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핵 발전, 핵무기와 같은 단어들은 뉴스나 언론에서 자주 들어본 말이지만 실상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다가오는 말은 아니다. 왠지 핵 분야 전문가 또는 연구자들만이 아는 신비스러운 영역일 것 같아 관심 밖에 두고 있었지만 서균렬 교수의 핵 이야기를 읽으면서 좀 더 핵과 관련하여 일반 시민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임을 알게 된다.
특히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 수단으로 핵을 무기화하고 있으며 전술핵이니 핵우산이니 하는 군사 용어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그뿐인가. 우리의 식탁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방류수 문제가 작년 한 해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에서도 좀처럼 다루지 않고 있어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서균렬 교수는 아마도 우리나라 1세대 핵 공학자가 아닌가 싶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핵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핵 분야 연구소에서 줄기차게 핵의 유용성과 함께 동시에 위험성을 알리면서 핵을 과학을 넘어 인문학으로 보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무리 경제성이 뛰어나고 활용 측면이 높은 핵 발전이라고 해도 원전 사고가 한 번 일어날 경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핵 발전은 경제성 이전에 안전을 철저하게 담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미국에서 최초로 원자 폭탄을 개발하고 뒤이어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까지 많은 나라들이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국가의 정책에 따라 원전을 폐기하는 나라도 있지만 위험성을 늘 안고 원전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나라도 있다. 다만 핵을 다루는 근본적인 철학의 바탕 위에 국민의 생명을 철저히 보호하는 취지 아래 운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이 책은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글이 씌어 있다. 마치 말하는 이를 바로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 어려운 용어들도 쉽게 풀어 말하듯이 정리해 놓은 글이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핵 관련 책 중에 입문서로 읽기에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서균렬 교수의 고민은 늘 변함이 없다. 핵공학을 연구하면서 항상 인문학적인 고민을 갖는다는 점이다. 1988년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비핵화를 추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무려 1000기 가까운 핵무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3위 규모였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핵은 산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환경과 우리 삶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거시적 안목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핵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의 가장 큰 위험성은 핵분열 후 그 부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이다. 양날의 검이기에 어떻게 쓰느냐가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