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망경]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전 병원에 ‘Code Green’이 확성기로 울린다. 환자도 병동직원도 코드그린이 자기네 병동이 아니기를 바라며 귀를 쫑긋 세운다.
코드그린은 정신과적 위기상황을 알리는 응급 시그널이다. 인근 직원들이 급히 서둘러 해당 병동으로 운집한다.
환자가 직원을 때린 경우에도 화급하게 터지는 코드그린.
교통신호등 ‘green’은 직진 또는 우회전을 해도 좋다는 마음 편해지는 신호인 반면에 ‘red’는 차를 정지하라는 위험신호다. 나는 가끔 위기상황을 ‘Code Red’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관료적인 단어선택은 늘 부드러움을 우선으로 삼지만, 사실 코드그린에 반응하는 모든 직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확성기가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것만으로 모자라는 듯 아나운서 자신 또한 힘껏 소리를 칠 때가 많다.
어릴 적 아버지와 새벽녘 뒷산 약수터에 가면 어김없이 야호! 하며 소리치던 어르신네가 떠오른다. 귀청이 떠나가라 울리는 코드그린만큼 우렁찬 소리! 왜 저 사람은 소리를 지르냐고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약수를 마신 후 기분이 좋아서라는 것. 대중탕 냉탕에 들어가 엄숙하게 앉아서 “동창이 밝았느냐~~♪” 하며 판소리 치듯 노래하던 동네 시니어 시티즌과 마찬가지 이유다.
우리가 공포영화의 무서운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강한 감정을 우아하게 컨트롤하지 못해서 얼떨결에 나오는 소리다. 나도 당신도 평생을 떨치지 못하는 동물 왕국에 성행하는 감성(感性)의 약점이다.
‘Bonding, 유대감 형성’에도 큰 소리가 도움이 된다. 더 자세하게는, ‘re-bonding, 유대감 재형성’이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장면, 아파트에 강아지를 오래 혼자 있게 한 후 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재회하는 순간의 감격이 떠오른다. 강아지가 항의를 제출하듯 큰 소리로 컹컹 짖어대고 끙끙 신음하며 주인에게 덤벼드는 모습이 애절하다.
아야! 하며 소리치는 순간은 본능적 현상이다. 예견된 고통이 아닌 부지부식간 나오는 소리. 좌절감에서 저절로 끙, 하며 터지는 신음도 마찬가지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 또한 감성 혹은 감각에 휘둘리는 강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말에 소리치다, 외치다, 고함치다, 부르짖다, 아우성치다, 비명을 지르다, 환호성을 올리다 같이 큰 소리를 잘게 분류하듯이 영어에도 ‘yell, shout, clamor, exclaim, scream, roar’ 등등이 있다. 이들은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말로서, 표현 속에 숨어있는 감정 상태가 잘 구별되지 않고 같게 느껴지기 일쑤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때와 기뻐서 내지르는 탄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이들도 강아지도 얼른 알아차린다. 그중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scream’인데, 북구와 고대영어에서 기원한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를 의미했다.
우리 토박이말 ‘새되다’는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는 뜻. 앙칼진 음성을 연상시키는 ‘scream’이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쓰인다.
우리 속어에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있지. 서부영화에서 동네 사람들이 한밤중에 보안관실 앞에 횃불을 들고 몰려들어 범인을 당장 (불법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소리치며 떠들어댈 때 용감하고 머리 좋은 보안관이 하늘을 향해 땅! 총을 쏘면 세상이 조용해지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보통 크기, 고운 말로 통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군중심리의 단면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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