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 솎다
박성우
추석 내내 비가 내렸고
다음 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저걸 언제 솎아내지?
한 달 전쯤에 씨앗을 넣은
김장무는 비좁은 이랑에서
서로의 야윈 어깨를 밀치며
가까스로 자라나고 있었다
씨앗을 너무 많이 넣었나?
무씨를 심은 뒤 한 이레 뒤에
여린 것들 몇을 솎아내긴 했으나
도대체 야무지지를 못해서
하나 마나 한 일이 되고 말았다
추석 지난 지 나흘째가 돼서야
텃밭에 들어가 김장무를 솎는다
이게 나은가? 저게 나은가?
뽑아내는 건 순식간인데,
어떤 걸 뽑아내야 할지를 몰라
시간만 속수무책으로 지나간다
이쪽 걸 뽑아낼라치면
문득 줄기가 좋아 보이고
저쪽 걸 뽑아낼라치면
문득 이파리가 좋아 보인다
나는 왜 이렇듯
뭔가를 결정하는 일에 약한가
겨우 한 이랑의 무를 솎는데
한나절이 다 지나갈 지경이다
다리는 진즉부터 저려오고
허리도 묵직하니 눌려오는데, 나는
겨우 한 이랑의 무도 솎지 못하고
다부지지 못한 마음이나 들여다본다
* 박성우(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음. 신동엽창작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음.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박성우의 무를 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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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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