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싫증내는 장난감을 대여업체를 이용해서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연회비 1만 원 정도만 내면 장난감을 무료로 빌려 주는 곳도 많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니까 장난감이 낡았다는 점이 흠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던 70년대 후반엔 이런 장난감 대여업체가 있지도 않았고 들어보지 못했다. 동네 문구점에서나 백화점에서만 사야 했다. 빠듯한 봉급으로 장난감을 원하는 대로 다 사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근검절약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아이들 키우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첫돌 무렵, 사물을 인지하고 말을 배우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혜를 짜냈다. 장난감 대신 스케치북을 준비하고 잡지나 신문에서 색상이 선명한 사진을 오려서 붙였다. 엄마와 같이 스케치북을 넘기면서 손가락으로 그림 하나하나를 가리키면서 이름을 소리 내 보는 놀이를 했다. 새로운 그림이 덧붙여지니까 싫증도 안 내고 잘 갖고 놀았다.
좀 더 자라서는 아이들이 직접 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리고 싶어 했다. 벽이나 책이나 어디에든 그리기 좋아하는 때다.
지물포에서 모조지 전지를 사 와 아이 키 높이에 맞춰 10장을 포갠 채 벽에 붙였다. 그리고 싶은 건 꼭 여기다 그리라고 했다. 엄마와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다짐했다.
약속을 잘 지켜주는 바람에 우리 집 벽은 아이가 있는 집 같지 않게 깨끗했다. 종이가 빈틈없이 그림으로 채워진 후 한 장을 벗겨내면 새 종이가 나온다. 반복해서 종이를 붙여 주는 것으로 우리 집 벽은 언제나 처음처럼 깨끗할 수 있었다. 내가 쓰는 가계부도, 읽고 있는 책도 벽과 같이 무사할 수 있었다.
유치원 때는 어린이날과 생일이 되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었다. 늘 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기뻐하고 감동하는 정도는 정말 대단했다.
큰아이는 로봇 조립하는 걸 아주 좋아했다. 시험 만점을 받으면 상으로 동네 문방구에서 로봇 프라모델을 하나씩 사주곤 했다. 작은 부분까지 본드로 붙이는 것인데 너무 몰입해 이름을 불러도 모를 정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자동차 조립으로, 그다음엔 총기류로 품목만 바뀌었을 뿐, 뭐든 스스로 만드는 걸 좋아했다. 다 만들어서는 동생에게 주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만 즐길 뿐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본드를 가지고 로봇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본드의 유해성뿐 아니라 장난감 만드는데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서였다. 아빠가 싫어하는 로봇조립은 자연히 엄마와 아들, 우리 둘만의 비밀이 되었다.
4학년 때, 전 과목 100점을 받은 상으로 아빠는 아이에게 좋아하는 걸 사주겠다고 했다. 아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건담 로봇'을 갖고 싶다고 했다. 로봇을 사오기로 한 날 아들은 아빠 퇴근시간을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소리만 나도 현관문을 확 열어보았다. 드디어 백화점에서 가장 크고 비싼 건담로봇이 든 커다란 선물상자를 받아 든 큰아이가 이상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빠, 이 게 아니에요."하고 소리쳤다.
"틀림없어, 건담 로봇 ."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다 만들어진 건 싫단 말이에요."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던 아빠가 아이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이 에피소드의 사연은 이렇다. 아빠는 아들이 로봇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들은 훗날 유학시절 실험조교로 활동할 때 위력을 발휘했다. 전자제품의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손재주에 서양학생들이 놀라워했다고 한다.
손을 많이 쓸수록 머리가 좋아진다는 학설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내 아이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민족이 손재주가 훌륭하고 머리 좋은 유전자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는 인정하고 싶다.
아침 신문에 난 장난감 기사를 읽다 옛날 생각이 났다.
2006.10.18
첫댓글 저도 아들들 어릴때가 생각나네요.
조립하는 로봇, 차를 얼마나 좋아 하는지...
선배님!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하세요?
완전 어젯일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 말씀이 기억납니다.
"힘들게 애들 키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힘들게 아들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었네요.
아들이 성인이 되고나니 내 할일이 줄어듦과 함께 기쁨과 행복과 보람도 줄어드네요.
결혼한 큰아들은 미혼때와는 180도로 달라져 때때로 서운함까지 안겨주네요.
며느리 보시기 전에 아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 많이 쌓으세요.
줗은 추억은 성장 과정에서 다 받았어니 그러려니 하고 자식들 건강하게 오손도손 잘사는게 효됴랍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 서운함을 털어버리고 있습니다.
자랄 때 순종하고 학업성적 좋아 가슴 졸이게 안한 것만으로도 효도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식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서로가 평화롭습니다 .
마음을 비운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서운한 맘이 고개를 들면 애써 누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