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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반겨주는 토우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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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의 자연을 사랑하던 한 남자 김영갑!
제주는 화산섬으로 돌많고 바람많고 여자가 많다.
척박하고 물이 빠져버려, 비가 많이 오지만,
늘 물이 부족하여사람 살만한 땅이 못된다하여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버려진 땅이엇다.
제주는 비가 많이 와도 바위틈으로 다 새고보니
물이 고이질 않아 벼농사도 지을 수 없어 먹고 살 곡식도 늘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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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사진도구를 짊어지고 오름을 오르는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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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은 본래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런 김영갑은 역마살이 많았던지
넓고 풍요로운 충청도 고향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 저리 카메라를 둘러메고 떠돌며 다니다가
돌많고 바람많고 여자가 많다는 이곳 제주의 자연환경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제주시와 서귀포를 필두로 관광지는 자꾸만 변해가니
자연을 사랑한 그는 도시와 관광지를 피하여 사람들이 떠나가는 이곳
제주도 북사면 산간지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이 떠나는 곳이라, 빈집을 그냥 살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분신들인 제주의 자연 사진을 정리하고자
사람들이 떠나고 그래서 비어있던 이곳 폐교를 값싸게 얻어서
마지막 자신의 혈육대신 힘겹게 다니면서 담아온 자신의 사진들을 정리하였다.
이제 그는 떠났지만,
그가 빌려서 살던 곳이 그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는 그의 기념관이 되었다.
살아서는 돈이 없고 몸은 아파서 너무도 쓸쓸하고
가꾸기도 버겁고 크기만 했던 학교 건물과 교실들은 이제 말끔히 개조되었다.
이제는 그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김영갑의 삶은 기억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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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 밑에 피어난 수선화들 벌써 봄을 재촉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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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의 마당에는 제주의 화산석으로 쌓은 돌담과 나무들
그리고 그를 찾는 듯 보이는 흙인형들이 군데군데 놓여있다.
마당의 한쪽편 외로운 하루방은
낡은 사진기를 둘러메고 있는 모습이 마치 김영갑을 연상케 한다.
이곳 저곳 그의 삶의 자취를 살펴보며,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는 없고,
오직 자신이 담아왔던 사진들만 뒤적이던 김영갑을 상상해본다.
그가 세상을 하직 할 때는
이곳이 이처럼 자신을 기념하는 곳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이제라도 그의 혼백이 있다면,
멀리 제주하늘을 떠돌다가 들러본 이곳이 정말로 흐뭇할 듯 하였다.
아 ! 그는 갔지만, 치열했던 삶의 자취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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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이 깊어 사진도 못찍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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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찾는 여행가들은 대부분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 천지연폭포, 주상절리 등
아름다운 절경의 바닷가와 이곳 저곳에 새롭게 조성된 관광지 위주로 보다가 돌아간다.
그런 가운데 남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제주도 중산간에 버려진채 놓여있던 돌무더기 오름과
그 오름을 차지한 억새들 속에서 치열한 삶을 간직한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자연속에 살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고
생명의 소중함임을 느끼는 현장이었음을 실감하며 살다간
사진가 김영갑의 삶을 엿보고 가는 것은
또 다른 제주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