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
스포츠산업은 스포츠와 관련된 재화와 서비스의 상업적 생산 혹은 시장을 위한 생산 및 유통활동으로 프로스포츠는 스포츠산업의 주요 영역이다. 1869년에 시작되어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미국프로야구에 비하면 국내의 야구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협소하지만 국내프로야구 역시 스포츠산업이다. 국내 8개팀 1, 2군 합쳐 400여명에 불과한 선수의 규모일지라도, 시장이 협소하다고 해서 프로야구가 산업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수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처럼 수십명의 종업원에 불과한 작은 회사도 기업의 원리로 운영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현재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선수협의회와 구단주 및 KBO의 대립은 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자본과 노동 관계에서 파악되는 것이 옳다.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권익을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이것은 법적으로 인정되고 보호되고 있다.
지난겨울 프로야구 선수협 결성시 구단주들의 모임인 KBO 수장이 '선수협을 결성하면 프로야구를 하지 않겠다'라고 한 것은 한국프로야구 구단주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불행의 씨앗이다. 이것을 천박하다고 매도하기에 앞서, 프로야구를 독립 사업체로 보지 않고 모기업의 홍보수단에 역점을 두어 왔던 왜곡된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초래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렇게 되기까지 세계 유래가 없는 잘못된 프로스포츠 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려진 것처럼 한국프로야구는 기업과 자본의 논리가 아닌 광주항쟁 이후 흉흉한 민심을 환기하고자 하는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논리에 의해 출발하였다. 서슬퍼런 군사독재 하에서 재벌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프로야구단을 떠 안게 되었으니, 처음부터 프로구단 운영으로 이윤을 남길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계수상 적자운영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동안에도 지난 20년간 프로야구는 최고의 관람스포츠로 자리매김 되었다.
세계프로스포츠사를 통해 우리처럼 프로스포츠의 태동 동기가 불순한 예도 없지만, 선수들이 그들의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협의회와 노동조합 등의 기구를 갖지 못한 사례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KBO는 선수협의회가 시기상조라고 말하지만, 프로스포츠 특성에 비추어 선수협의회는 때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이다. 본 글을 통해 선수협의회가 올바르게 이해되고 금번 선수협 파동이 프로야구 발전의 일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 수요독점(monopoly)과 선수들의 저항
프로스포츠가 다른 산업과는 다른 가장 큰 특성은 시장수요를 독점한다는 점이다. 프로구단들은 규정, 확대, 판촉, 일정 등 공통의 관심사를 협의하는 동일 산업(리그)내에 있는 기업(팀)들의 경제적 집합체인 카르텔로서 작동한다. 프로스포츠에서 카르텔이 작동하는 세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리그는 선수드래프트, 계약,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의 권리를 통제함으로써 선수들에 대한 팀간의 경쟁을 제한한다. 팀간에 비슷한 경기력을 보유하면서 승패를 주고받는 것은 프로스포츠가 관중을 유인하는 기본 조건이다. 동일팀이 매번 우승한다면 상품으로서 매력을 상실할 것이며, 이것은 보류조항, 신인선수드래프트 등이 시행되는 근거로 작용한다. 이것은 팀간의 경기력을 균형있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 구단이 절대적 우위를 갖는 한국프로야구의 경우 선수들에게는 '노비문서'와 다름없는 선수권리 제약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② 리그는 새로운 팀을 허용하거나 거부하는데 보조를 맞추고, 팀들의 지역을 통제한다. 경제학적 용어로 진입장벽(entry barrier) 이론이 철저히 적용되는데 기존 구단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기존투자에 대한 보상적 차원에서 나중에 참여하는 팀에게 장벽을 쌓는다. 기존 구단을 인수하는 경우에도 모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프로야구 속성상 기회가 구단인수의 기회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신생팀을 허용할 경우 리그 참가비를 받는데 한화가 1987년에 후발로 참여하는 조건으로 상당액의 발전기금 뿐만 아니라 서초동의 야구회관을 건립하는 조건이었다. 새로운 팀이 창설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진입 장벽 때문이며 따라서 KBO는 강력한 독점기구인 셈이다.
③ 리그는 단일체로서 방송 중계권료를 협상한다. 프로스포츠의 주요 수입원은 입장료와 중계권료로서 원칙적으로 KBO가 방송사와 중계료를 협상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방송사의 담합에 의해 중계료가 결정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져 온 결과 구단들은 불이익을 감수해 왔는데 프로야구의 중계권료의 경우 98년에 45억 수준이었으니 이것을 KBO 운영비를 제외하고 8개 구단에 지급된다고 했을 때 실질적으로 방송권료가 구단 수입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MBC 위성방송의 메이저리그 방영권 선점 이후 KBS와 SBS는 프로축구, 농구중계권을 MBC를 배제하고 획득함으로써 기존 담합구조에 균열을 보이고 있다.
만일 프로스포츠와 같은 카르텔이 일반 산업에서 발생한다면 불법이며, 공정거래법에 의해 저촉될 것이다. 프로스포츠산업이 카르텔의 특혜를 얻는 것에 대한 역사적 경로를 더듬어 보자. 1890년 미국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은 몇 개의 주나 국가가 담합하여 무역을 제한하는 형태의 모든 계약은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Sherman Antitrust Law을 통과시킬 것을 의회에 촉구하였다. 이것은 특정 도시에 소속된 팀이 다른 도시의 선수를 고용할 수 없게 하고, 선수임금에 대해 소유주들이 담합했던 당시 프로야구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의회가 Sherman법안을 통과시킨 후, 법원 판결이 시작되었다. 1922년 고등법원의 Oliver Holmes판사는 주경계를 가로지르는 선수들의 수송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고, 주 상호간의 거래가 아니므로 야구는 그 법안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이후에 다른 사건을 심의했지만, 프로야구의 치외 법적 지위는 1970년대 중반까지 신성불가침과 같았다. 결국 Holmes의 판결로 인해 각 야구리그는(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선수경쟁, 프랜차이즈 위치, 중계권료 판매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선수협의회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프로선수 선수들이 카르텔 구조에 있게 되는 방식과 이러한 운영방식에서{{. 한국, 일본, 미국 프로스포츠의 선수운용방식 비교
{{{{국가
}}{{신인지명보유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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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프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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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동일
}}
}}
}} 발생해 온 법적 변화를 미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선수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선수보류제도(player reserve system)를 살펴보자. 선수보류제도(player reserve system)는{{. 96년 선동열과 임선동 선수의 파동은 이 조항 때문이었다.
}} 선수의 서비스를 위해 팀간의 경쟁을 없애는 것이다. 각 팀은 그 팀만을 위해 소속된 선수들을 독점적으로 협상할 유일한 권리를 지닌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보수는 소유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독점론자라고 정의한다. 선수들은 서비스를 한 사람에게만 팔 수 있고, 이 제도는 신인과 기존선수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선수계약의 전형적 특징인 선수보류조항은(reserve clause) 미국 프로스포츠의 경우 야구와 하키에서 가장 엄격했다. 이것은 선수 생활 동안 팀이 선수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야구연맹(KBO) 규약은 몇 가지 규정에 의해 보류조항을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야구규약제 2조와 101-112조에서 신인선수들이 특정 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당하면 평생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드레프트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제 6장은 구단의 보류기간 내에 선수는 어떠한 다른 구단과도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한다. 제 10장에서 구단은 선수의 동의없이 다른 구단에 넘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 따라서 선수들이 팀을 이적하는 유일한 경우는 소유주가 그들을 방출하거나 다른 팀으로 가도록 허용할 때만 이다.
이것이 프로야구에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살펴보자. 일단 특정 팀과 계약을 맺게 되면 선수의 운명은 소유주 마음에 달려 있다. 선수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면 그는 새로운 팀에 종속된다.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않은 개인이 자유계약선수(free agent)가 되기 위해 야구선수는 현재 팀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KBO는 현재 특정구단에서 10년 활동한 선수에게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어느 팀에서도 그를 요구하지 않으면 같은 팀과 재계약을 맺거나 최악의 경우 방출이 되어 선수생명을 고하게 된다. 사실 프로스포츠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선수들에 대한 권리를 독점하려는 구단과 자유계약선수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선수들의 싸움이다. 미국의 경우 법원은 1976년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Andy Messersmith와 Dave McNally에 대한 자유계약선수(free agency) 지위를 최초로 인정했다. 두 투수는 계약하지 않고 1975년 시즌에 참여했으므로, 자유계약선수(free agent) 지위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제소했다. 구단측은 선수를 영구적으로 가질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구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식축구와 농구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내려졌다. 이 새로운 위상은 선수들이 다른 팀과 협상할 수 있도록 했고, 사실상의 노예신분으로부터 선수들을 해방시켰다.
프로야구의 선수보유조항과는 달리 선수선택조항(option clause)이 있다. 미국미식축구와 농구의 경우인데 option clause는 계약 만기후 일년간 선수의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독점권리를 구단주에게 주었다. 선수가 free agent가 되기를 원할 경우 전년 셀러리의 90%만 받고 1년간 시합해야 한다. 미식축구선수인 Walter Payton의 경우를 들어보자. 1977년 시즌 후에 그는 O.J. Simpson의 $733,358과 비슷한 계약을 요구했다. 구단측은 3년간 40만불 이하를 제시했다. 그는 나중에 더욱 좋은 조건으로 3년 계약을 맺었지만, 처음에는 구단측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1978년 한해 동안 6만6천달러를 받고 시합에 참가했다.
언뜻 보기에 option system은 reserve system에 비해 선수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선 선수들은 그들의 옵션 기간동안 자동적으로 10% 감액된 보수를 받는다. 더구나 NFL의 커미셔너인 Pete Rozelle의 이름을 본따 만든 Rozelle Rule에 의하면, 선수를 받아들인 팀은 선수나 돈으로 이전 팀을 보상할 것과 만약 양팀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최종 처방으로 커미셔너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신인에게 적용되는 reserve system을 free agent draft라고 부른다. 이것은 처음으로 계약을 맺는 선수들에 대한 규정을 명시한다. 팀들은 전년 전적의 역순으로 선수를 선택한다. 일단 선수가 선발되면, 팀은 독점적인 협상권리를 가지고, 기존선수와 마찬가지로 신인선수도 트레이드 되거나 팔릴 수 있다. 미국 미식축구에서 드래프트 제도의 법적 문제가 법원에서 논란이 되어 왔다. 1976년 법원은 free agent draft가 연방반독점법(federal antitrust laws)에 위배하는 것이라고 판결했지만, 드래프트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free agent draft가 지속되는 것은 팀들이 다른 팀의 재산에 침해하지 말자는 협약 때문이다. 드래프트 제도의 명백한 의도는 리그에 속해 있는 팀사이에 균형있는 경쟁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년에 최하위 팀이 가장 먼저 드래프트하고, 우승팀이 마지막으로 드래프트한다. 그러나 팀들을 균형있는 만드는 데 있어 드래프트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는 증거가 있다.
이상에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프로 선수들은 다른 피고용인과는 달리 그들의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제공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고용주를 선택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보아 왔다. 미국선수들은 야구 초창기에 이러한 자유를 누렸지만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박탈당했다. 시즌 기간동안 최초로 발생한 81년과 85년의 야구 파업과,{{. 메이저 리그는 94년에도 파업을 단행했다. 노조는 선수연봉총액을 구단 총수입의 50%이내에서 묶는 셀러리 캪을 무효화하기 위해 소유주들을 연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는 한편, 연방법원에 연봉상한제 강행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노조와 소유주간 의견조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의회가 양측을 소환하여 중재하기에 이르렀다. 의회의 법사위원회는 프로야구의 반독점법이 합법적인가에 대해 표결한 끝에 반대 9, 찬성 8표로 반독점법을 철폐함으로써 셀러리 캡을 철회하게 되었다. 반독점 하에서는 선수들이 구단주측이 연봉상한제 등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노사협상안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법률적으로 호소하거나 구제받을수 없었지만, 이 법의 철폐로 인해 선수들의 지위가 한층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 1982년에 발생했던 미식축구에서 최초의 시즌 기간 중의 파업 등의 예는 프로 선수들의 법적 지위가 얼마나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인지를 보여 준다.{{. 94년에 프로하키의 파업, 메이저리그 파업이 있었으며, 95년에 마이클 조단을 위시한 100여명의 NBA 선수들이 셀러리 캡 적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노조불신임투표를 연방노동중재위원회의 중재로 실시한바 있다.
}}
프로스포츠 소유주들은(우리는 소유주인 스폰서와 구단주가 일치) 선수들에게 자유롭게 계약을 협상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가장 돈이 많은 팀이 최상의 선수들을 확보할 것이고, 결과로 스포츠의 균형있는 경쟁이 파괴되어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장 약한 팀은 연패를 기록하고, 팬들의 등을 돌리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도 있다. 가장 돈 많은 팀이 최고급 선수를 확보할 지라도, 그 팀이 우승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1960년 World Series에서 여러 명의 슈퍼스타 선수를 가진 New York Yankees팀이 Pirates팀에게 4:3으로 패배했다. 또 소유주들은 선수들이 자유롭게 협상한다면 이해의 갈등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팀이나 앞으로 다음 시즌에 소속될 팀에게 승리를 안겨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복잡한 규정 시스템이 팀간의 경쟁을 규제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
다음의 사례는 미국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이 법적 지위의 변화를 간략히 소개하기로 하겠다. 프로스포츠 100년사를 지닌 미국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한국프로선수들의 위상변화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야구 : 단체협상은 광산, 철강, 수송 등의 산업에서 보편적이다. 1981년 프로야구의 파업으로 단체협상 개념이 스포츠에 도입되었지만, 프로스포츠에서 여태껏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개념적으로 단체협상이란 노조가 기업주들과 임금, 근로조건 등의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단체협상의 목적은 노동과 경영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공평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양자간에 협상이 실패할 경우 National Labor Relations Act로서 일련의 조정 조치를 취할 수 있다. 1981년 야구 파업에서 노조는 경영자들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연방노동중재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NLRB)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NLRB는 소유주들의 그릇된 협상태도를 지적하면서 선수노조가 요구한 재정 자료를 제공할 것을 지시했다.
1976년 법원의 판결로 인해 24명의 주요 야구 선수들이 reserve clause에서 벗어나 자유계약선수free agents가 되었다.{{. 96년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15명의 NBA 유명선수들이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 소유주들은 그들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렸다. 이들중 14명은 7십5만불에서 3백만불에 달하는 딱지표를 달고 다녔고, 이들의 전체 가격은 2천만불로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사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엄청난 계약금이 야구의 기존 구조를 위태롭게 하는 징조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러한 경제적 압박에 야구가 생존할 수 있을지, 가족오락으로 즐길 수 있었던 미국야구가 티켓가격 상승으로 변질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시간이 지나면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 미식축구 : 야구에서처럼 미식축구에서도 선수와 구단간 관계 변화가 있어 왔다. NFL 소유주들과 선수노조간에 1977년 협상은 신인과 고참선수를 위한 최소 연봉 기준을 설정하고, 선수 드래프트 제도를 변경하고, 선택조항option clause에 있는 Rozelle Rule을 개정하고, 선수노조를 인정할 것 등을 합의했다. 1982년 파업으로 인해 신인의 보수를 최소한 3만불로 하고 매년 만불 올릴 것과 18년 경력을 지닌 선수에게 20만불을 줄 것, 2년후에 퇴직수당에 대한 조항 등을 얻어냈다.
● 농구 : 선수와 구단간의 관계 변화는 프로농구에서도 발생했다. (1)선택조항option clause에서 명시하는 계약만료 후 1년을 묶일 필요가 없고 (2) 다른 구단에서 제시하는 계약이 현재 구단의 액수와 같다면 현재 구단은 우선권을 가지고 (3)보상규정이 1980년 없어 졌고 (4) 소유주들은 기존 체제로 인해 손해본 약 500여명의 선수들에 대해 450만불을 제공한 것 등이 이러한 변화를 포함한다.
3. 프로선수의 연봉, 과연 높은가?
프로선수들의 높은 보수에 대해 일반인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일반인들은 프로 스포츠가 사업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보통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프로선수들은 운동만 하면 되는 팔자 좋은 사람들로 인식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프로스포츠 산업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다른 시각에서 그들의 보수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선수들의 높은 수입은 재능의 희소성, 프로스포츠 평균경력기간, 운동으로 인한 부상, 타 전문 업종과 비교 등의 요소에 의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 원칙 중의 하나가 희소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 사람에 비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탁월한 수준에서 프로 스포츠를 시합하는 데 필요한 운동적 재능은 극히 희귀한 재능이다. 1990년을 기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는 725명, 미식 축구 1400명, NBA에 345명, NHL에 525명에 이르는 선수들이 있지만, 전체 선수를 미국의 비슷한 또래인 20대와 30대 전체 남자 인구(2천 2백만명)와의 비율을 따져 보면 만 명 중의 한명 꼴인 셈이 된다. 한국도 1999년을 기준으로 프로축구 407명, 프로 야구에 401명, 농구에 212명의 선수가 있는데 평균 젊은 청년인구와의 비율을 따지면 역시 미국과 유사할 것이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참여하는 희소성이 높은 직업이다. 어쩌면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는 것보다 의사가 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프로 운동 선수의 높은 임금은 선수활동 기간의 측면에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년 퇴직할 때까지 같은 직업에 종사한다. 직업을 전환하는 경우에도 대개는 유사한 업종 내에서 이루어진다. 반대로 프로팀 스포츠 경력은 매우 짧다. 평균 활동 기간은 4년 정도에 불과하며, 그들의 높은 수입은 팀에 대한 기여가 끝나면서 중단된다. 더욱이 일반 직장과는 달리 연금제도나 퇴직금의 혜택이 없다.
프로 선수라는 직업 자체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팀에 기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항상 부상의 위험이 따른다. 부상은 많은 선수들의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고, 몇몇 부상의 경우에는 영구적인 신체불구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미국에서 440명의 전 NFL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78%가 선수시절 입은 부상으로 고통 당하고 있으며, 54%는 심리적 적응 문제를 느끼며, 66%는 운동이 그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 프로선수들이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반면, 미국 통계청 The United States Bureau of the Census은 프로선수를 연예인(entertainer)으로 분류하고 있다. 프로 선수들의 수입과 대중 연예인의 수입을 비교하면, 선수들의 수입이 결코 많지 않음을 알 수있다. 먼저 아래의 자료는 1989년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평균 연봉 내역이다.
프로농구(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577,200
프로야구(Major League Baseball) $490,000
미식축구(National Football League) $212,000
아이스하키(National Hockey League) $156,000
위의 스포츠 중 1989년에 가장 높은 연봉은 3백만불에서 3백 5십만불 가량이며, 4명의 NBA스타가 여기에 해당한다. 약 20명 내외의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이 2백만불에서 2백 팔십만불 사이의 연봉을 기록했고, NFL과 NHL의 스타급 선수들은 백만불 내외의 연봉을 기록했다.
위의 액수는 엄청난 액수임에 틀림없지만, 미국의 다른 연예인들과 비교해 보기로 하자. 1989년 Forbes에 발표된 스타연예인들의 수입내역은 아래와 같다.
Michael Jackson(대중 가수) $65million
Bill Cosby(배우 겸 코메디언) $60million
Sylvester Stallone(배우) $38million
Jack Nicholson(배우) $34million
Eddie Murphy(배우) $22million
외에도 40명의 스타급 연예인이 5백만불 이상을 버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위의 자료에 의해 연예인으로서 프로선수들이 버는 수입이 결코 많은 것이 아니고, 사실 희소성과 과업량에 비하면 충분한 보수를 받고 있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프로선수들의 임금을 다른 전문업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임금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역시 1989년 Forbes에서 발표한 전문직업인 중 상위에 올라 있는 사람들의 소득은 아래와 같다.
Michael D. Eisner(Walt Disney) $39,318,000
Steven J. Ross(Warner Communications) $11,947,000
Paul B. Fireman(Reebok) $11,439,000
John Scully(Apple Computer) $9,492,000
Dean Buntrock(Waste Management) $8,584,000
또한 Wall Street를 움직이는 100인의 평균 수입은 1988년을 기준으로 천5백만불이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또 다시 프로선수의 수입이 타 전문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수입과 비교하면 뒤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96년 연봉을 살펴보면 1억 이상이 7명이며 평균연봉은 3천여만원이었다. 또 2000년 기준 프로야구선수들의 1인 평균연봉은 4천만원 정도로 추정되며 프로축구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프로농구의 평균연봉은 약 7천만원으로 국내 프로농구중 가장 높다. 이렇게 보면 프로선수들의 보수가 다른 연예인의 수입에 비해 낮고, 평생 활동하는 의사나 변호사 등 타전문직의 소득과 비교할 때 프로선수들이 받는 보수는 결코 높다고 평가할 수 없다.
4. 프로선수단체의 역사: 성과와 한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경영자측과 집단적인 교섭을 벌이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87년 6월 항쟁 이후 노조결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왔으며, 초기단계에서 사용자측은 노조를 불온시 하거나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회사발전에 저해요인으로 간주하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짧은 기간동안 많은 단위사업장을 비롯하여 직능별 노조를 결성하게 되었고 금융구조조정에 저항하는 금융노조의 위력을 지켜보면서 노동조합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프로스포츠의 경우에도 선수들은 노조결성을 통하여 그들의 권익을 집단적으로 주장하고 관철시켜 왔다. 프로스포츠 대국인 미국의 경우 프로스포츠의 역사는 독점적인 구단들에 맞선 선수들의 권익쟁취를 위한 지나긴 투쟁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노조결성, 집단협상, 파업 등은 미국프로스포츠 발전과정에서 핵심에 해당한다. 미국프로선수들이 단체를 결성했던 최초의 시도는 1885년 '전국야구선수조합'(National Brotherhood of Baseball Players)이었는데, 놀랍게도 이 단체는 1890년 독자적인 리그를 창설하였다. 그해 그들은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으나, 재정적 한계와 National League의 강력한 견제로 인해 해산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1950년대 중반에 구단주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메이저리그선수조합'(Major League Baseball Players' Association)을 결성했지만, 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선수들은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NBA 선수조합(NBA Players' Association) 역시 1952년에 결성되었지만, 60년대 중반에서야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프로미식축구선수조합(NFL Players' Association)도 1956년에 결성되었으나 60년대 후반에서야 실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NHL의 경우 50년대 선수협의회 결성을 위한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으나 60년대 후반 구단에 의해 인정받았다.
미국의 경우 발견되는 특징은 50년대 각 종목의 프로선수들이 자발적인 선수단체를 결성했으나, 모두 60년 중반이후 실질적 힘을 행사하게 되는 점이다. 이는 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 물결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성해방운동, 흑인차별철폐운동, 반전운동으로 인한 미국 전체가 개인의 인권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프로선수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선수조합이 활성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80년대 후반 사회민주화와 노동조합 결성이 활기를 띨 무렵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최동원 선수를 주축으로 선수단체 결성의 시도가 있었다. 물론 구단들의 파상적인 공세로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없이 무위로 끝났지만, 당시의 실패경험을 토대로 축적된 역량이 지금의 선수협의회로 이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은퇴선배 야구인들에 의한 지원이 저조한 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선수들이 협의회든 노조든 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생산의 관계와 관련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프로선수들의 조직이 다른 노동조합과는 달리 왜 강하지 못한 가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선수활동 기간이 4년 이내이고, 이 기간동안 선수들은 그들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선수들은 노조에 가입하거나 지지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못한다. 프로선수들이 구단의 횡포에 침묵하고 굴종하여 온 것도 그들이 뭘 몰라서가 아니라 프로스포츠라는 직업이 갖는 이러한 특징 때문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수명은 4년이고, 몇몇 우수한 선수를 제외하고는 30대 초반에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이 기간동안 선수들은 은퇴후 여생을 대비한 돈을 벌어야 하는 셈이다. 특히 운동 말고는 다른 지식이나 전문성을 갖지 못한 은퇴 선수들이 사회생활을 성공할 가능성은 쉽지 않고, 지금까지 많은 사례를 보아 왔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번 선수협 결성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노동운동가 못지 않은 용기와 신념을 지닌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들의 활동은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등 한국프로스포츠사에 길이 평가 될 것으로 보인다.
② 프로스포츠선수들은 일반 노동조합과 연대가 느슨하다. 프로선수들이 다른 노동단체들에게 고립되어 있는 이유로 조직경험이나 조직적 지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선수 직업을 자영업자로 부류하고 있으며 프로선수 자신들도 스스로가 노동자로 인식하고 계급적 인식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섣불리 외부단체와 연계하거나 지원을 받게 될 경우 배후불순세력 조종이라는 KBO의 살인적인 공격을 선수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조직적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거대 자본가들의 결합체인 KBO와 맞붙고 있는 형국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KBO 총재가 '선수협이 결성되면 프로야구 문을 닫겠다'라고 할만큼 KBO는 애초부터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을 넘어선 팬들의 여론과 10개이상의 시민단체들의 지원이 조직화되면서 선수협과 KBO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과 KBO 싸움 양상으로 확전되는 추세이다. 아마도 KBO는 대국민과의 확전은 결단코 피하려 하기에 강온전략을 상황에 따라 구사하고 있다. 여론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선수협은 진작에 피범벅 된 채로 난파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여론의 힘은 절대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③ 개인 성적이 수입과 직결되는 프로스포츠의 속성 때문에 선수들은 구단과의 부당한 관계 개선에 힘쓰기보다는 자신의 기량 연마에 매진하게 된다. 이 점 역시 일반 노동자들의 환경과 크게 다른 점이다. 노동자들은 계급적 의식을 공유하므로 동료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또 개인적 기능이나 능력보다는 연공서열 의식이 무엇보다 앞선다. 그러나 프로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신분이 불안한 직업군이다. 훈련중이나 시합 중 부상, 슬럼프 등의 상황이 오면 엔트리 멤버에서 제외되고, 이 기간이 지속되면 퇴출되는 운명을 누구나 지니고 있다. 이러니 설사 구단의 횡포가 극에 달할 지라도 자신의 기량만 인정받으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선수협의회에 대해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승엽 선수가 대표적 경우라고 볼 수 있다.
④ 프로선수들은 어릴적부터 순종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다. 스포츠 세계가 보수적이고 선배나 코치에 대한 복종을 가르친다. 특히 야구, 축구, 농구 등 단체경기일수록 상급자에 대한 충성 내지 복종은 필수적이다. 팀 구성원들이 일사분란한 체계를 갖추는 것은 연습을 위해서나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도 복종은 절대적 미덕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선수처럼 지도자와 선수간, 선후배 선수간에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고한 예는 드물다. 따라서 운동선수들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금기시하게 되고, 노동조합이든 선수협의회든 기존 권위에 대항하는 단체를 반대하는 개인적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 동안 믿고 따랐던 선수들의 코치와 감독들이 선수협의 파괴임무를 하는 것에 선수들의 좌절과 실망, 그리고 인간적 고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 노동조합에서 회사의 운동부가 구사대 역할을 하거나, 대학의 시위현장에서 체육대학학생들이 쉽게 동원되는 것도 이러한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프로스포츠 중 왜 야구만이 선수단체결성 시도가 되고 있냐는 점이다. 프로축구나 농구도 면면을 살펴보면 합리적이고 못한 구단의 일방적 규정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결국 이번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의 결과는 여타 프로스포츠의 선수단체 구성으로 이어 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상의 이유로 인해 프로선수노조는 일반 노동조합처럼 잘 작동되지 않고, 그들이 관심범위는 극히 협소하다. 예를 들면 선수노조는 프로스포츠계의 하층에 해당하는 2군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거의 나타내지 않고, 일반 노동조합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 이외의 문제에는 염두에 없다. 프로선수노조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리그에 맞서 큰일을 벌려 왔다. 예를 들면 미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는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7가지 법정 싸움을 승리했고, NFL 선수들은 법정 소송을 통해 자유계약제를 쟁취했다.
선수노조에 대한 구단주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바이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을 수 없는 일종의 하극상이라는 심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구단주들은 모기업인 재벌을 통해 인사가 이루진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노조를 탄압하는데 전문적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본질적으로 노조를 무시하거나 불온시하는 경향을 지닌다. 선수협 주동선수 방출을 계기로 전체선수의 절반이상이 선수협에 가입한 현시점에서도 삼성과 현대의 선수들이 단 한명도 동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모기업의 노조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대부분 구단주들에게 선수노조는 금전적으로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파괴해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번 선수협 결성의 주동급에 해당하는 선수들은 방출하는 결정은 그리 놀라운 일이 못된다.
5. 선수협 제대로 읽기
해마다 스토브시즌이 되면 선수와 구단은 연봉협상을 한다. 구단이 월등한 우위를 갖는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에서 협상과정에서 선수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다. 규정에 의해 선수들이 구단과 합의를 보지 못하면 KBO에 연봉조정 신청을 하는데 1984년 이후 75건이 신청됐지만 1건도 선수가 이긴 사례가 없다. 이것이 프로야구의 현주소이며, 선수들의 선수협의회 구성은 십분 이해될 수 있다.
선수협의회가 성공하는 조건중의 하나로 최고 스타급 선수들의 희생이 필요하고 미국의 경우도 그랬다. 1885년에 결성되었던 미국프로야구선수조합(Brotherhood of Professional Baseball Players)는 만티 워드(Monte Ward)라는 당대의 슈퍼스타가 주도하였고, 세계프로축구는 마라도나가, 미국 NBA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슈퍼스타급 선수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슈퍼스타들의 경우 구단에서 섣불리 통제하기 힘든 유리한 입장에 있고, 반면 평범한 선수들은 구단에 잘못 보일 경우 방출, 연봉삭감 등 신분상의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100년전 미국프로야구에서 American League와 National League의 전체 관중은 300만에서 400만명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에 비추면 우리의 경우 올해 관중수가 250만명으로 아직 우리의 프로야구 규모는 미국의 100년전 수준이다. 우리의 프로야구 시장이 협소하므로 선수들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구단의 주장은 프로스포츠의 본질을 간과한 탓이다. 프로스포츠는 산업이며, 프로스포츠의 역사는 초기부터 구단의 독주에 맞선 선수들의 권리주장을 위한 선수협의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구단이 적자라는 이유로 선수협의회가 시기상조라는 주장 역시 프로야구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1994년 미국프로리그 사상 최장기간의 메이저리그 파업이 있었던 것은 구단의 적자를 선수연봉 삭감으로 메우려는 처사에 대한 선수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구단의 자산가치를 매입시와 매각시를 비교하면 당장의 구단적자는 전체 자산가치의 한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0년전에 200억에 산 구단을 400억에 팔았다면 양자의 차액인 200억원이 자본이득이 되고 그동안의 계수상 운영적자가 상쇄하게 된다. 특히 야구를 비롯한 한국프로스포츠는 구단의 이윤창출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모기업의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프로야구팀중 가장 인기구단인 L구단은 1년간 약 100억원의 지출에 수입은 40억원에 그쳐 산술적으로는 약 6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기업논리에 따르면 이러한 회사는 망하거나 매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이유는 바로 모기업의 홍보효과 때문이다. 대기업 소유주는 구단의 하나의 독립체가 아니라 계열사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으며, 모기업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룹의 광고효과를 노리고 있다. OB가 두산으로, 빙그레가 한화로 이름을 변경한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프로야구는 시즌 내내 화제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광고가 가능하고, 프로팀은 가장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광고수단이 된다.
그러나 지난 겨울에 이은 이번에도 한국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는 선수협 파동은 프로야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첫째, 프로야구의 체질 개선이 가능할 수 있다.
프로야구는 계수상 밑지고도 남는 참으로 묘한 사업이다. 모기업의 광고전략 속에서 프로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하니 이윤창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은 뒷전일 수밖에 없고, 프로야구 시장이 협소한 관계로 기업은 구단운영을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는 기대는 애초에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관람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의 적자운영을 만회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프로야구 전문 경영인제도를 도입하여 각 구단들은 새로운 경영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또 커미셔너와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여 구단과 선수간의 의견을 절충하는 선진형 운영방식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구단과 선수는 인간적, 감정적 관계로부터 상호 공식적인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둘째, 전용구단을 확보할 수 있다. 구단의 전용구장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연고지역의 시도가 보유하고 있는 경기장을 임차하고 있는 실정에서 시설에 매우 열악함에도 구단은 자신들의 자산이 아니므로 시설을 개선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000년부터 LG와 두산에 의해 민간 위탁되고 있는 잠실야구장의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로야구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출발했다 할 지라도, 지난 20년간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국민과 함께 나누어 왔다. 최고 있기 있는 프로야구가 아직 전용구장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구단은 물론 정부도 각성해야 한다. 전용구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연고지역의 경기장을 해당 구단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지방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선수협 사태해결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용구장확보나 경기장위탁운영에 관해 구단에게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구단은 전향적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풀뿌리 야구를 확립할 수 있다. 프로야구의 관중 현황은 출범초기 140만, 90년 300만명, 95년 540만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내외적인 요인으로 99년 330만명, 2000년 250만명으로 감소추세에 있다. 일본의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 중계를 통해 대부분의 경기에서 관중석이 메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로스포츠가 발전하기 위한 처음과 끝은 관람객 수에 달려 있다. 관람객이 많아야 입장수입은 물론 광고료, 방송권료 등 주요 수입원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중은 저절로 증가하거나 인위적 노력으로 증가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풀뿌리 야구의 기초가 확립되어야 한다. 프로야구가 인기있는 일본의 경우 한 학교에 몇 개의 팀이 있고 직장에서 수많은 야구팀이 운영되므로 오후나 주말이면 일본 어디를 가든지 야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풀뿌리 야구를 기반으로 프로야구가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풀뿌리 야구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초중고등학교 야구팀을 다 합쳐도 수십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선수들의 목적은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에 있다. 거듭 말하지만 프로야구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 풀뿌리 야구 저변이 확산되야 하는데, 이를 위한 구단이나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요망된다. 이번 선수협 파동을 통해 프로야구의 본질이 알려 지고 이의 해결을 위한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 생산적 과정이지, 단지 선수협과 구단의 대결 구도만 부각되는 것은 선수들이나 구단 양자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6. 나오는 말
선수들과 구단의 갈등이 해소될지 증폭될 속단할 수 없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노조가 공식적으로 결성된 이후에 일어났던 선수파업이나 리그폐쇄 조치 등은 1968년 풋볼리그를 시작으로 총 18차례나 이었다. 미국에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한국프로야구 구단과 선수와의 갈등은 이제 그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선수협이 프로축구, 농구 등에 미칠 파장은 분명히 예측된다. 따라서 야구선수협은 비단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스포츠 전반에 걸친 선수들이 위상과 권익에 대한 요구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넓게 보면 한국체육계의 민주화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보아진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체육세계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기존 권위나 체제에 대항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직전 전두환 정권의 호헌 선언에 대해 각계의 서명운동이 있었고, 교수들은 그 선두에 있었다. 호헌 반대 서명에 참여했던 1700여명에 달하는 전국대학교수 중 체육학과 관련 교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과거 독재정권에 항거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체육인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대가 변한 지금도 대한체육회, 생활체육협의회,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등 체육계의 주요 단체의 장 대부분이 과거 3공 인사부터 5, 6공 관련인사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의 일치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체육계 내부의 민주화 세력이 부재하면서 처신에 능한 인사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득세했는데, 체육계 내부에 이들을 견제할 만한 건전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선수협 파동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선수협은 체육계 최초의 민주화 세력이며, 그것도 거센 비바람을 맞고 버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깊다. 선수협은 선수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체육계 전반과 연결되는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거대 자본가들과 젊은 선수들과의 싸움에도 체육계는 침묵해 왔다. 그러나 최근 체육계는 지난 6월 장희진 선수 파동시 징계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앞장섰던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교사, 지도자, 선수 등이 참여하는 선수협 지지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새로운 희망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야구계의 반응은 주시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눈치를 보거나, 양비론의 입장인데 반해 공개적으로 선수협을 지지하고 있는 야구인은 이상훈, 박찬호, 정민철, 조성민, 박철순, 김영덕 씨 정도에 불과하다. 어릴 적부터 정과 의리로 엮여 있는 야구인들의 동지적 모습은 간 데가 없다. 이승엽 선수의 경우 노심초사해 하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알려 지면서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을 목도한다. 이승엽이 홈런만 잘 날리는 이유로 국민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자고로 스포츠 영웅이란 운동기량에서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상징적 모델이다. 반면 체육과는 관련없는 경실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민노총, 한국노총의 노동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한국체육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선수협 동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선수들이 구단과 동등한 관계라고 인식할 때까지 선수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선수협은 멀고 험한 길로 이제 막 들어섰다는 뜻이다. 설사 이번 선수협 파동이 구단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할지라도 진정한 종말이 아니라 선수협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또한 선수협이 정식으로 인정되어 사단법인까지 설립할지라도 사태가 해결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국면의 시작일 뿐이다. 최악의 경우 구단은 시즌취소라는 최후카드를 던질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만성적자의 프로구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기업의 주요한 홍보수단을 포기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수협을 지지하는 국민적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직장폐쇄에 준하는 시즌취소라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선수와 구단은 때로는 대립관계로 때로는 프로야구발전의 파트너라는 이중적 관계로 발전할 것이며, 이러한 이중적 관계의 확립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스포츠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는 길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