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4. 주일 큐티
요한3서 1:9 ~ 15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관찰 :
1) 악한 것을 행하는 자 디오드레베
- 9절.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 사도 요한은 선교사들을 보내며 그들에 대한 추천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추천서를 가지고 간 이들을 교회에서 맞아들이지 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선교사들을 접대할 것과 그들의 필요를 채워달라는 사도 요한의 당부를 디오드레베가 무시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3서를 쓰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디오드레베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오만한 자였습니다. 디오드레베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였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속사도 시대에 사도들의 후계자요 지역 교회의 최고 권위를 가지는 장로 혹은 감독의 위치에 대해서 야심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합법적인 초대 감독이 되고자 했고, 그로 인해서 사도 요한의 영향력을 넘어서고자 사도 요한의 간섭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는 교회 내에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서 사도 요한의 지도를 따르는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서 요한이 파송한 형제들을 지원하는 일을 고의적으로 거부했던 것입니다. 디오드레베가 보이는 개인적 야망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의 선교 사역을 방해하고 뒤틀려지게 만드는 죄성은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 10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 사도 요한은 이 일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을 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오드레베의 악함은 첫째, 사도 요한과 그 일행을 중상모략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사도 요한의 권위를 깎아내리고자 한 것입니다. 둘째, 사도 요한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두어 자” 적어서 보낸 추천서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셋째, 선교를 위하여 나그네 된 이들을 섬기고자 하는 이들의 행위를 금하고, 그들을 교회에 내쫓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말씀입니다. 가이오는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그의 진리를 따르는 행위가 폄훼되었던 것입니다.
2)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하는 자 데메드리오의 모범
- 11절.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사도 요한은 의로운 행위를 했음에도 악행을 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고 있는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 무리의 악한 것을 본받지 말 것을 권면하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이러한 사도 요한의 권면으로 새 힘을 얻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비록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구원은 사실은 참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 12절.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 사도 요한은 선한 것을 본받아야 하는 예로 데메드리오를 들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요한3서를 가이오에게 전달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에베소의 은장색이었던 데메드리오입니다(행 19:23). 둘째는 사도 요한이 나중에 빌라델비아의 감독으로 명했다는 데메드리오로서 그의 준말이 데마입니다(골 4:14; 딤후 4:10; 몬 1:24). 이 중에서 어떤 데메드리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자였고, 진리를 통해서도 흠이 없는 자였고, 또 사도 요한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데메드리오에 대한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도 데메드리오에 대해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의 모범은 가이오가 따를 만한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선교사로서 나그네 된 자들을 섬기는 선한 모범을 보이는 데메드리오와 가이오가 연합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연합은 선교사들을 섬기는 일을 냉대하는 디오드레베 무리들의 악한 방해를 극복하고 계속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3) 끝 인사
- 13절 ~ 14절.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 사도 요한은 선교적 논쟁에 휘말려 있는 가이오에게 쓸 것이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선교적 상황에서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대 교회라고 해서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문제와 박해의 상황에서 정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도 요한은 성령을 의지하여 권면할 것이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권면을 글로만 표현할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히 볼 것을 기대하고, 만나서 말하도록 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이 이 글을 쓰는 것은 디오드레베의 악의적인 방해로 말미암아 선한 일을 하는 가이오가 힘들어 하는 것을 빨리 조치를 취해서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가서 그 문제들을 다스릴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 15절.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 사도 요한은 세 가지 차원에서 문안을 하고 글을 맺습니다. 첫째는 평강을 가이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이오의 여러 친구들의 문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친구들은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교사들을 섬기는 일에 동조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가이오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는 자신의 일에 동의하고 함께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힘을 내어 문안하라는 권면입니다. 사도 요한은 선을 행하고 악을 따르지 않는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을 가이오에게 다시금 인식시켜 주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초대 교회 당대에도 이단들뿐만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도 사도 요한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고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욕심을 채우고자 사역을 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악함을 따라서는 안될 것입니다.
2) 악한 모범이 있는 반면에 또 선한 모범이 있는 법입니다. 디오드레베의 나쁜 모범에 반하여 데메드리오의 선한 모범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대다수의 악행을 하는 자들에 의해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선행을 하는 자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종말을 고했어도 진작에 종말을 고했을 것입니다. 악이 선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선이 이깁니다. 그래서 선을 선택하고 따라야 합니다.
3) 사도 요한은 선과 악의 갈림길에 놓여 핍박을 받고 있는 가이오에게 선한 길을 갈 것을 이 글을 통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도 주어지는 권면입니다.
적용 :
1) 구원은 열매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분명히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 땅에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고 구원의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이 땅의 것에 착념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잊고 산다면 그것은 참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2) 선교사들을 돕는 것은 선한 일에 속합니다. 교회는 할 수 있는 분량에 따라 선교사역들을 돕고 또 주도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3)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입맛에 따라서 성도들을, 교회를 이끌어 가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정말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단호하고, 안타까움으로 이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부딪히는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4)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