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2024년은 부활절이 유월절보다 22일 빠릅니다. 즉 예수님이 먼저 부활하시고 다음에 22일후에 십자가에 못박혓다는
뜻이 됩니다.
부활절은 3월 31일이고, 유월절은 4월 22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 뿌리는 니케아 공의회에 있습니다.
325 AD 에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 맞은편, 우크크다라 남쪽의 니케아에서 카톨릭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기독교와 카톨릭이 분리된지 얼마안되었고, 아마도 기독교도인 도나티스트들과 기타 기독교인들도 다수 참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1800명이나 되는 대표들이 모였으며 콘스탄틴 황제가 여러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결의한 내용들은 그다지 나쁜 결의안은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니케아 신조를 보면, 성인통공이나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상당히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그 회의의 결의안의 주요 사항 3가지는
1) 아리안 주의 정죄 -삼위일체 공언
2) 성직자 권위 강화
3) 유월절 대신 이스터 축제 행사
로 집약할 수 있는데, 1) 은 문제가 없고, 성직자 제도 문제는 이그나티우스때부터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3) 유월절을 무시하고 이스터로 바꾼 것입니다.
그 회의 참석자들중에 몇명이나 유대인들이 있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100AD 가 지난후부터 기독교계의 리더쉽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율법이 무시되었고, 율법을 말하면, 유대주의라고 정죄하였고,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논리가 적용되었으며, 성경 해석에서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교회가 면밀히 검토하여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이스터 축제를 시행하게 되었는데 말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 하면서, 축제의 명칭은 이스터로 혹은 독일에서는 오스타로 부르게 되었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무시하고
이스터를 실행하도록 이집트 노회에 공지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터는 부활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면서도 성경을 떠나서
1) 일요일에 행사하고
2) 춘분 이후 첫 보름날 이후이어야 하고
3) 유월절은 무시할 것이 결의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유월절 보다 빠른 부활절이라는 명분의 이스터가 행사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23장의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의 스케줄을 무시하는 것이며, 고린도 전서 5장 7-8절에서 유월절을 누룩없는 떡으로 지키자는 바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며, 고전 15장 3, 4절 대로 예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을 묵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잡신교리나 인간 교리가 카톨릭 안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오는 사건이 바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관하여 일부 기독교인들이나 카톨릭 신자들은 아무날이나 그냥 그분의 부활을 기념하면 어떠하냐?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기뻐하고 찬양한다, 너희는 맨날 칭얼거리냐?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마구잡이로 날을 정해놓고 기념행사를 하는것이 아니라, 날을 정해놓고, 장소를 정해놓고, 그분의 방식대로 경배받기를 원하시며, 모이기를원하십니다. 그것을 모에딤이라고 합니다. 사탄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특히 종말에 법과 시를 폐한다고 하였습니다. ( 다니엘 7장 25절).
여러분, 앞으로 무슬림들과 카톨릭이 합작하여 세계를 지배하고, 예수님의 죽으신 날을 무함마드가 죽은 6월8일로 정하고 그날을 십자가의 날로 정하고 그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삼는다면 괜찮겠습니까> 그 행사에서 알라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하면 좋아하시겠습니까? 알라에게는 아들이 없다고 선포해도 좋겠습니까?
사탄의 음흉한궤계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릅니다. 그 마리아를 카톨릭은 하늘 여왕, 천황모후 라고 부르는데 그 칭호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격발시켰습니다( 예레미야 7:18, 44:17-25) 그 하늘황후의 아들이 바로 카톨릭의 예수이며, 하늘황후의 아들이 카톨릭의 하느님인 것입니다. 카톨릭의 거듭남은 물세례를 말합니다. 카톨릭에서도 예수가 중보자라고 하며, 그 중보자와 인간 사이의 간구 기도자가 바로 마리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로마서 8장 26절은 우리를 위해 성령께서 중보기도, 간구 기도를 하신다고 하고 있으며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라고 딤전 2장 5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궤계를 알고 또다른 예수( 고후 11:4) 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2024. 4. 1 하토브
다음은 이스터에 관한 글만 다음의 사이트에서 뽑았습니다.
Separation of Easter computation from Jewish calendar[edit]
The feast of Easter is linked to the Jewish Passover and Feast of Unleavened Bread, as Christians believe that the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of Jesus occurred at the time of those observances. As early as Pope Sixtus I in the 2nd century, some Christians had set Easter to a Sunday in the lunar month of Nisan. To determine which lunar month was to be designated as Nisan, Christians relied on the Jewish community. By the late 3rd century some Christians began to express dissatisfaction with what they took to be the disorderly state of the Jewish calendar. They argued that contemporary Jews were identifying the wrong lunar month as the month of Nisan, choosing a month whose 14th day fell before the spring equinox.[102]
Christians, these thinkers argued, should abandon the custom of relying on Jewish informants and instead do their own computations to determine which month should be styled Nisan, setting Easter within this independently computed, Christian Nisan, which would always locate the festival after the equinox. They justified this break with tradition by arguing that it was in fact the contemporary Jewish calendar that had broken with tradition by ignoring the equinox and that in former times the 14th of Nisan had never preceded the equinox.[103] Others felt that the customary practice of reliance on the Jewish calendar should continue, even if the Jewish computations were in error from a Christian point of view.[104]
The controversy between those who argued for independent computations and those who argued for continued reliance on the Jewish calendar was formally resolved by the Council, which endorsed the independent procedure that had been in use for some time at Rome and Alexandria. Easter was henceforward to be a Sunday in a lunar month chosen according to Christian criteria—in effect, a Christian Nisan—not in the month of Nisan as defined by Jews.[7] Those who argued for continued reliance on the Jewish calendar (called "protopaschites" by later historians) were urged to come around to the majority position. That they did not all immediately do so is revealed by the existence of sermons,[105] canons,[106] and tracts[107] written against the protopaschite practice in the late 4th century.
These two rules—independence of the Jewish calendar and worldwide uniformity—were the only rules for Easter explicitly laid down by the Council. No details for the computation were specified; these were worked out in practice, a process that took centuries and generated numerous controversies, some of which remain unresolved. In particular, the Council did not seem to decree that Easter must fall on Sunday.[108] This was unnecessary as it resolved against the Quartodecimani, who celebrated on any day of the week, in favour of the Churches who postponed the celebration to the following Sunday. See the extract from the Letter of the Council of Nicaea to the Egyptian Church, cited above.
Nor did the Council decree that Easter must never coincide with Nisan 15 (the first Day of Unleavened Bread, now commonly called "Passover") in the Hebrew calendar. The Finnish Orthodox Church explains, "According to the definition of the Council of Nicaea in 325, Pascha is celebrated on the first Sunday after the full moon following the vernal equinox, but always after the Jewish Passover. The date of the vernal equinox was then defined as March 21."[109] L'Huillier notes the success of this strategy - Orthodox Easter has never preceded Passover.[110]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Council_of_Nica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