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마1:18-25)
[하나님 - 본문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 친히 구원의 통로가 되신 하나님(21)
마태복음 1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는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기가 유대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이고,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속에는 그분에게 주어진 사명이 담겨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더 정확히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유일하게 구원할 자' 그 분이 바로 태어날 아기 예수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류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친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통로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유일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2. 우리와 함께 하시는 약속의 하나님(22-23)
예수님의 탄생은 이미 기원전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28장에서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 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심으로 처음부터 영원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십니다.
[인간 - 본문속에서 나타난 인간]
1. 의로운 사람, 요셉(18-20,24-25)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있었습니다. 이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당시의 정혼은 혼인 이전의 약 1년간의 기간을 두고 각자의 집에서 생활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였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약혼과 비슷하지만, 당시의 정혼은 곧 결혼을 보장하고 있기에 지금의 약혼보다는 더 구속력있는 제도였습니다.
정혼을 한 사람이 죽게 되거나 부정한 죄를 저질러서 공동체에서 더렵힌 자가 되지 않는 한 파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혼한 마리아가 혼인 이전에 임신을 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당신의 몸을 통해 잉태된 아이는 바로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천사가 설명해줍니다.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질문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것을 마리아는 끝내 인정하게 됩니다.
요셉은 어땠을까요? 요셉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를 끝까지 인도적으로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가만히 끊는다는 것은 두 사람의 증인을 세워 비공개적으로 파혼을 결심했다는 말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하셨던 것처럼,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바로 구원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셉은 꿈에서 말씀하신 것을 믿었고,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 - 나의 삶의 적용]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그 분께서 친히 죄인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처참한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지신 구원의 통로가 되셨다는 사실왜 그러셔야 했을까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스스로 구원의 통로가 되신 예수님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이 된다는 사실이 참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죄인을 구원할 이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