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시니컬한 표현이지만 여기에는 ‘좋은 직장’에 대한 부러움과 질시가 깔려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신이 내린 직장’에 취업하려면 100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입사하기가 사법시험보다 어렵고, 한번 들어가면 판·검사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올까?
하긴 높은 연봉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챙겨주는 복리 후생, 치열한 경쟁 없이 정년까지 안락하게 출퇴근할 수 있으니 이런 말이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천국’과도 같은 이런 직장은 어디이며, 거기는 어떤 곳일까? 또 그곳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코노미스트가 심층취재했다.
최악의 취업난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침몰 가능성마저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취업을 원하는 대졸자들의 광범위한 실업 사태는 매우 음울한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 수출 3000억 달러를 비롯한 거시경제의 지표들은 대졸 실업자에겐 하나의 거대한 ‘거짓 상징’에 불과하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는 그들의 절규 속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 짙게 배어 있다. 요컨대 ‘일자리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은 몇 가지 트렌드를 생성시키고 있다. 우선 출구를 찾는 대졸 취업 희망생들의 선택이 다양해졌다. 졸업하지 않고 버티는 ‘NG(No Graduation)족’의 광범위한 존재가 그것이다. 대학원 진학, 군 입대를 결정하거나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급증했다.
이들의 선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단지 ‘대졸 실업자’ 신세를 면하려는 이들의 몸부림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취업난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구백’(20대의 90%가 실업자)이란 신조어에 이어 ‘십장생’(십대들도 장차 백수)이란 우울한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대학 입학도 하기 전에 취업난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겹고 두려운’ 세태의 반영이다.
취업난, 즉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현상은 전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지방대 출신 취업 준비생은 ‘나홀로 서울족’이다. 취직 못 한 신세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빌빌세대’, 장기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연인을 지칭하는 ‘공시(公試) 커플’이란 말도 등장했다.
‘행복지수’ 높은쪽 선호
고액연봉을 받게 된 지방의원은 ‘선거고시’를 통과해야 하고, 위상과 대우가 높아져 중년 주부들의 중요 부업으로 등장한 통장직엔 ‘통장고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모든 계층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거리를 찾는 일’에 골몰해야 하는 것이 2007년 대한민국 국민의 자화상, 현주소다.
새로운 트렌드는 또 있다. 좋은 직장을 규정하는 잣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안정된 정년 보장, 낮은 노동 강도와 높은 복지 후생을 제공하는 직장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 공기업과 국책은행, 교사와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과거 어느 시점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미 이들 직종엔 ‘신이 내린 직장’이란 표현을 넘어 ‘신도 경쟁해야 들어가는 직장’이란 레이블이 붙어 있다. 민간기업 가운데서도 고용 안정성과 풍부한 복지 후생이 제공되는 기업은 ‘신이 점지해야 입사가 가능한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오죽하면 ‘신도 부러워 하는 직장’이란 소리까지 들릴정도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 삼성전자는 ‘신이 점지한 직장’의 반열에는 들지 않는다. 높은 연봉과 성취감 충족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과 높은 노동강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인력양성 비용으로 연간 약 2000억원을 쓴다. 일단 입사하면 직급별로 다양한 프로그램 양성코스를 거치게 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글로벌 인재의 양성. 인텔이나 GE 의 인재들과 견줘 언어는 물론 업무능력, 국제감각 등 모든 면에서 대등한 위치에 올라야 한다.
용인 연수원에서 10주 동안 합숙코스로 진행되는 외국어연수는 지옥의 코스로 불린다. 전액 회사 지원을 받으며, 국내외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직원도 200여 명에 이른다. 해외 공장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제조기술대학, 미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길러내는 재무MBA 등 분야별로 세계 수준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과정도 있다.
10여 년간 이렇게 키워진 삼성맨은 본격적으로 임원, 즉 경영진이 되기 위한 육성단계로 진입한다. 여기서부터는 교육대상도 철저히 선별된다. 그동안의 성과를 통한 검증 과정 을 거쳐 본격적인 경쟁이 이뤄지는 셈이다.
예컨대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로 명명된 부장급 대상 교육과정이 있다. 약 5개월간에 걸쳐 변화와 혁신, 재무회계, 마케팅, 리더십, 위기관리 능력 등 경영인으로 필요한 종합적 능력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교육 대상은 1년에 부장급 1500명 중 50명에 불과하다.
회사 내에서 이 제도를 아는 직원이 별로 없을 정도로 ‘선택된’ 소수만이 교육을 받는다. 최고의 대우를 받는 만큼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실력이 없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시스템이다. 이것이 삼성전자의 매력, 그리고 조직의 무서운 이면이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대기업도 비슷하다. 입사하기 어렵고 보수가 높으며 강력한 성취동기를 발휘할 수 있지만 이들 대기업 모두가 사원들이 느끼는 전반적인 ‘행복지수’를 반드시 충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미래 인재들은 소위 ‘신이 내린 직장’에 몰리고 있다.
개척, 모험가 정신 실종
이코노미스트가 이번 특집에서 주목한 대상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안정된 고용환경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은 내부 경쟁 ▶탁월한 복지 후생을 제공하는 직장과 직종군이다. 취업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조언, 취업 준비생들과의 대면 인터뷰, 이코노미스트가 자체 조사를 통해 선정한 기업들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아주 특별한 매력’이 있는 기업, 또는 직업군이다.
이들 기업, 직종의 상당수가 ‘신이 내린 직장’이란 다소 시니컬한 별명을 얻은 데에는 ‘낮은 노동강도, 고임금 기업’이란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수 공기업은 그간 방만한 경영과 임직원의 고임금 등 문제가 제기돼 언론의 직격탄을 맞곤 했다.
그러나 공기업 운영의 방만함과 인재 기용의 문제를 반드시 동일선상에 두고 볼 필요는 없다. 취재에 응한 한 공기업 인사팀장은 “정부투자기관 직원이 놀고먹는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해”라고 주장한다.
최근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못지 않은 전문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전문성이 뒤지는 사원들은 입사에 성공한다 해도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이 내린 직장’에 입사한 사원이 계속 ‘신의 보살핌’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인사담당자의 지적이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5663명을 대상으로 업종별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공기업이 20.4%로 1위를 차지했다.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된 공기업이 취업 선호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반드시 공기업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정부가 공기업을 경영 실적을 통해 철저히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탁월한 인재를 뽑으려는 기업과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호하는 소비자(취업 희망자)의 선택을 무턱대고 나무랄 수만도 없다. 취업의 현장 역시 철저히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곳으로 소위 ‘신이 내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엄청난 준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공기업이 채용 방식의 혁신을 통해 보여준 학력, 연령 제한 파괴는 다른 민간기업에도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다. 대학교 학점과 상식 시험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전공 과목에 대한 심층지식과 인성,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선발의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열린 채용’을 채택하는 공기업도 늘고 있다. 학력, 연령 제한을 없애 보다 많은 지원자에게 입사의 기회를 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웠던 지방대 졸업생이나 취업 재수생, 전직 희망자들에게 공기업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전력의 경우 학력과 연령 제한을 폐지하고 능력 위주의 공개 선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는 ‘제로 베이스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입사지원서에 학교명이나 학교 소재지, 출신 지역 등을 기재하는 난이 아예 없다.
그 밖에 에너지관리공단·예금보험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관광공사 등이 열린 채용을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공기업은 상반기의 경우 5~6월, 하반기는 11~12월 주로 공채를 한다. 보통 서류전형, 필기시험, 인성·적성검사, 면접 등을 거친다.
열린 채용을 채택한 기업이 증가하면서 첫 관문인 서류전형에선 어학 성적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토익 하한선은 사무직 750점, 기술직 650점 이상이지만 서류 합격자 대부분이 토익 900점을 넘는다.
우대사항을 챙기는 것도 필수다. 대부분의 공기업은 관련 자격증 소지자와 어학 우수자, 공모전 수상자 등을 우대한다. 면접방식도 까다롭다. 기존의 개별면접, 집단면접 외에도 프레젠테이션 면접, 외국어 면접, 블라인드 면접 등 다양한 기법을 도입했다. 한국석유공사·한국공항공사·수출보험공사 등 외국어 면접을 실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사법시험’ 위에 ‘금융고시’
공기업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익성이 강한 기관이기 때문에 면접 때 국가관, 책임관을 중시하고 인성, 품성, 전공 역량 등을 평가한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공사·공기업 채용정보 상식’ 등 공기업 입사 관련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지방대생의 경우 채용 할당제가 적용되는 공기업을 공략하는 것이 좋다. 대한석탄공사·한국가스공사 등은 정원의 상당수를 지방대 졸업자로 우선 채용한다.
올해 공기업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줄어 입사 경쟁률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인사취업(HR) 전문기업 인크루트가 44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2007년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10개사 중 6개사(63.6%, 28개사)는 채용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채용 규모는 205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채용인원(2243명)보다 8.2% 줄어든 규모다. 채용 규모 감소 폭은 다소 큰 편이지만 실제 감소인원은 185명 정도. 이렇듯 채용 규모가 줄어 취업문은 좁아졌지만 공기업 선호현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올해 공기업의 입사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채용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두 곳밖에 없다. 또 아직 채용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31.8%(14개사)의 공기업이 채용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면 채용 감소세는 다소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
‘신이 내린 직장’을 넘어 ‘신도 들어가고 싶은 직장’에는 국책 금융기관이 꼽힌다. 요즘 대학가에 사법시험·행정고시·외무고시·언론고시 등 4대 ‘고시지존’을 제치고 상한가를 올리고 있는 ‘금융고시’가 화제다. 국책은행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고액연봉과 정년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성공한 은행권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면서 주가도 상위권을 맴돌고 있다. 입사자들에게는 사회적·경제적 위상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최고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대학별 스터디그룹과 상경계열 전공 스터디그룹들의 인터넷 카페만 수십여 개에 이른다. 주로 다음카페와 싸이월드클럽 등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스터디그룹 온라인 방에는 그룹별로 작게는 5~6명에서 많게는 20여 명씩 활동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대학 차원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책은행만을 목표로 한 금융고시반을 개설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6년 2월 서울 소재 Y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P씨는 10월 한 국책은행 입사 시험에서 낙방했다. 대기업 입사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과감히 재수를 선택했다. 그가 올해 목표로 하고 있는 은행은 산업은행이다.
대기업보다 연봉이 훨씬 높고 대출금 등 복지 제도가 탁월해 입사 재수를 선택했다. 입사 후 2년 내에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P씨에게 산업은행이 제공하는 각종 복리후생제도는 연봉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책은행 입사를 위해서는 피 말리는 공부가 필요하다.
대기업 입사시험보다 훨씬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 대학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정도의 공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준비생들의 말이다. 올 10월 시험에 대비하고 있는 J대 경제학과 4년 K씨는 “시험 과목 준비 외에 가산점을 주는 금융관련 자격증을 따는 데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경쟁률과 장기간의 까다로운 시험준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취업 준비생이 도전하는 ‘금융고시’의 매력은 단지 연봉이나 복지 혜택만은 아니다. 국책은행은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다이내믹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개인에 대해 전문가 이상을 요구하는 은행 내 분위기 때문에 ‘창조와 도전’을 꿈꾸는 전공생들에게 매력 있는 직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자기계발을 위해 필요한 자원과 시간을 은행에서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2005년 산업은행에 입사해 현재 지점에서 여신업무를 배우고 있는 추인영씨는 다양한 금융기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최고의 보람으로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업금융 전문은행인 산업은행에서는 일반대출부터 채권인수, 주식투자 등 직접금융까지 고객사의 다양한 금융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산업은행은 소위 IB(Investment Banking)업무에 특화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고도의 금융기법에 대한 실무지식을 쌓기 쉽다. 기업가치 분석을 통한 주식투자, 선물환거래 등 대학 재무관리 수업에서 공부했던 금융기법을 직·간접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100대 1 넘는 경쟁률 수두룩
한국은행과 금감원, 산업은행 등 금융계 ‘빅3’는 지난해 10월 22일 필기시험을 동시에 치러 눈길을 끌었다. 통상 한국은행이 공채 필기시험 시기를 정하면 우수인력을 채용하려는 경쟁 국책은행들이 같은 날짜로 시험일정을 잡는다.
필기과목이 대체로 비슷하다 보니 지원자들이 중복지원한 뒤 합격기관 중에서 선택해 필기시험을 치르는 식이다. 고임금(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초봉은 3500만원 선)에 안정성(임금피크제로 59세까지 보장), 사회적 위상까지 높다 보니 직장으로서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특히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법연수원생을 비롯해 공인회계사, 대기업 입사자 등이 대거 몰리면서 국책은행은 한국 최고 직장으로서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지난해 50명을 뽑은 금융감독원의 경우 3734명이 몰려 약 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1128명의 서류 합격자 중 581명이 응시, 52%의 응시율을 보였다.
40명가량을 선발한 한국은행도 2400명이 지원해 6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류전형 합격자 600명 중 439명이 응시, 60%의 응시율을 보였다. 100명을 선발한 산업은행은 1872명이 서류를 접수, 평균 1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중 887명이 서류전형을 통과해 681명이 시험에 응시, 77%의 응시율을 나타냈다.
증권선물거래소도 10여 명 선발에 1100여 명이 몰려 무려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15명 내외의 신규직원을 채용한 예금보험공사는 서류 접수자가 1000여 명을 넘어 60대 1의 경쟁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수출입은행도 30여 명 내외 선발에 2040명이 몰렸다.
이처럼 취업 준비생이 국책 금융기관에 몰린 데는 입사 초기 연봉이 3000만원대 중반에 달할 정도로 높은 데다 안정성도 갖췄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이 2005년 기준 산은 8450만원, 금감원 7540만원, 한은 7390만원 등으로 일반 공기업의 4000만~5000만원대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5년 동안의 국책 금융기관 신입직원의 연평균 이직률이 0.8%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1월 수출입은행에 들어온 신입 행원(48명)의 퇴직률은 0%다. 산업은행도 지난해 1월에 뽑은 90명 가운데 단 1명만이 은행을 나가 퇴직률이 1%도 안 됐고, 지난 5년 동안 419명 채용에 20여 명만이 퇴직, 연간 0.05%의 이직률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복리후생제도 기업보다 월등
‘신이 내린 직장’이란 선망을 받고 있는 직업군엔 교사, 7~9급 공무원, 대학 교직원 집단도 포함돼 있다. 교사와 하위직 공무원이 과연 ‘신이 내린 직장’이냐에 대해서는 물론 이견도 많다. 여전히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박봉에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최근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공무원과 교사, 대학 교직원 사회도 사회의 ‘선망’을 한몸에 받는 직업군에 편입됐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3년째 공립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L씨(28)는 “지금까지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고교 동창생들이 동창회에도 못 나오고 있는 현실을 보면 지금의 세태를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충남 연기군청의 9급 지방직 공무원 정재경씨는 “올해 서울시 9급 공채 시험에 무려 16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고 하니 공직이 이렇게 각광받던 시절도 예전엔 없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지난 1년 4개월여간의 공직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 교직원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고 주5일 근무제가 철저히 시행되는 등 여가를 즐기기 위한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휴가와 복리후생제도가 일반 기업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 성균관대가 정규직 사무보조원 1명을 공채할 때 무려 401명의 지원자가 몰렸던 것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들 주변에 ‘신이 내린 직장’이 늘어가고 있는 세태가 정말 불안하기만 하다.
‘사람’이 재산인 ‘한국주식회사’에서 70, 80년대의 해외개척 정신, 모험심 등이 젊은이에게서 어느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특별취재팀·한기홍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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