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 별세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회장, <민예총> 의장을 역임하시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신 한국문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께서 오늘 오전 8시 17분, 일산국립암센터에서 타계하셨다. 향년 88세.
(빈소와 장례절차는 장례위원회를 구성, 협의중이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2월, 약관 21세의 나이로 <문학예술> 제11호에
<갈대>, <낮달> 등의 시편이 추천돼 등단한 후 10년간의 오랜 침묵 끝에 1965년 창작활동을 재개한 신경림 선생님.
신경림 시인은 1973년 서정춘 시인의 도움으로 출간한 첫시집 <농무>(월간문학사, 1974년 창비 시선1로 재출간)로 1974년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1970년대 민족-민중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그 후 <새재>, <달넘새>, <가난한 사랑노래>, <남한강>,
<씻김굿>, <쓰러진 자의 꿈>, <길>, <신경림 시 전집> 등 불멸의 텍스트를 우리에게 남겨줌으로써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우뚝, 존재하셨다.
항상 과묵 진중하셨고, 난해한 언어로 된 쓰잘데없는 시집을 남발하지 않으셨으며, 과장되지 않은 작은 몸짓으로 후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다. 인사동 술청에 오다가다가 여러 번 선생님을 뵌 적이 있을 정도로 생전에 약주를 즐겨하셨다.
1993년 1월 23일, <민족문학작가회의> 제6차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재추대되었을 때 나는 김남주 상임이사와 함께 1년 동안 선생님을 모시며 사무국장으로 일한 바 있다.
그때 작가회의 일은 대부분 실무진에게 일임하시면서, 당신은 대내외적으로 조직을 대표하는 일에만 치중하셨다.
지난 2023년 11월 22일,<5.18기념재단>에서 간행하는 <5월문학총서>에 선생님의 5월시 <씻김굿> 재수록 허가를 받고자 잠시 통화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투병중이라는 소식은 언뜻 들었지만 선생님 목소리는 정정했고,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하셨다.
1956년 <문학예술> 지에 발표한 등단작이자 대표작 <갈대>에 대해
선생님은 어느 날 강연에서 "이 작품은 발표되고 나서도 여러 번 고치셨다."고 말씀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작품을 대하는 염결성이 대단하셨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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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ᆢᆢᆢ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