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9. 8. 13. 월요일.
나는 요즘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한 자료를 검색한다.
2019. 7. 24. 첫 개봉.
영화는 성공했을까?
개봉 21일째인 8. 13.에는 관람객수 1,033명
누계는 아직까지 95만 명이 채 안 된다.
이런 숫자가 계속 이어진다면, 영화 흥행은 실패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세종대왕이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을 만들고, 3년 뒤인 1446년에 백성한테 널리 알렸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편에는 1443년 12월 30일에 새로 창제했다는 문구가 나온단다.
역사책에는 신미가 창제에 참여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일부 寺家에서는 '중 신미가 1438년(또는 1435년)에 훈민정음을 벌써 만들어서 책을 냈다면서
근거로써 '원각선종석보' 5권 중 1권이 있다며 주장했다.
※ 세종대왕(1397 ~1450년, 재위기간 : 1418 ~ 1450년)
역사왜곡의 핵심은 중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설이다.
어디부터 시작되었을까?
1) 충북 보은 속리산 복천사 주지였던 신미에 대한 야사(통용되는 야설 수준)
※ 조계종, 불교신문, 불교인 등은 신미의 훈민정음 창제설을 적극 지지한다.
- 속리산 복천사 주지, 월성스님의 신미대사 연구 : 30년간 연구 운운...
2) 신미대사 김씨의 족보(영산김씨 대동보 : 언제 발간?)에 바탕을 두고 : 지극히 최근 대두, 국사학계의 신뢰도는?
3)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의 훈민정음 창제 관여설도 지극히 최근에 대두
- 죽산안씨 대동보(1976년 발간)에 바탕을 두었다. 개인 야사 수준.
※ 정의공주는 1428년 14살 때 시집 감
4) 최근 창작소설이 많이 나왔다.
※ 창작이란 허구를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이지, 실제 사실은 아니다. 실제라면 역사, 다큐먼터리일 터.
- 2000년대 이후
5) 지극히 일부 학자들의 개인적인 주장을 과대하게 받아들인 결과?
6) 황당한 글자 모방설 대두 : 20여 개의 고대문자 차용설...
▲ 신미대사에 대한 연구 시작 시기?
1) 지극히 최근이다.
(1) 보은군 소재 복천사 월강스님이 30여 년간 연구했다. 지극히 최근이다.
30년 전이라면 1989년?
(2) kbs 역사스페셜 '한단고기 추적; 1999.10.
(3) 강상원 씨, 신미대사 한글창제를 처음 주장한 시기는?
2000년 초?
(4) 불교신문, 법보신문에 신미대사 훈민정음 창제 보도는? 2004. 9. 29. 제773호
(5) 2010년 이후 소설책이 마구 쏟아져 나옴
- 한글의 역사와 미래 /책 김정수
2) 신미, 한글창제설의 근원지?
(1) 소설의 배경이 된 정의공주(죽산안씨 대동보) : 최근판
(2) 소설, 영화의 배경이 된 신미(영산김씨 대동보) : 최근판
▲ 나랏말싸미 영화가 낳은 후유증은 무엇일까?
역사 왜곡했다며 영화 관람객수가 곤두박질했다.
1) 불교계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 하락
2) 창작 예술인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소설계, 연극계, 영화계 등)
3) 지극히 개인적 의견에 불과한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신뢰도 하락
4) 지역적 인기에 영합한 충북도청, 보은군의 행정지원
- 속리산 법주사 인근의 정이품송 소나무 단지에 신미대사 공원 조성 : 2018. 11.
5) 냄비근성을 지닌 일부 네티즌의 과잉반응 (영화개봉 초기에...)
6) 언론기관의 기획보도(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면서 기사 작성...)
※ 불교계에 대한 신뢰도 상실이 무척이나 크다고 예견한다.
이런데도 아직도 ...
불교신문 제3511호(2019. 8. 17.)에는 나랏말싸미 영화 부진한 이유에 대한 글이 올랐다.
' 타종교의 조직적인 왜곡곤란 때문이다. 음해성 댓글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사화관계망 서비스에 비난성 글을 올렸기에 영화가 조기방영을 불러왔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하지 않았다는 국민적 판단을 종교계에서는 아직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증거.
▲ 왕가, 사대부에서는 훈민정음을 제대로 활용했나?
1800년의 실학파인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은 한글로 된 책 하나도 쓰지 않았다?
- 정약용 : 200권 쯤의 책에서 한글로 쓴 책은 있을까? 전혀..아닐 게다.
. 정약용(1762 ~ 1836년 )
. 박지원(1737 ~ 1805년)
. 박제가(1750 ~ 1805년)
실학파조차도 이랬으니 왕가, 사대부의 대부분은 한글사용을 천대, 무시했을 터...
▲ 훈민정음 창제자와 협조자는 누구인가?
1설) 훈민정음은 신미가 혼자서 1438년(1435년)에 창제했다.
- '원각선종석보' 발간년도 1438년 : 훈민정음보다 8년 전에 창제했다고?
※ 강상원씨는 세종3년 1435년설도 주장.
- 강상원 씨 '원각선종석보' 책 1권을 근거로써 주장. 이 논리가 설득력을 지니려면...
- 원각선종석보(목판본)를 본 사람은 '일타스님'이라 하며, 20년 전에 죽었단다.
책은 전혀 공개가 안 된다고...
2설) 신미가 주도하고, 세종이 협조했다(1443년 창제)
3설) 세종이 주도하고, 신미가 협조했다(1443년 창제)
4설) 세종 혼자서 창조했다(1443년 창제)
- 집현전 학자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5설) 세종이 주도하고, 집현전 학자가 협조했다(1443년 창제) : 지금껏 학교에서 배웠다.
6설) 세종과 그의 따님이 창제했다(1443년)
- 집현전 학자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위 가운데 1설)이 문제이다.
신미대사가 혼자서, 오래 전에 창제?
1) 훈민정음 반포년도보다 8년 전이라고? 1438년
2) 훈민정음 창제년도보다 8년 전이라고? 1435년
▲ 내가 보는 견해
- 국어학회/역사학회의 정식 의견이 없다(인터넷에서는 미확인, 차후 확인 예정).
- 21일간의 추적만으로도 나는 고개를 가로 흔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할수록 더욱 더 가로 흔든다.
1.
여름이 무덥다.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매미가 운다'는 표현이 맞는가?
매미가 슬퍼서 엉엉 울던가?
매미가 속상해서 칭얼거리며 울던가?
매미가 화가 나서 소락대기치면서 울던가?
매미가 기운이 없어서 흐느적거리며 울던가?
매미가 기운차게 왕왕거리며 울던가?
매미가 목구멍이 터져라고 울부짓던가?
왜 '운다'는 표현을 쓸까? 이게 맞는가?
매미가 소리내는 원리는?
목구멍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는 아니다.
배 부위에 있는 살갗을 부딛쳐서/떨어서 내는 소리인데 왜 '운다'고 표현할까
'운다'는 표현은 매미한테만 쓰는 것은 아니다.
'새가 운다'라고 표현하니 조류는 다 해당될 터.
새가 슬퍼서 우냐?
새들은 웃을 때 어떤 소리를 낼까?
'역사는 강자가 새로 쓴다'는 말이.... 계속 이어진다.
근거, 증거, 사료, 논리 부족으로... 현혹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