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3.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청춘은 언제 또 피나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남인수님은 18세의 나이에 데뷔,
44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취입한 노래가
천 여 곡이 넘고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불멸의 명가수 남인수.
사람들이 참 좋아하여
자주 찾아 듣는 남인수의
노래 가운데 듣기 힘든 노래 중의
한 곡이 바로
낙화유수입니다.
남인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이봉룡
이난영은 잘 알아도
이난영을 길러낸 오빠
이봉룡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김시스터즈는 잘 알아도
그 그룹 막내 민자의 아버지
이봉룡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914년에 목포에서 태어난 이봉룡은
1933년 토월회가 태양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목포공연에 나섰을 때
박승희 단장을 잦아
이난영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뒷날까지
이름을 떨친 명가수가 되었고
김씨스터즈와 김보이스를 길러내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은 200여 곡의 명 가요를 만들어 내면서
알아주는 작곡가로 성장했다.
이난영이 불러
히트한 목포는 항구다,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
박경원의 나폴리연가,
고운봉의 선창, 백년설의 고향설,
그가 작곡한 노래는 오랜기간
사랑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落花流水
낙화유수(落花流水), 김다인으로 발표된
그 시대 최고의 반열에 있던
문학가이자 작사가
조명암의 가사에
이봉룡이 곡을 붙혀
최고의 가수 남인수가 부른
낙화유수
1942년에 발표된 노래다.
그 낙화유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 노래의 원작가 조명암이 월북해서
금지곡이 되자
박남포가 곡을 바꾸어 불렀다.
박남포는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의
또다른 이름이다.
1962년 남인수가 세상을 떴을 때
낙화유수처럼 세상을 떴다며
그 낙화유수 노래와
남인수의 떠남을 연계시키기도 했다.
이 낙화유수를
강남달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다.
1927년 상영된 영화 낙화유수에서
부른 주제곡을 강남달이라고 한다.
강남달이 그 낙화유수의 주제곡으로
불렸기 때문에
혼동이 일어난듯 하다.
이정숙이 부른 강남달과
신 카나리아가 부른 강남달이 있다.
일제강점기 조명암과 쌍벽을 이룬
또 한분의 작사가로 박영호가 있다.
수 많은 노래가 박영호에 의해서 쓰였고
조명암이 나오기 전 박영호는
최고의 작사가로 통했다.
이 박영호가 사용한 김다인이라는 필명은
조명암도 함께 썼다.
그래서 종종 조명암 작사노래와
박영호 노래가 혼동되는 수가 있다.
이 낙화유수는 조명암의 작품이다.
조명암이 월북작가여서
오랜동안 그 주옥같은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
그것을 안타갑게 생각한 작사가들이
그 노래를 자기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했거나
노래 가사를 일부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생겼다.
조명암의 노래가
추미림이나 박남포 등으로
되어 있는 노래들이 많다.
추미림이나 박남포는
당대 최고 작사가의 한사람인
박창오, 진방남, 반야월이다.
조명암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되어 있을 때
그 노래를 관리 해준 샘이다.
박창오는
2012년 3월 26일 세상을 뜨셨다.
조명암 노래는 이분 외에
다른 분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명암으로 바로 잡히는 경우도
많음을 말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