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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4개의 기둥'
유대감, 삶의 목적, 초월성, 스토리텔링
흔히들 행복하기 위한 길은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상적인 직업과 완벽한 남자친구, 멋진 집을 갖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저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뿐만이 아니라 제 친구들도 모두 근심이 가득했고 방황을 했던 시절이 있었죠.
그래서 저는 대학원에 다시금 진학하여 긍정심리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저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행복을 쫒는 삶 만으로는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의 삶은 객관적으로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점점 더 희망을 잃어가고 있고
우울하고 외롭다고 느낍니다. 바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보단 인생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행복한 것과 삶의 의미를 갖는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많은 심리학자들은 행복감을 안정감 있고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조금 더 심오한 문제입니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삶의 의미'란
누군가와 '유대감'을 느끼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행복해져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보다 더 삶이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갖는 사람들은 회복력이 더 좋고 학교와 직장에서 더 잘 해내고 있으며
심지어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5년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심리학, 신경과학, 철학 서적 수천 장을 읽었죠.
그리고 그 모두를 종합해보니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4개의 기둥'이라는 기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기둥은 바로 '유대감' 입니다.
유대감이란 당신이 있는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고 역시
당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당신이 믿는 것, 혹은 증오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당신의 가치가 결정되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유대감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생깁니다.
그리고 그 유대감은 타인과 함께할 때 존재하고 그 관계를 성숙시킬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이겠죠.
예를 들어서 제 친구 조나단은 매일 아침 뉴욕의 늘 같은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입합니다.
판매원과 제 친구는 단순히 거래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잠시 안부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친구 조단은 신문을 구입할 잔돈이 없었죠.
그러나 그 판매원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걱정 말고 그냥 가져가세요."
하지만 조나단은 꼭 계산을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그 잔돈 때문에 근처의 다른 가게에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샀습니다.
그리고 조나단이 가판대로 돌아와 계산을 하자 그 판매원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판매원은 상처를 받았거든요.
판매원이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제 친구 조나단은 그 '호의'를 거부한 겁니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한두 번 만난 지인을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고
누군가가 저에게 얘기하는 데 저는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수도 있지요.
이런 행동 모두 타인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그로 하여금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행동이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사랑으로 관계를 이끈다면 서로를 연결하는 끈이 생길 것이고
서로를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유대감이란 삶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가족과 우정을 결속시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둥은 '삶의 목적'입니다.
'목적'을 찾는 것은 행복하게 만드는 직업을 찾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무엇인가를 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목적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고
많은 부모들의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목적의 중요함'은 당신의 강점을 이용해 '타인을 돕는다' 라는 것이고
몰론 직업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목적은 우리가 어떤 일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직장 내에서의 무기력함, 실직, 낮은 취업률 들은 이런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사람들의 '존재 이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치있는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방황을 하기 때문이지요.
몰론 꼭 직장을 통해서만 목적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은 당신이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고 그 이유라는 것은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세번 째 기둥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넘어서는 것, 즉 '초월성'입니다.
이 '초월성'의 상태는 자주 경험할 순 없지만 그건 바쁜 일상 속에서
당신을 기쁘께 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좀 더 높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될 겁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초월성을 경험한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교회에서 경험을 한다고 하는군요.
저는 작가이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초월성을 경험합니다.
종종 시간도, 장소도 초월한 어떤 공간에 있다고 느끼지요.
그리고 이 '초월성'의 경험은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연구에서 학생들에게 200피트 높이의 유칼립투스 나무를 1분 동안 바라보게 했습니다.
잠시 후 그 학생들은 자신 위주의 마음이 사라지고 타인을 도와줄 기회가 생기게 되자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번째 마지막 기둥은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상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삶을 보다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지요.
하지만 당신 스스로가 '당신 이야기의 저자' 이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이야기 전개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단순히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금 '이야기'를 '수정'하고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몰론 그것은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두는 것이어야하겠죠.
저는 풋볼 경기 중 부상으로 두 다리를 못쓰게 된 청년 에메카를 만났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고 스스로 이렇게 말을 했지요.
"풋볼 경기를 할 때 내 삶은 정말 멋졌는데 지금 내 꼴 좀 봐."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삶은 꽤 괜찮았는데 지금은 정말 형편없군."이라 말하면서 근심이 많고 우울해합니다.
청년 에메카 역시 한동안 그런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부상을 당하기 전에 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없었습니다.
파티를 즐겼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부상을 이겨내면서 저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지요."
이렇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수정하면서 그의 삶 역시 변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에메카는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바로 두 번째 기둥인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자인 댄 맥아담스는 이것을 '회복의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나쁜 상황이 좋은 상황으로 회복되는 이야기를 말하지요.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이끄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회복, 성장, 사랑으로 정리하여 들려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당신 스스로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이
자신을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지 잃은 것은 무엇이고
또 얻게 된 것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합니다.
에메카 역시 이런 방식을 사용했지요. 몰론 그것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우리 모두 애쓰며 살고 있지요.
그리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감싸 안으면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가 생겨서
당신을 지탱해주는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유대감, 목적, 초월성, 스토리텔링 이것들이 바로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4개의 기둥'입니다.
저는 어릴 적 운이 좋게도 이 '4개의 기둥'을 모두 품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몬트리올의 저희 집에서 수피교도의 예배당을 운영하셨습니다.
수피교란 빙빙도는 수피춤을 추는 관습이 있는 종교이고 시인 '루미'와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작은 사랑의 실천의 일환으로 모든 생명을 위해 봉사합니다.
자신을 헤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늘 선한 마음을 갖도록 혼련하지요.
그리고 자아를 통제하라는 삶의 목적을 종교를 통해 갖게 했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났고 그렇게 제 삶에서 종교적인 활동을 멈추게 되자
저를 지탱하고 있던 끈이 끊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저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찾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저의 여정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수피교도 예배당에서의 종교활동은
삶의 의미를 찾는 진정한 문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건축물을 세울 때 기둥들이 중요하듯이 삶의 기둥이 있으면
우리는 깊이 있는 삶을 진정으로 살 수 있습니다.
결속력이 강한 다른 사회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좋은 사회이든 나쁜 사회이든 말이지요.
범죄 조직이든 사이비 종교집단이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기둥을 사용해서 살아야 할 이유,
그리고 죽어야 할 이유를 사람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도록 좋은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우리 제도 안에서 이런 '4개의 기둥'을 세워서 개개인별로
그들의 최대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매일매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창조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추가해야 합니다. 몰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아버지가 겪으셨던 잊지 못할 경험을 떠올립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달 후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실 뻔했습니다.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셨고 저는 물어보았지요.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말이지요.
그때 아버지는 꼮 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합니다.
저와 저의 오빠를 위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의지가 생겼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당시 응급 수술을 위해 마취 주사를 맞고 잠들기를 기다리던 때에
10을 거꾸로 세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 대신
저와 저의 오빠의 이름을 주문처럼 반복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죽음에 이른다면 그가 말하는 마지막 단어가 우리의 이름이길 바라셨지요.
저의 아버지는 모수이자 수피교인이였습니다.
검소한 삶을 사셨고 훌륭한 인생을 사셨던 겁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그가 살아야 할 의미를 생각하셨죠.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가족이라는 '유대감' 속에서 아버지라는 그의 '삶의 목적'을 가지고
저희의 이름을 반복하는 '초월적인 명상'을 하셨으며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스스로 쓴 당신만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삶의 의미'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는지 보여줍니다.
행복함은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이 너무 좋거나 혹은 너무나 괴로울 때 여러분을 지탱해주는 것은 행복함이 아닌
'삶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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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해솔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