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함께 춤을 / 이부림
삼남매가 아이를 둘씩 낳아서 손자 손녀가 여섯 명이다. 공교롭게도 터울이 모두 한 살이라 갓난아이부터 여섯 살짜리 까지 있다. 자기 식구끼리만 올 때도 큰애와 작은애를 번갈아 고루 예뻐해 주어야 하는데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은 차례로 맞아 정을 고루 나누어 주느라 바쁘다. 정이란 게 한정된 것이 아니고 무한정 솟아나 주니 얼마나 다행한가.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먼저 온 아이들은 뒤에 오는 사촌들을 반기는 어른들의 행동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자기보다 더 꼬옥 안아 주는지 볼에 뽀뽀는 얼마나 오래 하는지 비교해 보는 모양이다. 샘이 날 때는 다시 안기는 녀석도, 손을 잡고 빙빙 도는 녀석들도 있다. 아이들 엄마 아빠들도 어느 아이를 더 귀여워해 주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눈치가 보인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정이 들어가지만 아무래도 자주 만나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녀석들이 더 생각나고 보고 싶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동안 해마다 집안에 갓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젖먹이는 먹고 자고 먹고 자다가 배가 고프거나 아프다든가 기저귀가 젖어 있으면 울음소리로 자기 상태를 알려 준다. 금세 잠들지 못하고 칭얼대면 안아서 재운다. 계속 보채면 가슴에 안고 가만 가만 다독여 주다가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는 일어나서 걷는다. 걷는 다기 보다 두 발로 바닥을 밀고 있다. 조심스럽게 왔다 갔다 흔들거리다보면 ‘하나 두울 셋 넷’ 어느새 아가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남녀가 밀착해서 추는 불루스처럼 아가와 한 몸이 되어 천천히 움직인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분명 불루스 스텝을 밟으면서 불루스 멜로디를 떠올리는데 입으로는 소곤소곤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 꿈길에 들어선 아가를 살포시 껴안고 블루스 춤만큼이나 감미로운 정을 나누면, 아가의 고른 숨결이 나의 숨소리마저 잠재워 준다.
어른들 무릎에서 두 발로 뛰며 자란 애기들이 요즘은 TV어린이 프로나 DVD학습교재 영상을 통해서 일찍부터 율동을 익히고 리듬감각을 키우고 있다. 두어 살짜리도 TV에서 본데로 몸을 흔들고 네다섯 살이 되면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춤으로 온 가족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꼬맹이의 키에 맞추느라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허리를 굽혀 조무래기들의 두 손을 잡는다. 팔짝 팔짝 잘도 뛴다. 경쾌한 폴카다. “하나 두울, 하나 두울”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옆으로 아이를 따라 춤을 춘다.
우리 함께 손잡고 오른쪽으로 돌아요.
우리함께 손잡고 왼쪽으로 돌아요.
내 손뼉 치고 네 손뼉 치면서 우리 함께 놀아요.
조그맣고 따스한 손의 감촉이 주름진 손으로 흘러든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 혈육의 온기가 서로에게 스며든다. 혼자 추는 춤도 흥겹지만 몸놀림이 상대와 일치 할 때의 즐거움도 저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할머니의 동작이 저희들과 틀렸을 때 꼬마들이 난감해하며 까르르 웃는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네 살짜리 손녀는 발레를 배운다. 발레리나로 키운다기보다 어려서 몸매를 잡아주고 리듬감각을 익혀준다고 한다. 앙증스럽게 발꿈치를 들고 한 발로 서서 팔을 옆으로 쫘악 벌린다. “ 발레는 이렇게 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따라 하기 힘들어 중심을 잃고 뒤뚱거리면 “까르르 까르르” 자지러지게들 웃어제낀다. 만약 우리 집의 이 정경을 영상으로 남겨둔다면 할머니가 애들 같다고 하겠지.
프랑스 샹송가수 앙드레 클라보가 부르는 「아빠와 함께 춤을」이라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가 외출한 동안 아빠가 어린 딸과 함께 춤을 추는데 여자아이가 음악에 맞추어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이리온 귀여운 아가야 아빠와 왈츠를 추러 오너라.
아빠에게 왈츠를 배우러 오너라.
엄마가 나간 동안 나하고 빙글빙글 춤을 추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자 이렇게 (까르르)
옛날에 엄마도 이 곡을 좋아 했단다.
이리 온 나의 보물 아가야. 자, 다시 한 번 좀 더 높게 (까르르 까르르)
왈츠를 추자 재미있니? 착한 아가야.
쉬러 오너라 내 품에, 왈츠가 너를 살랑살랑 흔들어 주는구나. (까르르르르르)
이 곡은 원래 <Come pretty little girl>이라는 제목의 미국 노래인데 오래전에 프랑스 곡으로 번안해서 앙드레 클라보가 불러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취입 당시 여섯 살의 작은 소녀였던 카트린 예젤은 레코드 회사 총지배인의 딸이었는데 그녀도 지금쯤 할머니가 되었겠지. 지상의 노래와 천상의 웃음소리가 합해진 듯 무한한 행복감을 안겨주던 샹송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카트린 예젤 보다 더 예쁜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손자들과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나는 팔순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은 키가 장대 같은데 그때 나는 지금 보다 더 늙어 조그라 들었을 것이므로 마치 내가 지금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이 아이들이 나를 내려다 볼 것이다. 남자 녀석들은 턱에 수염이 거뭇할 것이고 여자 애들은 가슴이 봉긋 올라와 있겠지. 그 때도 명절이 되면 지금처럼 세배 드린다고 우르르 몰려들 올 텐데 그때 녀석들은 내가 지금 어린 자기들 키에 맞추어 허리를 굽히고 춤을 추 듯 할머니와 춤을 추자고 할까? 그러면 나는 리듬에 맞추어 마주선 파트너에게 몸을 맡길 것이다. 허리를 펴고 우아한 자세로 가볍게 스텝을 밟을 것이다.
어느덧 나는 손자 녀석의 손을 잡고 앙드레 클라보의 「아빠와 함께 춤」을 ‘할머니와 함께 춤’이라고 제목을 바꿔 부르며, 나의 미래의 푸른 하늘 높이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를 띄어 보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