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1315 --- 물도 모이면 폭도가 될 수 있다
산불이 한참 타오르면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면서 무섭다. 신기라도 있는 양 불씨가 사방팔방으로 휘익 날아다니고 확확 겁나도록 번져나간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이미 이성을 잃고 안하무인으로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평화롭던 산에 불이 나면서 삽시간에 초토화가 된다. 보통은 좀처럼 불붙지 않는 생나무와 생풀도 가리지 않는다. 마치 기름이라도 쏟아부은 것처럼 이글거린다. 작은 나무든 큰 나무든 닥치는 대로 불쏘시개가 되는 것 같다. 타오르는 불길과 시커먼 연기에 질식되면서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겨울이나 이른 봄날의 나무는 낙엽 지고 잎이 없는 몸통에 빈 가지로 땔감이나 마찬가지다. 가뭄에 심한 갈증을 겪다가 우르르 몰려 쏟아지는 폭우다. 삽시간에 검붉은 물이 성난 군중처럼 살기를 품고 내닫는다. 닥치는 대로 삼키고 넘어뜨리고 그간 숱하게 자라던 잡풀의 뒤통수 하나 보이지 않는다. 텅 비었던 냇바닥에 물이 가득 차고 둑이 잘름잘름한다. 성깔 난 물은 기세 당당하게 바람을 일으키듯 썰렁할 만큼 냉기류가 흐른다. 걸리적거리면 두말없이 훑어가는 무법자로 움찔움찔하다. 그간 쫓겨 다니고 숨어 지내다 나타나 한풀이라도 하는 것 같다. 조용하던 냇물이 무서운 폭도로 돌변하면서 대단한 반전이다. 텅 비었을 때는 넓게만 보였는데 냇바닥을 가득 채우니까 너무 좁아 보인다. 하나는 별스럽지 않고 힘도 없다. 그러나 자꾸 모이면 다르다. 나뭇가지 하나는 꺾을 수 있어도 몇 개가 겹치면 부러지지 않는다. 혼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한 귀로 흘려버려도 무리 지어 항의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이해시키고 해산하기에 골몰한다. 굽힐 줄 모르는 힘은 탄력을 받는다. 아무 힘이 없던 작은 물이 많아지면서 확 달라진다. 폭우가 쏟아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불길이 산으로 번지면 엄청나다. 섣불리 다가갈 수 없으며 불길 잡기가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다. 화재의 현장에서 잽싸게 빠져나오지 못하면 생명에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듯이 군중의 힘은 무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