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당대표 김용태? 그가 몰고올 세대교체 바람
2016. 6. 27
새누리당의 40대 김용태가 당대표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당선될 가능성은 아직 작아보입니다. 비박의 후보로 5선의 정병국이 도전장을 이미 낸 상황에서 총선에 책임이 있는 친박의 당권 장악을 막기 위하여 비박 후보들간의 후보 단일화 문제가 아마도 3선의 김용태가 넘어야 할 첫 관문일 것입니다.
필자는 얼마 전 정진석 원내대표에 의하여 혁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친박의 중앙위 무산으로 하루만에 자리에서 내려온 김용태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혁신위원장을 맡자마자 했던 발언은, 그야말로 새누리당 혁신의 핵심을 짚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달 전 우리는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그 패배의 순간보다 지난 한 달이 더욱 참담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민들이 새누리당에 '너희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얼토당토않은 대답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그것이 새누리당이 이 순간 처해있는 최대 위기"라면서, 이어 "혁신의 답은 이미 나와있다. 국민 모두가 다 알지만 새누리당이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라며 "국민들이 새누리당에 요구하고 있는 그 답을 정확하게 얘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또 "이미 혁신과제도 나 나와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다 뚫고 과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뼛속까지 모든 것을 바꾸는 혁신을 해나가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용태가 친박 최경환과 비박 김무성 등 관련자 전원에 대하여 당원권 정지를 포함한 강력한 조치로 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결국 혁신위원장에서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필자가 김용태에게 아쉬워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그의 미숙함이었습니다.
충남 대전 출신으로 한때 장기표가 창당한 민중당에서 이재오, 김문수, 차명진 등과 함께 했던 김용태는, 2004년 김문수 당시 공천위원장의 요청으로 하던 일을 중단하고 정치권에 뛰어들었습니다. 2004년 김문수의 공천은 구태 정치인에 대한 가혹한 숙청을 하였고,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후폭풍 속에서도 새누리당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김용태는 MB의 선거캠프와 인수위를 거치면서 친이계로 분류되었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무조건 자기편만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가진 소신파로 보입니다. 그는 18대 총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의 출마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하기도 하였고, 또한 정두언에 대한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공개적인 반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박대통령의 정책과 수직적 당청 관계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김용태는 이번 20대 총선에서 이한구 공천위원장이 가장 늦게 공천을 결정한 지역으로 자칫 공천을 받지 못할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김용태가 만약 바람을 일으켜 새누리당 당대표에 당선된다면, 그의 당선이 불러올 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우선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을 부르면서 김무성과 문재인 등 60대 대선후보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며, 친박계는 최악의 경우 대통령을 중심으로 탈당까지 고려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혁신위원장 임명 직후 성급한 행동과 발언으로 이미 실패를 경험했던 김용태가 다시 또 성급함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며, 당내 화합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조치는 취할 것입니다.
김용태가 소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지역구 관리를 가장 잘 하는 의원 중 한 명이며,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보다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와 같은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 방안을 마련하면서 지지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저지하면서 의회의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며, 이는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수혁신을 추진하는 김용태에 대하여 구태에 물든 야권 지지자들은 그저 MB의 하수인이니 하는 비난만 퍼붓겠지만, 김용태를 통한 새누리당 지지 확산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김용태의 새누리당 당대표 도전은 세대교체의 바람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김종인이 최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문재인이 아닌 안희정, 남경필, 원희룡을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치권에 크게 두 차례 세대교체 바람이 있었습니다. 첫번 째는 1971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이 꺼내든 40대 기수론과 김대중의 대선 출마였으며, 두번 째는 지난 2002년 노무현의 돌풍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김용태는 세번 째 세대교체의 바람을 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약수거사
(若水居士의 世上談論 http://blog.daum.net/geosa3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