨쩨하구나
塵裡衿裾幾馬牛 한 움큼 살림살이가 먼지투성이로세
―― 율탄 정진창(栗灘 鄭展昌, 1631~1697), 「소요산에서 생각에 젖어(遊逍遙山鴈懷)」
▶ 산행일시 : 2022년 10월 22일(토), 연무 많음
▶ 산행인원 : 7명(오기산악회)
▶ 산행코스 : 소요산역,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공주봉,일주문,소요산역
▶ 산행시간 : 6시간 32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1.0km
▶ 교 통 편 : 전철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9 : 31 - 소요산역, 산행시작
10 : 24 - 자재암 일주문
10 : 30 - 자재암(自在庵)
11 : 15 - 하백운대(440m)
11 : 45 - 중백운대(510m)
11 : 55 - 덕일봉 갈림길, 점심( ~ 12 : 15)
12 : 27 - 상백운대(559m)
13 : 10 - 나한대(571m)
13 : 40 - 의상대(587m)
14 : 19 - 공주봉(526m)
14 : 28 - 소요산 일주문
16 : 03 - 소요산 입구 맛거리, 산행종료
2. 소요산 등산안내도
▶ 자재암(自在庵)
그간 ‘코로나 19’로 중단되었던 오기산행을 재개한다. 산행은 설악산을 비롯하여 여러 산을 고려하였으나 소요
산으로 결정하였다. 시월상달 단풍시즌에 온 나라 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 터에 정체 없이 전철로 갈 수 있거
니와, 산 또한 특히 가을에 수려하고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단체산행으로서는 최적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사실을 우리 말고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전철 탈 때는 물론 내릴 때도 인산인해다.
오늘도 단풍보다는 사람 구경하게 생겼다. 너른 도로를 좁다 하고 간다. 소요산도 문화재관람입장료를 받는다.
2,000원. 경로우대 70세 이상. 소요산에 어떠한 문화재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예전에 소요산에 문화재관람료
징수가 문제가 되자(의정부지법은 징수할 법적근거가 없다고 했다), 자재암은 “국민관광지 소요산의 95%가 자
재암 소유로,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모든 등산로가 자재암 경내”라며 “관람료는 문화재 보존 및 전승, 사찰 산림
및 생태환경 보호, 오물 및 하수 처리 등의 비용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시인 김수영도 그랬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대로 아래 골짜기에 몰려 있는 가을을 들여다보며
성질 눅인다. 자재암 일주문. 현판은 국필(國筆)이라는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의 글씨다. 천년
고찰이라는 자재암에 썩 어울리는 필치다. 현판 바라보며 다소 위안을 얻는다. 일주문 지나면 원효대사가 수도
하였다는 원효굴과 원효폭포를 만난다. 이어 속리교 건너 공주봉 갈림길을 지나고 백팔계단 올라 금강문 지나
고 극락교 건너면 자재암이다.
도중에 양지바른 너른 터에 추담선사(秋潭禪師, 1898~1978)의 승탑과 공덕비가 있는데 그리로 올라가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어 나도 그냥 간다. 추담선사는 일제강점기에는 만해 한용운과 민족운동을 하였고, 해방 이후에
는 불교신문 초대 주간, 조계종 초대 교무부장, 총무원 교육위원, 조계종 원로회 원로 등을 역임하였고, 법주사
와 신흥사 주지, 이곳 자재암 주지도 지냈다 한다.
자재암 앞 옥류폭포는 옛 문인들이 많은 시를 남긴 명폭이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은 「문 앞 폭포(門前飛瀑)」에서
一道寒泉落遠峰 한 줄기 물줄기가 먼 봉에서 떨어지니
對門常噴玉玲瓏 문 앞에는 언제나 옥구슬이 날린다오
라 했고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는 「소요사(逍遙寺)」에서
亂峰當戶閮 봉우리들 위태롭게 둘러섰는데
飛瀑晒衣巾 떨어지는 폭포 물에 옷 다 젖는다
고 했다.
나한전 옆에 큼지막한 오석에 새긴 나한전 불사기가 소요산의 약전(略傳)이다.
글씨는 당대의 명필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이 썼다. 일중 김충현의 동생이다. 중후한 글씨를
감상하다 보면 약전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기 쉽다. 그 불사기 일부다. 글씨는 현장에서 직접 감상할 수밖에
없다.
逍遙山自在庵羅漢殿佛事記
海東釋苑末學文學博士 李鍾益 謹識
如初居士 金應顯 謹書
三千里錦繡江山을자랑하는우리東國은到處에名山勝地요또한寶刹蘭若이다. 東頭川市逍遙山은近畿의名勝인小
金剛으로일컬어왔다. 그가운데특히奇巖絶壁洞窟林壑飛瀑玉流의絶勝으로點綴된壺中洞天에자리잡은千年古刹
이곧自在庵이다. 그緣起에있어서新羅武烈王七年頃에元曉大師는竹杖芒鞋로山水에放浪하다가이곳에이르러自
然風景을사랑하여草庵을얽고山名을逍遙庵名을自在라하니無碍道人의逍遙自在의뜻을寄託함이다. 山아래平坦
한곳에二基의宮址가있으니一은搖石公主가元曉를追跡하여別宮을세우고薛聰을養育하던곳이요一은朝鮮太祖가
咸興으로부터還宮하던途中에逗留하던行宮이라고傳한다.(……)
자재암을 지나면 곧바로 데크계단 오르막이 시작된다. 하백운대까지 줄곧 가파르게 오른다. 차라리 예전에
슬랩을 돌아 오르는 돌길이 훨씬 더 나았다. 변화 없이 규칙적 반복적으로 오르는 길고 긴 데크계단은 제아무
리 건각이라도 금방 지치게 한다. 그리고 앞사람을 바짝 뒤따르다가는 그가 짚는 스틱에 머리통이 쪼일 것처럼
위태하다. 내 걸음이 아니라 앞사람 걸음으로 오른다. 그가 쉬면 나도 쉰다. 데크계단 끝나면 돌길 잠깐 오르다
암벽을 왼쪽 사면에 난 길로 길게 돌아 오른다.
3. 소요산 입구 계곡 주변
4. 소요산 입구 계곡 주변
5. 소요산 가는 길
6. 자재암 일주문,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의 글씨다.
7. 원효굴 앞에 있는 원효폭포
8. 등로 주변
9. 자재암 앞에 있는 옥류폭포
10. 나한대에서 바라본 의상대 오른쪽, 멀리 뒤는 감악산과 마차산
11. 멀리 왼쪽은 국사봉, 오른쪽은 왕방산, 가운데는 수위봉
12. 소요산에서 왕방산으로 가는 능선
13. 앞은 공주봉, 그 뒤는 마차산, 그 뒤는 감악산
▶ 하백운대(440m), 중백운대(510m)
하백운대 정상을 30m쯤 남겨둔 절벽 위가 전망 좋은 대(臺)다. 골짜기 건너 나란한 나한대와 의상대가 지호지
간이다. 아침에 낀 연무를 날씨가 맑은 조짐으로 보았는데 전혀 아니다. 연무가 더 짙어졌다. 원경은 물론 근경
도 흐릿하다. 하백운대. 많은 등산객들이 쉰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 잡고 입산주 탁주 마신다. 아이스케이크 장
사는 목청 높여 아이스케이크! 하고 외친다. 이 힘든 고지에 지고 왔는데 가격이 얼마나 할까? 우리 동네 무인
판매점에서는 600원이다.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2,000원이다.
하백운대 안내도 내용이다.
“(…)소요산은 일찍이 절묘한 산세와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단풍으로 작은 금강
산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양사언, 이율곡, 성혼, 허목 등 당대의 문인, 학자, 시인들이 이 산을 찾으며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이 산에 머물러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 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매월당 김시습의 위 시 원문이 궁금했다. 이 내용만으로는 인터넷에서 찾기가 막연하였다. 수 시간을 들여 동두
천시에서 펴낸 PDF 파일인 『동두천시 30년사』를 알게 되었고, ‘제4권 문화 ․ 예술’에 동두천 산천에 대한 시를
망라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도 물론 수록하였다. 그의 「소요사에 붙여(題逍遙寺)」라는 시다. 그 전문이다.
확실히 한시는 원문을 살피면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路入寒溪洞 길은 찬 계곡으로 들고
千峯落照明 봉우리들은 노을에 물들었네
四山皆崒嵂 둘러선 산은 높고 높은데
一澗正淸泠 계곡물이 차고 맑구나
殿有金銀像 절집에 부처 있어도
僧多雲水情 중들은 모두 절을 떠났네
上王曾駐輦 옛 임금 계시던 곳이건만
徑廢少人行 길이 끊어져 찾는 이 없네
하백운대에서 올려다보는 중백운대가 대단한 첨봉이다. 숲속에 들면 단풍이 아름답고, 봉우리에 오르면 둘러선
연봉이 아름답다. 소요산 일주 산행은 하백운대로 시작하는 것이 순방향이다. 바위 오를 때도 마주 오는 사람이
없으니 지체할지언정 정체는 하지 않는다. 중백운대 안내도에는 고려 말의 고승이자 해동불교의 법조인 태고
보우선사가 「백운암의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이곳의 절경을 읊었다며 그 시를 들고 있다.
소요산 위의 흰 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동두천시 30년사』 ‘제4권 문화 ․ 예술’에 수록된 태고 보우(太古 普雨, 1301~1382)의 「백운암의 노래(白雲巖
歌)」는 모두 8연이다. 그 중 제1연과 제2연은 다음과 같다.
逍遙山上多白雲 소요산 위로 흰 구름 둥실 떠
長伴逍遙山上月 산 위에 뜬 달과 더불어 맴도네
有時淸風多好事 한 줄기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
來報他山更寄絶 산중에 으뜸이라 일러 주노니
白雲無心編太虛 하늘 모퉁이의 무심한 저 흰 구름
其如紅爐一點雪 붉게 단 화로의 한 점 눈 같구나
行雨四方無彼此 어느 곳 가림 없이 비를 뿌리니
是處是物皆欣悅 비 맞는 곳곳마다 기꺼워하네
14. 중백운대와 상백운대, 그 뒤는 종현산
15. 앞 오른쪽은 나한대, 그 왼쪽 뒤는 중백운대와 상백운대
16. 소요산 주봉인 의상대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 기념사진 찍으려고 길게 줄섰다.
17. 공주봉 가는 등로 주변
18. 공주봉 가는 등로 주변
19. 상백운대
20. 앞 오른쪽은 의상대, 멀리 가운데는 상백운대
21. 앞 왼쪽은 의상대
22. 의상대
▶ 상백운대(559m), 나한대(571m), 의상대(587m), 공주봉(526m)
중백운대는 울퉁불퉁한 바위로 터가 좁아 점심자리로는 적당하지 않아 긴 한 피치 더 오른다. 덕일봉 갈림길이
있는 데가 널찍하고 평평하여 좋다. 주변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어 마치 단체로 가을소풍 온 것 같다. 덕일
봉(0.7km) 쪽은 조용하다. 상백운대(0.3km) 오르는 길은 완만하다. 중간에 오른쪽으로 선녀탕(1.0km)을 오가는
길은 막았다. 지난여름 큰 비로 망가져 보수 중이다. 금줄 넘어 그리로 가는 사람을 보고 저마다 저러면 못 쓴다
며 한 마디씩 한다.
당분간은 숲속 길을 간다. 상백운대는 사방 키 큰 나무숲이 울창하여 아무 조망이 없다. 칼바위 구간은 날등을
타고도 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는데 날등 약간 비킨 오른쪽 사면으로 길을 냈다. 바위와 어울린 노송이 아름다
운 곳이다. 왼쪽(동쪽)으로 왕방산을 가는 능선 갈림길을 지나면 바닥 친 안부다. 나한대 0.6km. 그 절반을 가파
른 데크계단으로 오른다. 지레 허벅지가 뻐근하다. 주변의 추색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달래곤 한다.
나한대. 조망은 여전히 연무에 가렸다. 의상대 가는 길. 바윗길을 약간 내렸다가 정체구간인 철계단과 철다리를
지나 한 피치 오르면 의상대다. 정상 표지석과 함께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섰다. 데크전망대는
소요산 최고의 경점이다. 뿌연 연무로 감악산과 마차산, 종현봉,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천보산, 칠봉산이 흐릿
하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6~1595)도 이맘때 소요산을 올랐다. 그때도 이 봉우리는 의상대였다. 미수의
「소요산기(逍遙山記)」 일부다.
“암벽을 오르고 끊어진 골짜기를 따라 바위에 올라 구봉(九峯)을 바라보니, 산의 돌이 모두 기이하게 생겼다.
중봉(中峯)의 바위구멍을 지나 현암(懸庵)의 동남쪽으로 나와서 의상대(義相臺)에 오르니, 여기가 최정상이고
그 북쪽은 사자암(獅子庵)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폭포를 지나 벼랑을 따라 의상대에 오르기까지의 높이가 9000
장(丈)이다. 10월의 산은 깊고 골짜기는 음산한데, 아침에 비가 온 뒤라서 시냇가 돌에 낀 푸른 이끼는 봄과 같
고, 단풍잎은 마르지 않았다.
금상 4년 계묘년(1663, 현종4) 10월 기해일에 공암 미수는 기록한다.”
우리나라 명찰치고 의상대사의 이름이 없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의상대사(625~702)는 원효대사(617~686)와 배
다른 형제다. 귤산 이유원(橘山 李裕元, 1814~1888)은 그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1권, 순일편(旬一編)에서
삼막(三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악산(冠岳山)은 시흥(始興)과 과천(果川)의 경계에 있다. 그곳에 삼막사(三幕寺)라는 절이 있는데, 삼한 시대
에 지어진 고찰이다. 신라 승려 원효(元曉)는 성이 설(薛)이고, 의상(義湘)은 성이 아(牙)이고, 윤필(尹弼)은 성이
윤(尹)이니,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관악산에서 나누어 살았는데 원효의 일막(一幕)은 지금
폐허가 되었고, 의상의 삼막(三幕)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윤필의 이막(二幕)은 염불암(念佛庵)이다.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삼성산(三聖山)이라고 한다.”
(冠岳在始興果川之界。有三幕寺。三韓古刹也。新羅僧元曉姓薛。義湘姓牙。尹弼姓尹。一母異父兄弟也。分居
冠岳。元曉一幕今只墟。義湘三幕尙存。尹弼二幕念佛庵是也。世謂之三聖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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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주봉 한 봉우리만 남았다. 아껴 천천히 걷는다. 의상대 데크계단 내리고 잘난 길 따라 왼쪽 사면으로 돌
아간다. 가다 보니 날등 직등한 인적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아깝다. 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는 여태의 봉봉보다
좀 더 떨어져 있다. 긴 호흡한다. 공주봉도 가파른 데크계단으로 오른다. 데크계단 오르면서 뒤돌아보는 경치는
오늘 산행 중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의상대는 소요산의 주봉답게 너른 품을 가진 든든한 준봉이다.
데크계단 다 오르고 평탄한 숲속을 조금 더 가면 공주봉 정상이다. 요석공주에게 헌정된 봉우리이리라. 산정
무대이기도 한 광장에 가득한 양광이 따스하여 일광욕하기 좋다. 여러 등산객들과 함께 우리도 휴식한다. 조망
은 동두천 쪽으로 훤히 트이지만 연무로 흐릿하여 볼 것이 없다. 하산! 구절터로 내린다. 모처럼 완만한 흙길인
긴 내리막이다. 너럭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의상대가 전면을 드리운 대폭 병풍이다.
데크계단을 내리고 돌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데는 다 지났다. 골짜기다. 가을이 여기에 몰려 있다. 둘러보면
일목일초가 천자만홍(千紫萬紅) 고운 꽃떨기다. 그런 가을을 간다. 두고 가는 경치가 차마 아깝고 앞의 경치가
조급히 궁금하여 열 걸음에 다섯은 뒤돌아보며 주춤주춤 내린다. 백팔계단 앞에 다다르고 대로의 군중 속에 묻
힌다. 그들 얼굴이 가로수 단풍에 물들어 벌겋다. 우리 얼굴도 그러리라. 맛거리 두부마을에 들어 술잔 좀 기울
인들 벌건 얼굴을 주기 탓으로 볼 사람은 없을 것.
23. 공주봉에서 구절터 쪽으로 하산 길
31. 구절터 부근에서 휴식
32. 원효굴이 가깝다
33. 일주문 가는 길
첫댓글 단풍이 곱게 물들었네요. 저도 가을이 가기전에 찾아봐야겠습니다.
소요산은 소요하기 좋지 산행하기에는 어중간해요. 마차산, 감악산을 함께 엮으면 괜찮지만.^^
단풍이 피처럼 붉네요...
멋진 단풍 구경 잘 했습니다.
너무 칩거하지 마시고 이 가을날 좀 돌아다니기도 하셔.^^
소요산 단풍이 의외로 멋지지요. 오기팀에서 올 8월에 백령도 가신 분들 계시지요...?
소요산은 가을 산이더군요.
아직 백령도 간 오기팀을 찾지 못했습니다.^^
1년만에 소요산을 다시 보게되네요...서울 근교에서 단풍으로 빼어난 곳 중 하나일듯합니다...구경 잘 했습니다^^
작년에 왕방산을 넘어 왔지요.
그때 왕방산에서 조망은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조망이 보장된다면 언제라도 가겠는데...^^
@악수 그러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