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722 --- 강화도는 본래 평화로운 땅이었다
강화도로 들어가는 강화대교에 이어 두 번째 길목인 초지대교를 넘어 초지진이다. 대뜸 써늘한 바닷바람이 스며든다. 초지진은 우리나라의 수군진지 중 하나로 프랑스의 극동함대가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하였던 병인양요와 미국의 아세아함대가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하였던 신미양요 그리고 일본군함 운양호가 쳐들어와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다. 국운이 걸린 전투로 그때의 포탄 자국이 아직껏 남아있다. 상처를 입어 외과수술까지 받은 소나무 두 그루는 이제 노병이 되어 울퉁불퉁한 몸집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나 생생한 현장을 지켜본 종군기자로 지울 수 없는 지난날을 증언하고 있다. 갈대밭이 흔들린다. 마치 초병이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람을 타고 탄약 냄새도 묻어나지 싶다. 하늘을 올려다보라. 저 간척지를 보라. 생명의 텃밭인 갯벌을 보라. 구름과 새와 바람만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남북을 오가고 있다. 고깃배 몇 척 떠 있고 갈매기 대신 오리 떼가 노닌다. 멀지 않을 북쪽 하늘을 바라본다. 강화도는 우리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수도권으로 이어진 국토의 허리통으로 중심부의 들머리가 서해로 나가는 관문 역할 하는 요새다. 임진강은 오늘도 유유히 흘러들고 바닷물이 빠지면 황해도 지방까지 걸어 다니기도 하였던 곳이다. 강화도는 본래 평화로운 땅이었다.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던 참성단이 있다. 지금은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한다. 섬마을 처녀의 수줍은 모습에 얼굴 붉히던 총각 선생님의 교육열도 있었다. 강화도령이 농사를 짓고 나뭇짐을 지던 시골 청년에서 철종임금이 되기도 했다. 국난을 당하면 안전한 피난지로 사고를 설치하였다. 호국불교의 도량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 창건된 전등사가 있고 우리나라의 4대 관음 성지로 불리는 곳 중 마지막 사찰 보문사가 부속 섬 석모도에 있다. 그런가 하면 섬으로 귀양지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남북이 대치하며 머리맡이 북한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