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찬가
강 문 석

남항바다에서 바라보면 거의 수직으로 곧추서 하늘로 치솟은 천마산. 형세가 이러하다보니 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전란의 숱한 애환을 간직한 영도대교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고 그 옆으로 나란히 누운 부산대교와 근년에 육지가 섬을 바짝 껴안은 형국으로 들어선 남항대교와 부산항대교가 이국적인 풍광으로 다가온다. 그냥 아름답다면 끝날 것을 왜 사람들은 굳이 ‘낮과 밤이 아름다운 부산’으로 노래할까. 누가 뭐라 하더라도 부산을 부산답게 느끼기 위해선 천마산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천마산은 하나의 거대한 전망대처럼 느껴진다. 천마산 정상엔 조선시대에 이미 국토의 남동부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던 봉수대가 있었다. 다대포를 출발한 봉수가 이곳 천마산과 구봉산 황령산 장산을 차례로 지나 경상도 땅 의성 안동을 거쳐 한양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천마산에선 남쪽으로 장군산 자락의 암남공원이 송도해안으로 산줄기를 뻗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몰운대로 뻗은 산줄기가 아득하다. 바다를 향해 마지막으로 뻗은 산줄기가 몰운대에서 끝나는 모양새지만 실제론 바다 속으로 무한히 뻗어있을지도 모른다.

1960년대 중반 몸담았던 직장 사무실에선 천마산이 가까웠다. 당시에도 천마산 아래였던 송도를 자주 오가면서도 산을 오를 생각은 한 번도 하질 못했다. 현직 후 은퇴자 단체를 맡은 것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곳 사무실에서 보내면서도 혼자서는 천마산을 오른 기억이 없다. 청년기에 사진동호인들을 따라 야경을 찍으러 초저녁에 두세 번 산을 오른 적이 있을 뿐이다. 누가 산에서 조망한 부산을 반세기 전과 오늘로 구분해서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두 시대를 흑백과 컬러로 대비해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백년 전 도시 모습이 칙칙하고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오늘날 하늘을 찌르는 도심의 마천루와 항만에 정박한 선박들마저도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하고 있으니 대비가 명징해지는 것이다. 천마산은 근년 들어 조각공원까지 품었다. 그 소문에 끌려 몇 십 년 만에 산을 오르면서도 아기자기한 동화 속 얘기를 들려줄 작품보다 탁 트인 조망으로 부산의 바다와 항구를 느끼는데 몰입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곳엔 세월의 격랑에 떠밀려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들로부터 묵묵히 반백년 세월을 견뎌온 섬과 산들까지 혼재하여 황혼에 이른 사람의 비감을 부추긴다. 삶에 찌든 때를 날려버릴 수 있는 호연지기는 산 정상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인데 천마산의 호연지기가 단연 으뜸이란 생각이 든다. 산 정상을 남쪽으로 약간 내려서면 흡사 인공으로 다듬은 것처럼 둥글고 평평한 암반이 나타난다. 여기서는 북쪽을 빼곤 두루 조망할 수 있다.

육지의 3백고지 산에서 섬인 영도로 전기를 공급하던 최초의 송전선로가 이곳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산에서 내려다보면 선로는 바다로 풍덩 빠져든 것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다. 땅에서 올려다보면 공중을 가로질러 일렬로 하나씩 매달린 둥근 물체가 당구공 크기로 보이지만 실제론 축구공만큼이나 크다. 야간에 항공기가 전력선에 접촉하지 않도록 반짝반짝 불을 밝혔던 항공표시등이다. 이제 송전선은 선진화된 기술력에 힘입어 땅속과 바다 속으로 다중 연결되어 공중으로 바다를 건넌 선로는 더 이상 소용없게 되었다.

이 설비는 이제 곧 짚라인Zipline으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 짚라인은 이미 국내에서도 섬나라 제주를 비롯하여 남이섬 문경 설악 용인 청도 충주 화천에서 성업 중이지만 이곳 천마산만큼 긴 거리를 내려 꽃이듯 하강 비행하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물 것 같다. 1990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짚라인은 이제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벗어나 보편화된 아웃도어 레포츠의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국내에도 첼린지 코스와 자연체험학습을 결합하여 자연 속에서 즐기는 어드벤처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짚라인 종점이 될 변전소에서 젊은 날 4년 가까이나 일했던 인연이 있어 세계적인 명소로 등장할 천마산 짚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천마산을 중심으로 들어서는 관광명소로선 짚라인이 사업구상단계라면 이와 쌍벽을 이룰 송도해상케이블카는 거의 완공단계에 와있다. 암남공원을 출발하여 해안산책로를 따라 거북섬까지 해상에 세운 철탑은 현재 양생단계에 있으니 케이블만 가선한다면 곧 운행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천마산은 산기슭이 완만하여 활엽수가 주를 이루고 해발고도가 낮아 작은 구릉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서구와 사하구를 경계 짓는 천마산의 주요지질은 층을 이룬 암반이다. 전날까지 매섭던 한파는 물러가고 새봄을 느끼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태평양을 건너왔을 포근한 바닷바람이 향그럽다. 사람들은 천마산 능선과 비슷한 높이의 감천문화마을 고개에서 등반을 시작하라고 권하지만 몇 번 오르내린 적 있는 최단코스를 올랐다.

그 절반은 심하게 경사진 남부민동이고 나머진 숲길이다. 가풀막 길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여든은 됨직한 노파도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오르고 있었다. 산에 가시느냐고 인사했더니 이 동네에 산다고 했다. 힘들어도 건강엔 도움이 될 거라는 위로를 하자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노파는 버거운 삶을 지탱할 기력을 죄다 잃었는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콘크리트 바닥에 그만 털썩 주저앉았다.

‘남부민’이란 동네 이름엔 재물이 많고 넉넉하다는 뜻의 ‘부자 富’자 들어있지만 남부민동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다. 동란 때 판자촌으로 들어선 빈촌이기 때문이다. 천마산은 조선시대에 초원이 우거져 나라에서 말을 키우던 ‘국마장’이었고 하늘에서 내려와 살았다는 용마가 살았다는 전설도 전한다. 산세 또한 남쪽으로는 장군산 북쪽으로는 엄광산 서쪽으로는 승학산이 날개를 펴서 하늘을 나는 형상이라는 전설까지 남아있다.

‘천마산 10리길 등산로’는 서구 종단 트레킹 숲길 중 본래 천마산을 따라 형성된 옛길에다 부대시설을 만들고 노후 등산로를 정비한 트레킹 코스로 2시간이 걸린다. 일상을 벗어나 짧은 시간에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10리길 등산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등산로에선 김해공항을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다대포 쪽 일몰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흡사 한반도 지형을 떠올리게하는 감천문화마을도 또렷하게 나타난다. 밤의 천마산에선 홍콩의 밤보다 더 화려한 부산의 야경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