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어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운 영국의 '슬림'장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도 흔히 최후의 한 발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라는 명령을 종종 내리 지만,이 명령을 진정으로 실행할수 있는 유일한 군대는 바로 일본군 뿐이다."
그의 부대는 남태평양의 전 전선에서 일본군의 이른바 '만세돌격'을 수없이 경험했고,그 때마다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서양식 합리주의적 시각으로 볼 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짓이 바로 그 일본군의'만세돌격' 이었다.
일본군은 전술적으로 방어에 임해야 할 상황에서도 거꾸로 돌격을 했다.
심지어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자기네 영토에 상륙하는 미군을 맞아 소수의 인원으로 방어 작전에 임해야 할 이오지마나 오끼나와 전투에서 조차 요새안에서 상륙부대를 저지하는 방어전을 펴 는 대신에 총검과 군도를 휘두르며 자살적인 돌격을 감행해 왔다.
일본군의 전투원칙에는 '방어'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마저 개조해 버린 이런 무모한 자살공격의 감투정신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천황을 위해 자기 한 몸의 헌신을 강조하는 온갖구호가 난무한 구 일본군안에서도 유독 강조되었던 말이"칠생보국"과 "꽃은 벚꽃,사람은 무사"라 는 구호였다.
칠생보국이란 천황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한번죽는 것만 으로는
결코부족하고,일곱번을 다시 태어나 그때마다 천황을 위해 죽어야만 비로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다는
뜻이니,하물며 한번으로 끝나는 만세 돌격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벚꽃는 일본의 국화다.벚꽃은 거의 하루밤 사이에 일제히 만개하여 장관을 이룬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지극히 짧은 순간에 그 작은 꽃잎을 눈 처럼 휘날리며 일제히 져버린다.
시들고 메마른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꽃잎을 표표히 휘날리며 일제히 져버리는 이 벚꽃의 생리는 치욕스런 패배보다 깨끗한 죽음을 택한다는 이 무사도 정신을 대변한다 할수 있다.
'사무라이'라고 불리운 무사계급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귀족들이었으니,이들이 가진 이런 죽음의 미학은 일반 서민들이 감히 가까이 하기 힘든 고매한 철학이었고,존경받아 마땅한 사상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를 깃점으로 일본이 군국화 되면서 1억2천의 모든 '황국신민'이 모두 사무라이가 될 수있는 '영광스런'기회가 주어졌다. 명망있는 무사집안의 후예들인 장군과 장교들이 아니더라도,평범한 농삿꾼과 어부의 아들들조차 '황군'의 군복을 입는 순간 사무라이가 될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무라이가 된 이상 무사도를 지켜야 한다. 반자이 도즈께끼(만세돌격)는 명백한 전력의 열세에 놓인 일본군이 천황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고 무사도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일본군은 전멸을 옥쇄라고도 부르고,만세돌격을 '옥쇄돌격'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기왓조각으로 굴러다니느니,옥처럼 부서지겠다"는 중국의 고사성어 와전옥쇄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년이상 전승되어온 무사도정신이 하늘에서 실현된 것이 이른바 ' 가미가제 특공대'이다.
-가미가제 특공대 결성 배경-
1274년 대제국 원(몽고)나라의 '쿠빌라이 칸'은 일본정벌에 나섰다.
기마병을 앞세운 육상전력에는 대적할 상대가 없었지만,해전에는 경험이 없 었으므로
이른바 '아우의 나라'였던 고려와 연합한 이 함대가 출정했을때 때 마침 심한 폭풍우가 몰려왔고,
함대는 일본땅에 발도 디뎌보지 못한채 대부분 이 바다속에 수장당하고 말았다.
그 7년뒤인 1281년의 제 2차 원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고,
일본은 이 두 차례의 태풍을 전설상의 일본 시조인 '아마테라쓰 오오까미'가 일본열도를 구하기 위해 보낸
신의 바람,즉 '가미가제 (神風) '라 불렀다.
그로부터 700년이 지난 1944년,일본은 또 한번의 신의 바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서전의 승승장구도 이미 명운이 다했고,메리아나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가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 이제 일본이 '절대 생명선으로 설정한 필리핀에 미군이 들이닥치는 것은 실로 시간문제였다.
열세의 일본 해군과 육군의 항공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항공기의 부족 그 자체보다도 숙련된 조종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기초적인 이륙과 착륙을 간신히 할 수 있을 뿐,기본적인 회피동작 조차 서툰 신참 조종사들이 미군기가 벌떼처럼 잉잉대는 미군 기동함대의 방어망을 뚫고 적 항공모함에 타격을 입힌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자 조종사들 사이에서 '다이아다리(體當)'에 대한 수근거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이아다리란 폭탄을 실은 기체를 통째로 적함에 돌입시키는 자살공격으로, 그전부터 기체가 손상을 입거나 감투정신에 불타는 몇몇 조종사들에 의해 결행된 전례가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전투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행동이었고,이번에는 처음부터 죽음이 100%보장된 이런 자살특공대를 정식으로 편성하자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드디어 일본 연합함대 총사령관 도요다 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지만, 장군은 일선조종사들의 이런 충정에 찬사를 보냈을뿐, 부대의 편성을 승인하지 않았다.
꽃다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최종 결정권자로서 양심의 가책과 함께 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낸 것이 마닐라에 주둔하고 있던 제 26 항공전대의 사령관 아리마 해군소장이다. 전형적인 무사집안의 후예로,강직한 성품에 검소한 생활로 부하와 상관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1944년 10월 15일,미군 기동함대가 루손섬 앞바다에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었을때,갑자기 아리마 소장은 자신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공격대를 인솔하겠다고 나섰다.
이 때 출격한 비행대는 함상폭격기 12대, 제로 전투기 86대로 구성되었고,장군은 이 전투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제로 전투기를 몰고 미국 항모 프랭클린에 격돌했던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무전 메세지는 ...,
"황국의 흥망 이 이 일전에 걸려 있다.귀관들은 혼신을 다하라." 였다.
아리마 소장은 직속상관 도요다 대장에게 작전을 결행할 것을 자신의 죽음으로 진언한 셈이었고, 이 사건은 정식으로 가미가제 특공대가 발족되는 계기가 되었다.
필리핀 전역의 일본군 비행장에서 제로 전투기를 모두 긁어 보아도 30대 남짓하고, 그 비슷한 숫자의 구식 공격기가 전부였다. 고작 60대의 이 전투기와 미숙련 조종사들로 거대한 강철의 성벽-미군 기동함대를 막아내야 하는 오오니시 중장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오오니시중장의 설득에 마침내 도요다 총사령관도 굴복했다-
특공대의 편성을 승인한 것이다.
-그들의 관,제로 전투기-
정작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자 젊은 하사관 조종사들 사이에서 지원자가 쇄도했다.
(구 일본군은 전투 조종사가 장교로만 구성되는 미군과는 달리 오장(병장)~조장(상사)에 이르는 사관들이 전투조종사들의 주력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미가제 독꼬다이(특공대)라는 드라마틱한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필리핀 마라카트 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제201해군항공대의 선임참모 이노구찌 중좌였다.
남은 일은 이들 하사관들을 인솔할 장교를 선발하는 일이었다.
적임자로 지목된 사람은 '세끼유끼오'대위였다.
1944년 10월 20일 아침,가미가제 특공대는 이런 곡절을 거쳐 탄생되었다.
최초의 공격대는 24명으로 이들은 다시 시키시마,사쿠라,야마도,아사히의 4대전대로 나뉘었다.
각각 일본열도,산벚꽃,대화혼(일본정신),아침해라는 뜻을 가진이 이름들은 일본의 고전 와까(고전시)에서 따온 것이었다.
'일본(시키시마)의 대화혼(야마토)이 무어냐고 묻거든,그것은 아침해(아사히)에 붉게 타는 산벚꽃(사쿠라)이라고 대답하겠네...'
최초의 가미가제 24명을 모아놓고 오오니시 장군은 직접 훈시를 했다.
"우리 일본은 정녕 국난의 때를 맞이하였다.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대신도,대장도 아니다.하물며 나와 같은 일개 사령관도 아니다.그것은 제군들과 같은 순수한 청년들이다."
"제군들은 이미 신이다.살아 있는 신이다.신이 된 이상 이승에서 욕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군들의 희생이 과연 얼마만한 전과를 올렸는지는 궁금할 것이다.
적함에 격돌하는 순간,제군들은 영원한 잠에 들게 되므로 그것은 알 도리가 없는 것이유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뒤 그것을 천황폐하께 아뢰올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그 점은 안심하고...떠나라."
-가미가제의 의식-
가미가제로 지원한 대원들은 장엄하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하나의 의식을 치른다.
우선 지원자는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잘라 각자 이름이 씌여진 봉투에 담았다.
이들은 유골조차 찾을수 없으므로,이 봉투가 고향으로 보내져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중에는 이렇게 머리카락이 든 봉투를 비행대 행정반에 제출하는 것이 곧바로 가미가제에 자원하는 의미로 통하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필승','칠생보국','만세'등 비행대의 구호가 새겨진 흰 머리띠를 지급받는다.
흰 머리띠는 전통적으로 일본무사들이 출정할 때 머리에 매는것으로,
투구속에서 흐른 땀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지만 출격 며칠전부터 비행 헬멧위에 묶은 이 머리띠는 곧 '살아있는 군신' 으로서 모든 장교와 사병들로부터 흠모와 존경을 받는 자랑스런 상징이 되었다.
출격 전날에는 간단한 회식이 베풀어지기 마련이다.
이미 모든 생필품이 극도로 궁핍해진 전쟁 막바지 였지만 가미가제 대원들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맞는 이 식사는 대체로 호화로운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보통 이 자리에는 천황이 직접 하사하였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술 정종이 한순배 돌아가게 마련이고, 일본국가와 자랑스런 죽음을 칭송하는 군가 '우미유까바'의 합창으로 끝나는 이 죽음의 회식은 으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하니, 아무리 왜곡된 죽음의 찬양으로 무장한 일본군이지만 죽음을 앞둔 인간 본연의모습만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전 당일에는 출격에 앞서 산화한 선배전우들의 위패를 모신 신사를 참배하고,천황이 있는동쪽을 향해 절을 한다.
그리고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마시는 물한잔씩이 배급된다.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물은 영혼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어서 전쟁에 출전하는사무라이들이 맨마지막으로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라 물이며, 임종을 앞둔 사람의 입에도 물을 흘려 넣는다.
결국 가미가제 대원들은 산채로 이 임종수를 마시는 것이며, 그들이 타고갈 제로 전투기는 바로 그들의 관인 것이다.
만세 삼창이 끝나면 그들은 전투기에 몸을 싣고 차례차례 날아 올랐고,그렇게 죽어 갔다.........
그들의 결심이나 고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작자들 때문에 애꿎은 젊은이들이 개죽음 당했다는 겁니다. 죽을려면 지들이나 죽을 것이지 왜 물귀신처럼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몬답니까? 뭐...사실 관계를 따진다면 그 양반들도 군인들로서 벼랑에 몰린 전선을 어찌어찌 해보려고 딴에는 노력을 한 거긴 하겠
지만...좀 소름끼치는건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국가'행세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거죠. 또 문제인게...그 쪽발이들의 정신이 우리나라 사람들 한테나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의 정신력'어쩌구 하면서 신비한 오리엔탈리즘 까지 뒤집어 쓰면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저 카미가제 단원들 대부분이 강제 징집된 자들이고 대부분은 마약이나 다름없는 진정제에 쩔어서 비행기에 올려졌다는 겁니다. 제가 본 기록에 의하면 카미가제로 선정된 걸 알게된 어린 병사들은 울부짖으면서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고 교관들은 그들을 호된 매질과 약물로 다스렸죠. 뭐 선발대로 나선
쟁쟁한 군인 아저씨들 중에는 대단한 양반들도 있었겠지만, 딱하게도 대부분 저런 상태였다는 겁니다. 일본인들도 사람이니까요. 다만, 좀 걸리는게 서양인들은 일본인들이 저렇게 산채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거나 배가르면서 죽는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역사 다큐를 만들어도 꼭 저런 장면에만 집착을 하더군요. 영화를
만들어도 그렇고...볼 때마다 기분이 더럽더군요. 뭐 없는 사실 지어내는 건 아니지만, 왜 꼭 저런 것만 집착하는지...--+ 근데, 좀 웃기는 건 제가 여태껏 본 일본의 사극영화나 역사드라마에서 할복하는 장면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근데,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만든 사극에서는 사무라이들이 배 가르는
제가 보기에는 조선군도 기본적인 정신상태는 저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좋은 예로 신미양요때 광성진 포대에 있던 병사들은 미군이 육박하자 포로가 되는 것을 겁내 자살했다고 하더군요. 병사들의 이용가치를 있는대로 뽑아내고 버리려는 동양적 군사사상이 극도로 발현된 형태가 저런 자살특공대라는...
첫댓글 그렇군요. 쪽발이들 하여간 그 정신은 알아줘야해 ....천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가 나라를 위해서라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
그들은 천황이 국가였으니까요... 비난은 많이 하지만 오오니시 장군이나 토요타 장군의 결심이나 고뇌 등을 생각한다면 과연 어떨까요...
그들의 결심이나 고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작자들 때문에 애꿎은 젊은이들이 개죽음 당했다는 겁니다. 죽을려면 지들이나 죽을 것이지 왜 물귀신처럼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몬답니까? 뭐...사실 관계를 따진다면 그 양반들도 군인들로서 벼랑에 몰린 전선을 어찌어찌 해보려고 딴에는 노력을 한 거긴 하겠
지만...좀 소름끼치는건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국가'행세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거죠. 또 문제인게...그 쪽발이들의 정신이 우리나라 사람들 한테나 서양 사람들에게 '동양의 정신력'어쩌구 하면서 신비한 오리엔탈리즘 까지 뒤집어 쓰면서 미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저 카미가제 단원들 대부분이 강제 징집된 자들이고 대부분은 마약이나 다름없는 진정제에 쩔어서 비행기에 올려졌다는 겁니다. 제가 본 기록에 의하면 카미가제로 선정된 걸 알게된 어린 병사들은 울부짖으면서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고 교관들은 그들을 호된 매질과 약물로 다스렸죠. 뭐 선발대로 나선
쟁쟁한 군인 아저씨들 중에는 대단한 양반들도 있었겠지만, 딱하게도 대부분 저런 상태였다는 겁니다. 일본인들도 사람이니까요. 다만, 좀 걸리는게 서양인들은 일본인들이 저렇게 산채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거나 배가르면서 죽는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역사 다큐를 만들어도 꼭 저런 장면에만 집착을 하더군요. 영화를
만들어도 그렇고...볼 때마다 기분이 더럽더군요. 뭐 없는 사실 지어내는 건 아니지만, 왜 꼭 저런 것만 집착하는지...--+ 근데, 좀 웃기는 건 제가 여태껏 본 일본의 사극영화나 역사드라마에서 할복하는 장면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근데,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만든 사극에서는 사무라이들이 배 가르는
장면이 꽤 나온다는 겁니다.....참... 어찌됐든, 카미가제 단원들은 저승에서 자기 창조주를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또 전후로는,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는 얼씬도 않았던 자기네 천황을 만나면 할 말이 더 많겠네요. :P
제가 보기에는 조선군도 기본적인 정신상태는 저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좋은 예로 신미양요때 광성진 포대에 있던 병사들은 미군이 육박하자 포로가 되는 것을 겁내 자살했다고 하더군요. 병사들의 이용가치를 있는대로 뽑아내고 버리려는 동양적 군사사상이 극도로 발현된 형태가 저런 자살특공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