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장 19 - 23절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20.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이솝 우화에 보면 개미 한 마리가 시냇가에서 쉬고 있다가 다리를 헛디디는 바람에 물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개미는 물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쳐 봤지만 물살이 너무 빨라 그만 흐르는 물에 둥둥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날 좀 살려 주세요.” 개미가 사력을 다해 소리를 쳤더니 이때 나무에 앉아 쉬고 있던 산비둘기 한 마리가 개미의 애절한 외침을 듣고서 나뭇가지 하나를 따서 물속에 떨어뜨려 주었더니 개미는 그 나뭇가지를 붙들고 물속에서 극적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후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고 있던 개미는 낯선 사냥꾼 한 사람이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사냥하는 걸까? 궁금해서 쳐다봤더니 며칠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산비둘기를 겨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미는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산비둘기를 구할 수 있을까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도망가라고 소리를 쳤지만 개미의 목소리는 산비둘기가 듣기에는 너무 작았고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사냥꾼의 다리를 꽉 깨물었더니 사냥꾼이 “앗 따가와!” 놀라며 잡고 있던 화살을 놓쳐서 다행히 산비둘기를 비껴갔고 그 사이 산비둘기는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개미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사람이 은혜를 갚지 않는다는 것은 개미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을 하고 있다가 반드시 갚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의 삼촌이었던 모르드개의 도움으로 암살당할 번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아 있는데 왕의 내시 두 사람, 빅단과 데레스라는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원한을 품고 암살할 음모를 꾸미는 것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그 사실을 에스더에게 알렸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이런 사실을 왕에게 알려서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암살당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이었는데 개미도 갚을 줄 아는 은혜를 아하수에로 왕은 갚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고작 한 것이라고는 궁중 일기에 기록한 것 외에는 모르드개에게 그 어떤 상이나 칭찬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 같으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했을 것 같은데 모르드개는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특별한 불만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꼭 이런 은혜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는 너무 쉽게 보상을 바라고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면 금식할 때 금식하는 것을 모르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금식을 자랑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인데 그런 자랑을 하게 되면 그 영광은 이 땅에서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받게 될 영광은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이 받아야 100년 인데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되며 영원토록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영광을 사모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영광을 구하고 응답을 구하고 보상을 구하기보다는 오래 참음으로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우리는 이 모르드개의 모습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고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고 오래 참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지 너무 쉽게 보상을 받고 답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지쳐서 그런 선한 행위들이 오래 갈 수가 없고 쉽게 포기하는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르면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당도 주문을 하면 빨리 나오는 식당이 좋은 식당이고, 물건을 주문해도 빨리 배송이 되면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기도의 응답이나 은혜에 대한 답례도 빨라야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다보면 낙심하게 되고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처럼 묵묵히 “구할 것은 충성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을 했다.” 이런 마음 가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살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받는 것보다 더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조차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선지자에게 물 한 그릇 준 것도 잊지 않고 선지자의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해도 하나님이 기억하면서 반드시 갚아 주심의 은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끝까지 보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꽃을 심으면 빨리 꽃을 보고 싶고, 열매를 심으면 빨리 열매를 봤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급한 마음이지만 다 때가 있기 때문에 모르드개처럼 그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자가 되어야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모르게 다급한 나머지 낙심해서 포기해 버린 선한 일들이 있지 않는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기는 마귀의 뜻입니다. 마귀의 뜻대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지 마시고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장차 받게 될 영광과 상급을 소망하면서 기쁨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오늘도 그런 기대와 소망 때문에 가장 행복한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