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아픔 속에서도 ‘믿음’은 성장합니다 (연중21주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그때에 60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살아가는 동안 쉼 없이 가야 하는 고된 길입니다. 그 길은 주님께 인도하는 길이지만 일평생 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멀고 험난한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은 불행하게도 행복하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험난한 시련과 쓰라린 실패의 고통을 겪을 때는 깜깜한 밤 방향을 잃은 새와 같이 깊은 절망에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아주 작은 믿음조차 사라져버리고 주님의 존재조차 의심하게 됩니다.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이라지만 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려움은 커져만 가고 피곤하고 지친 영혼은 좀 더 편안한 길, 쉬운 길로 유혹하는 손에 쉽게 빠져들게 되고 믿음은 점차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유대사람들과 몇몇 제자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일으키자 군중들의 믿음은 극에 달해 자신들을 구원해 줄 그리스도라고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달콤한 말씀이 아닌 듣기 거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자 그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발길을 돌려 떠나버렸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순간에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믿음, ‘거짓 믿음’입니다. 믿음은 마치 순금을 가리기 위해 용광로 속의 뜨거운 불에 녹는 시련을 통해 증명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에서도 굴하지 않는 믿음만이 ‘참된 믿음’입니다. 사도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스승에 대한 변함없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 믿음’입니다. 아직 알 수 없기에, 아직 볼 수 없기에 더욱 더 필요한 것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서로 다른 양면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지만 그 빛은 믿음이 있을 때만이 길을 비쳐줍니다. 하지만 스스로 어둠과 의심의 장막을 가리우면 밝은 빛 속에서도 눈을 가린 것처럼 어떠한 불빛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볼 수 없어도 믿을 수 있는 참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여전히 주님께 의탁할 수 있는 믿음,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믿음의 길도 사도들의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행복할 때는 자신의 믿음이 아주 굳건하다고 믿습니다. 달콤하게 나를 어루만져 주시고, 격려와 힘을 북돋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나에게 항상 기쁨과 평화, 희망을 주시며 성공과 행운을 주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하고 절망이 시작될 때 믿음도 따라 흔들립니다. 시련 속에 헤매고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은 나에게 남은 평화마저 잃어버리게 하십니다. 모든 잘못이 나의 교만함과 자부심에서 시작되었다고 꾸짖고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헛되다고 꾸짖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꾸짖음은 나의 영혼을 도려내고 고통을 주시고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주시기에 주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습니다. 시련에 닥쳤을 때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생각해보십시오. 시련의 아픔 속에서 토로하는 고백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의 신앙 고백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힘과 사랑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베드로 성인과 같이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흔들리는 나의 믿음을 알고 있습니까? 무엇이 부족한 믿음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2. 믿음은 마치 순금을 가리기 위해 용광로 속의 뜨거운 불에 녹는 것과 같은 시련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시련이 있었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그 시련을 견디고 지금 주님 곁에 있었습니까?
<사진 설명> La Vang 성모발현성지 순례축제 1790년대 베트남에 종교 금지가 내려지자 이 지역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라방의 산과 숲에 숨어 지냈다. 당시 울창한 산과 숲에서 야생동물과 질병의 두려움 속에서 밤낮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련 속에서 그들은 반얀나무(cay da) 아래 모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하고 환난 중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돕기로 하며 시련을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 묵주기도를 하던 중, 헐렁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나타나 어려움에 처한 신자들을 위로해주시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흰 잎)를 골라 끓여서 마시도록 가르치셨다. 이후 성모님께서는 몇 차례 더 발현하셨다. 라방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 데 그 중 하나는 당시 울창한 숲이라 서로를 큰 소리로 La Vang (야호!, 메아리)이라고 부르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야생동물의 접근도 막았다고 하는데서 기원한다. 교회는 반얀나무 아래에 사방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초가집이었으나 그 후 여러 번 재건되었으나 지금은 종탑만이 남아있다. 1961년 로마 교황청에 의해 바실리카(Basilica )로 지정되었다. 성지순례 축제는 186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매년 8월15일 거행되는데 순례행사는 3년에 한번은 대축제로 ‘성모님 꽃 가마’를 정성껏 마련하고 거동행렬을 하며 성모님 발현을 기리고 있다. (베트남 후에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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