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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쿨 호수의 야생백조>
The Wild Swans at Coole by William Butler Yeats (1916)
The trees are in their autumn beauty,
The woodland paths are dry,
Under the October twilight the water
Mirrors a still sky;
Upon the brimming water among the stones
Are nine-and-fifty swans.
The nineteenth autumn has come upon me
Since I first made my count;
I saw, before I had well finished,
All suddenly mount
And scatter wheeling in great broken rings
Upon their clamorous wings.
I have looked upon those brilliant creatures,
And now my heart is sore.
All's changed since I, hearing at twilight,
The first time on this shore,
The bell-beat of their wings above my head,
Trod with a lighter tread.
Unwearied still, lover by lover,
They paddle in the cold
Companionable streams or climb the air;
Their hearts have not grown old;
Passion or conquest, wander where they will,
Attend upon them still.
But now they drift on the still water,
Mysterious, beautiful;
Among what rushes will they build,
By what lake's edge or pool
Delight men's eyes when I awake some day
To find they have flown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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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호의 야생백조 (이창배 역)
나무들은 제각기 곱게 가을로 단장하고,
숲속 길들은 메마르다,
10월달 석양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추며,
돌과 돌 사이 넘치는 물 위엔
백조가 쉰아홉 마리.
처음에 저 수효를 세어 본 이래
열 아홉 번째 가을이 닥쳐 왔구나.
채 셈을 마치기도 전에
후루룽 모두 날아 올라
날개 소리도 요란하게
단절된 큰 원을 그리며 선회하다 흩어지곤 하더니,
저 눈부신 새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제 가슴이 아프다.
모든 것이 변했구나, 해질 무렵,
이 호숫가에서 처음으로
머리 위에 쇳소리 같은 날개 소리 들었을 때는,
발도 가볍게 거닐었던 것인데,
여전히 피곤을 모르고 사랑하는 것들 끼리끼리
차디찬 다정한 물 속에서 헤엄치거나,
중천에 솟아오르는구나.
그들의 가슴은 늙지 않아,
열정과 패기가 가는 곳 어디서나,
항상 그들을 따르는구나.
이제 저것들 고요한 물 위에
신비롭고 아름답게 떠 있다.
내 언젠가 잠깨어 저것들 날아가 없음을 알게 되는 그 날엔
어느 호숫가에, 어느 웅덩이 가에,
어떤 골풀 사이에 집 짓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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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호수의 야생 백조들 (이세순 역)
수목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숲속 길들은 메마르고,
시월의 황혼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치는데,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위에는
백조가 쉰 아홉 마리 떠 있다.
내가 처음 그 수를 세어본 이래
열 아홉 번째 가을이 다가왔다.
그때 나는 보았었다, 다 헤아리기도 전에,
돌연히 모두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며
끊긴 큰 원으로 돌다 흩어지는 것을.
저 눈부신 백조들을 봐 왔건만,
지금 내 가슴은 아프다.
모든 것이 변했다, 해질녘,
이 호숫가에서 처음으로,
머리 위에 저 영롱(玲瓏)한 날개소리 들으며,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이래로.
아직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들끼리
백조들은 차갑고 다정한 물결에서
헤엄치거나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그들의 가슴은 늙지도 않아,
어디를 돌아다니든 열정과 패기가
여전히 그들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백조들은 고요한 물위에
신비롭고 아름답게 떠 있는데,
저것들이 어느 호숫가 웅덩이 옆
어떤 골풀 속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어느 날
내가 잠 깨어 그들이 날아간 것을 알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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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호의 백조 (김철수 역)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 오솔길은 보송보송 말라있네.
시월의 저녁노을 아래서
호숫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추네.
찰랑찰랑 넘치는 물 위 돌들 사이로
쉰아홉 마리 백조들이 헤엄쳐 다니네.
내가 백조들의 수를 처음 헤아린 이래
열아홉 번째 가을이 찾아왔네.
내가 숫자를 다 헤아리기도 전에
그것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한 날갯짓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다가
이윽고 흩어져 멀리 날아가 버렸지.
지금 저 눈부신 새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알알이 저려오네.
이 호수를 처음 방문하던 날 황혼녘에
백조들의 퍼덕이는 날개소리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이 호숫가를 산책했지.
그러나 그 때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네.
백조들은 항시 젊음을 간직한 채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이 짝을 지어
정감어린 물 위를 헤엄쳐 다니거나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네.
어느 곳을 헤매고 다녀도 그들에겐
열정과 패기가 언제나 함께하리.
고요한 물 위에 떠있는 그들 모습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답구나.
언젠가 내가 잠에서 깨어나
그들이 날아가 버렸음을 알게 될 때
그들은 어느 호숫가 혹은 연못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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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호(湖)의 백조 (정현종 역)
나무들은 가을 빛으로 아름답고
숲속 오솔길은 메마른데
시월 황혼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춘다.
바위 사이 넘치는 물위엔
백조 쉰아홉 마리.
내 처음 세어본 이래
열아홉번째의 가을이 찾아왔구나.
그때는 미처 다 세기도 전에
모두들 갑자기 솟아올라
커다란 부서진 파문을 그려 회전하며
날개 소리도 요란히 흩어지더니.
저 눈부신 것들을 보아온 지금
내 가슴은 아프다.
맨 처음 이 물가에서
머리 위의 요란한 날개 소리
황혼에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는데
모든 게 지금은 변하였구나.
아직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들끼리
차가운 정든 물결 속에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것들의 가슴은 늙지 않았다.
어디를 헤매든 정열이나 패기가
아직도 그들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고요한 물위를 떠간다.
신비롭고, 아름답게
어느 골풀 속에 그들은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연못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내 어느 날 깨어
그것들이 날아가 버린 걸 알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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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호수의 야생백조 - 간단한 해설
이 시는 가을이 짙어 가는 10월의 저녁 무렵 활기찬 야생 백조들이 유유히 떠 있는 쿨 호수의 아
름다운 정경을 배경으로, 실연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노년기에 들어선 시인 예이츠 자신의 막막하
고 참담한 심경을 표현한 빼어난 서정시입니다.
예이츠가 쿨 호수를 처음 방문한 것은 32세 때 모드 곤(Maud Gonne)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슬픔에 빠져 있던 1897년 가을이었습니다. 이 시가 쓰인 시점은 그로부터 19년의 긴 세월이 흐른
1916년 가을 예이츠의 나이 51세 때입니다. 이 때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 사건의 주동자로
곤의 남편 존 맥브라드 소령(Major John MacBride)이 처형된 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청혼했다가
다시 거절당하고, 그녀의 딸 이졸트(Iseult)에게서까지 청혼을 거절당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였습니다.
이렇듯 시인은 처음 이 곳을 방문했던 젊은 시절에 그랬듯이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그
의 연인에게서 받은 실연의 상처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호수 주변
의 가을 풍경과 지칠 줄 모르는 야생 백조들이 빚어내는 광경은 그에게 위안을 주기는커녕 그의 가
슴을 아프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시인이 젊었던 그 시절에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자연과 동화되려
고 노력하며 백조의 수효를 헤아려보기도 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며 백조가 헤엄치거나 날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건만, 이제는 그의 모든 것이 변해버려 저 백조들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
계의 것들로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사랑도 얻지 못한 채 가슴에 멍들고 힘없는 늙은이가 된 시인과는 달리, 저 백조들은 지치거나 늙
지도 않고 여전히 열정과 패기를 지니고서 차가운 물 속에서도 짝들끼리 다정하게 헤엄치거나 힘
차게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야생 백조는 단순히 유한한 자연계의 미물이 아
니라, 신비로운 존재로서 지상과 하늘의 두 영역을 넘나드는 멸·불멸의 이중적 존재인 것이지요.
유한하고 속절없는 자연세계의 삶에 얽매여 있는 늘그막의 시인으로서는 저 시공을 초월하여 언
제나 활기차게 사는 백조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그가 죽어서
영적인 존재로 눈을 뜰 때, 편재성(遍在性)을 띤 저 불멸의 백조들이 어디에 둥지를 짓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이것은 또한 시인 자신이 죽어서
불멸의 영적인 존재가 되고 나면, 저 백조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불멸의 세계로
이끌어주리라는 믿음의 피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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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호수의 야생백조 -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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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호수의 야생백조 (아오스팅 역)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젖어 있고,
숲속길은 메마르고,
시월의 황혼 아래 호수물은
고요한 하늘 비추네,
돌 사이로 넘치는 물결 위에
쉰 아홉 마리 백조 떠있구나.
이들을 처음 세어 본 지도
열 아홉 해가 지났구나.
그때 나는 보았지. 다 세기도 전에
날개 소리도 요란히
모두 갑자기 솟아올라
터진 큰 고리를 이루어 선회하며 흩어지는 것을.
이 눈부신 새들을 보아 왔지만,
이제 내가슴은 저린다.
모든 것이 변했구나!
황혼녘 이 호숫가에서 처음,
머리 위로 종소리 같은 백조의 날개짓을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거닐었거늘,
여전히 지칠줄 모르고, 연인끼리,
백조들은 정든 차가운 물살에서 노닐거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그들의 가슴은 늙지 않았구나;
어디로 떠돌던, 열정과 패기가
언제나 저들을 따르는 구나.
이제 백조들은 잔잔한 호수물 위로 떠다닌다,
신비롭고, 아름답다;
내 언젠가 잠 깨어 저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떤 골풀 사이에 둥지틀고,
어느 호숫가, 어느 연못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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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답지만 차갑고 쓸쓸한 시라고 생각했는데...
해설을 읽고 아오스팅님 시를 읽으니 마치 맨발로 호숫가에 서있는 기분이네요.
압축된 언어....이 가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늘 필요한 정보와 알고 넘어가야 할 사회의 이슈를 이해할 수 있게 좋은 글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예이츠의 시 중 가을이면 유독 생각나는 시..
10월의 마지막 밤 상념에 지세우며 올렸네요.
20대에 읽었을 때의 옛 기억이 아스라한데
예이츠가 이 시를 쓴 게 만 51살.. 어느듯
제가 딱 그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 봅니다.
차분하고 정제되면서도.. 아련한 슬픔..
협맘님, 맨발로 호숫가에 서있는 느낌 !
시심이 가득 넘치는 멋진 감성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