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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종교개혁주일설교}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개혁/창 21: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을도 이제는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어가는 11월이 다가옵니다. 이럴때 환절기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순실이라는 여자에 의해서 국가가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오직 기도만이 이 위기를 극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개신교에서 지키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는 비텐베르크라 대학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게 보내는 95개 조항의 질의서를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이 95개 항의 질의서를 게시판에 붙일 때 루터에게는 조금도 종교개혁을 하겠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교회의 모습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합니다.
한 때,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었고, 지금도 이 문제는 교회들이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중세교회에 불붙었던 개혁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도, 재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혁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단호하게 고쳐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모든 분야에서 개혁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정치개혁, 기업개혁, 심지어 교회개혁 등 사회 모든 분야가 개혁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에 정치개혁말은 왜 하느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정치와 종교의 연관관계를 이번 우리나라를 흔들어 놓은 최순실사건(최태민의 영세교)씨가 정권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종교와 정치는 연관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구호도 바로 '개혁'이라는 단어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비록 정권의 정통성 시비 때문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들에게 압박과 공포의 정치만 하고 물러갔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는 군사독재 정권을 청산했다하여 이름을 문민정부라 부르면서 정권의 정통성 위에 고 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었으나 결국은 아들덕분에 국가만 어려운 경제파탄의 길로 몰고 갔으며,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와서도 전 방위 개혁을 부르짖었고, 노무현정부에서도 연일 개혁을 부르짖고 있었으나 잘 되지를 않았고, 이명박정권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개혁이 있을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개혁은 고사하고 친인척 비리정부라는 오명으로 끝이 나고,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온 국민들이 기대에 부풀었지만 결과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정부가 되었고, 부정부패와 심지어는 대통령이 아닌 일개 여성으로 인하여 지금 국가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국가뿐이아니라 종교계 지도자들도 개혁은커녕 온갖 비리와 추악한 성범죄 물질모으기에 바빴고 교회를 사업화해 나가기 바빴습니다.
과연 어떻습니까? 개혁이 완성되었습니까?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습니까? 더 이상 부정도 없고 부패도 없는 밝고 맑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요즘 개혁하자는 구호는 큰데 내실이 없습니다. 사회도 그렇고, 교계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왜 개혁의 구호는 많은데 개혁이 되지 않은가? 이것은 자기 개혁이 없는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먼저 지도자들이 자기 개혁의 증거가 있을 때 개혁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개혁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 자기 개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 쪽에도 그렇고 모든 분야의 개혁이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은 중요한 것이지만 먼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신앙인 개인 개인이 먼저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의 축은 복음(예수)입니다
갈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비장한 개혁투쟁선언이 나옵니다. 율법주의자와 영지주의자와 이단들을 향한 강력한 투쟁선언입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의 개혁의 원칙은 오직 예수입니다. 갈1:7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의 개혁의 중요한 주체는 복음입니다. 내가 전한 이 복음 외에는 천사가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은 저주를 받는다, 우리가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것은 믿지 말라, 우리가 전한 이 복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확실하게 예수만 믿으면 개혁은 됩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행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개혁의 원동력이 됩니다. 예수 바로 만나기만 하면 변화됩니다. 죄인도 깡패도 술꾼도 노름꾼도 사기꾼도 도둑놈도 변화됩니다. 그래서 기적은 예수 만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잠언 16:9절 말씀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일이 일어 난다고 해서 우리는 낙심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그곳에는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는 보통 사람들이 꿈꿀 수 없는 꿈을 꾸고 간직함으로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쭈그러진 젖을 아이에게 물리는 것이 꿈이라고 사람들에게는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성취하시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말씀에 의하여 잉태되었던 이삭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이유는 육신의 자식이 아니라 말씀으로 낳았기 때문입니다.(21:1) 말씀으로 태어난 아들은 두 사람입니다. 이삭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미 구약을 통해서 말씀으로 태어난 아들을 주신 것은 말씀으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고장 난 부분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 사라를 보십시오. 완전히 죽었던 몸이 고침을 받아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태어나게 하시고자 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들음으로 고치게 되는 것입니다.(롬10:10절)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모세 참된 행복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설교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내 안에 비상하게 작용해서 고장 난 부분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경험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개혁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정해진 기한에 태어난 이삭
잉태는 말씀에 의해 되었으나 사라의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나는 과정은 보통 사람과 똑 같이 기한이 되어서 탄생했습니다(2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잉태된 과정은 절대적인 신비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상적인 질서를 따랐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신앙은 신비하면서도 질서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 다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변화산상에서 베드로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 주님은 내려가자 그러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신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 이십니다. 본문은 모든 것이 질서 있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도 돈만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면죄부사건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오늘날 국가를 보아도 돈때문에 부정과 부패가 얼룩지고 개혁은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들은 삼시 세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강단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데 어떤 교회들은 교회를 얼마나 더 크게 지어야 하는가에 계획하고 설계비만 50억씩 들어가면서 예수님께서 사랑했던 가난한 이웃들은 돌아보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른말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중상모략으로 내치기까지 합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통탄하실 일이며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루터가 무덤에서 일어날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종교개혁이란 말씀에 의해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하지 않고 사람의 계획으로는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3.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이삭’
아브라함과 사라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아이가 생기기전 하나님께서 미리 지으신 것입니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은 ‘웃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할아버지, 할머니였습니다. 이들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은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 될 때는 엄청난 기쁨, 큰 기쁨으로 웃었습니다.(6절)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 가지 웃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한계, 불가능의 웃음이요,
다른 하나는 승리의 웃음입니다. 바로 복음이 그렇습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웃게 하시지만 처음에는 쓴 웃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는 큰 웃음, 진정한 승리의 웃음을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한계의 끝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7절) 문제는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을 떠나서 희희낙락하면 나중에 울게 됩니다. 슬피 이를 갈며 울게 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하도록 오늘도 약속의 말씀 붙들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4.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애는 불가능한 아들을 낳는 희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미래였습니다. 미래지향적인 삶이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현재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현 시대의 종교개혁도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사람의 마음으로 개혁을 일으키려고 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씀하신 주님,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였는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전혀 생각지 못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알아듣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말씀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창공을 나는 것처럼 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처음에는 쓴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여러분의 미래에는 승리의 웃음을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지금 내 마음에서 쓴 웃음을 짓고 있는 분이 계시더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고쳐 주시마 약속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롬4:18-2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겪는 쓰라린 아픔도 고생도 결코 헛된 것이 없습니다. 놀라운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능력을 소유하게 될 약속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온 우주가 새로워 질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모든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도저히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크게 웃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젊음을 믿지 마십시오. 우리는 금방 늙습니다. 학벌은 금방 쓸모없는 지식이 되고 맙니다. 군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권력을 잡고 휘둘러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약속을 붙드십시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게 웃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웃게 하시니 내가 웃으리로다! 쓰라린 눈물의 웃음이 아니라 큰 기쁨으로 웃는 웃음의 날이 이 땅에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영원히 계속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말씀이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반성하게 만들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을 깨닫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6년 10월 30일 주일에
박 종 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