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부에는 인큐베이팅(Incubating) 시스템이 없다
-故 정산하 사무관을 기억하며
별을 꿈처럼 헤아리며
꿈을 담금질하던
너와 나의 거리는
고작 한 뼘도 되지 않았네.
끝내 건너지 못한 그 한 뼘,
나만의 짝사랑이었네.
—【獻詩】 「나만의 짝사랑이었네」 중에서
2026년의 여름은 사막보다 뜨겁다. 땀을 쏟아내도 가시지 않는 더위, 마치 온몸이 열병에 잠식된 듯한 된더위다.
다이옥신 연구의 선두 주자로 알려진 김삼권 박사는 병오년의 여름을 두고 천지(天地)의 명리(命理)와 천체(天體)의 역리(曆理)에 이상고온의 열기까지 더해진 중화가열(重火加熱)의 형국(形局)이어서 어느 해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유독 뜨거운 병오년(丙午年) 7월, 기후부(환경부) 발족 46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30대의 젊은 사무관이 홀연히 세상과 작별했다. 육신을 달구는 불볕더위만큼이나 환경계의 가슴과 마음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재경직 고시에 합격한 뒤, 스스로 기후부(환경부)를 선택한 인재였다. 재경직은 주로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국세청·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에서 경제정책, 예산, 세제, 재정, 국제금융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재경직 출신은 5급 공직자 가운데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높은 직렬이다. 퇴직 후에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주요 보직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재경직은 영어·한국사·헌법은 물론, 난이도가 높은 언어논리와 자료 해석 영역 등 공직적격성평가(PSAT)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 상황판단 영역까지 넘어야 한다.
그런 귀재가 스스로 환경부의 문을 두드렸다. 나비처럼 날아와 공직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스스로 이승과 작별했다.
고인의 기후부에 대한 애정은 평생 문패처럼 간직해야 할 이름 석 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름 석 자에는 ‘살아서는 이름을 세우고, 죽어서는 이름을 남긴다.’ ‘이름 석 자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자기 몸과 마음을 닦고 집안을 바르게 한다’라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정신, 그리고 이름값을 하라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의미까지 묵직하게 새겨져 있다.
고인의 이름에는 산과 물을 품는 ‘산하’의 뜻이 담겨 있다. 형제자매의 이름에도 별과 자연을 연상시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름들이다.
그처럼 자연을 사랑하는 귀인이 제 발로 환경부를 찾아왔지만, 기후부는 그를 제대로 품지 못했다. 방치했고, 냉담했다.
고인의 유언처럼 ‘기후부에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없다’는 말이 뼈아프게 현실로 확인된 셈이다.
공직사회에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체면보다 올바름과 배움을 중시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건강한 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신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미국의 젊은 강연가 제이크 듀시는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사람, 무책임하다’라는 평판이다. 그런 평판은 불명예를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일이다. 책임을 지는 태도는 사람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태산 같은 책임감도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책임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민간기업의 직장인과 달리 공무원은 국가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아 국민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을 수행한다. 급여 역시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된다. 결국 공무원은 국민에게 충성하고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 공직이 축재의 수단이거나 단순한 신분보장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시 출신 신입 공직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직원들보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고인은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려 했을 것이다. 업무를 익히고, 배움을 소화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의 치열한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부서 배치를 받고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1년가량은 조직과 업무의 흐름을 파악하고, 업무의 맥락을 체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인은 불과 2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부서를 옮겼다고 한다.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이동하고,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새로운 업무를 맞닥뜨리며, 소화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자리로 옮겨야 했던 셈이다.
중간관리자로 업무를 습득하는 과정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문서 작성과 처리, 예산과 회계, 법령 제·개정, 인사제도는 물론이고 환경 분야의 특성상 복잡한 화학기호와 환경 전문용어까지 폭넓게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
이러한 장벽은 공직자라면 누구나 넘어야 할 경험의 고비다. 어떤 사람은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후회를 남기고, 어떤 사람은 평생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평생 고마운 동지로, 존경하는 상사로 가슴에 남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상사에게는 부하 직원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책무가 있다.
그런데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엉뚱한 지시를 내리거나, 무조건 호통부터 친다면 그 조직은 한순간에 한심하고 무능한 조직으로 전락한다.
보고받은 상관이 직원에게 호통을 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대체로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구체적인 답을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부하 직원 스스로 더 나은 보고서를 만들도록 고민하게 하는 일종의 훈련 과정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상관 자신도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불만만 품고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조차 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다.
환경부 전 문정호 차관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대부분 답을 모르는 상관이 화만 내고 짜증만 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행태는 체면과 체통을 중시하고 자기기만을 일삼는 우리 사회의 풍토 속에서 변형된 조직관리의 한 단면일 수 있다.
잘못된 업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주고, 개인의 역량과 부족한 부분에 따라 보완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래도 어렵다면 다른 업무 분야로 보직을 전환하는 등 한 사람을 살리고 조직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마지막 노력까지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인사이고, 이것이 조직관리이며, 이것이 사람을 키우는 인큐베이팅이다. 결국 고인의 유언처럼 ‘기후부에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없다’라는 말은 오늘날 기후부의 조직관리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최근 기후부는 사건 발생의 진원지로 지목된 기후적응 분야와 관련해 전 직원을 분산·보직 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함께 근무했던 동료 직원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보다 앞당겨 차단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24대 영산강청장(현 35대)을 지낸 박응렬 씨는 “60여 년을 꼭 껴안고 살아온 응어리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이걸 버리지 못하면 나는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퇴임하자마자 나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용서의 언덕’ ‘자비의 언덕’이 있는, ‘바람의 길과 별의 길이 교차하는 곳’에서 기꺼이 그 응어리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고인의 영혼도 부디 별의 길과 바람의 길이 만나는 어느 언덕 어디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를 숨죽여 기원할 뿐이다.
재경직 고시 출신으로 환경부에 자원해 첫 공직의 길을 걸은 고인이 남긴 삶의 흔적은 우리에게 묻는다.
<조직은 사람을 뽑는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품고,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곳인가>
인큐베이팅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게 하는 것, 잘못을 고쳐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 어쩌면 그것이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순수하면서 가슴 아픈 질문인지 모른다. 재경직 고시 출신이 환경부(기후)에 자원한 예는 고인이 처음이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