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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 핵심포인트 3)
(※) 메인 포인트
수행이란 다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을 알아차리던 현재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간화선도 동일)
그리고 내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최고 목적은 불성을 증득하는 일입니다.
이외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ㅡ
오늘은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을 알려드리기에 앞서 마지막 잔소리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공부는 하지 마시고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십시오.]
입니다.
공부를 수행이라고 착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이것은 잘못된 것이랍니다.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간화선을 예로 들면 화두를 보다가 종국에는 의단(疑團)으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중간에 김이 빠져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전혀 불교 근처에도 안 가본 상태에서 그냥 법화경과 반야심경을 해석해 나가다가 하라는 데로 따라 해 보다가 된 경우인데요.
저처럼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문(疑問)을 가지고 파고드는 것과
어디서 잔뜩 비슷한 내용들을 듣고 와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의단이 뭉칠 새도 없이 김이 빠지고 만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단(疑團)이란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참구해 들어가는 의문(疑問)을 말하는 건데요.
이렇게 계속 의문을 가지고 깊이깊이 들어가다 보면 자연이 의단(疑團)으로 뭉치게 되어있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졌을 때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며 그 장난감에 푹 빠져드는 상태와 비슷하답니다.
그 아이는 그 장난감 외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어떤 수행이든 알아차림도 이런 상태가 되어야 한답니다.
(※)
부처님은 이 상태를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표현을 하셨답니다.
어떤 수행을 하시던 의문(疑問)과 의단(疑團)으로 다 몰리게 되어 있답니다.
만약에 의문(疑問)과 의단(疑團)이 생기지 않는 수행은 그것은 잘못된 수행이랍니다.
그냥 멍청히 앉아만 있는 거랍니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본성의 자리라 하고, 깨달음의 자리라 하고, 선정에 든 자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랍니다.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랍니다.
사람의 육체는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누구나 편안한 자리에 놔두면 평온해지고 편안해진답니다.
문제는 괴롭고 불편한 자리에서도 마음이 평온하고 편안해질 수 있느냐? 가 문제이지요.
이 내용은 부처님이나 유마거사 등이 수도 없이 지적했던 내용이랍니다.
어떤 수행을 하시던 어떤 알아차림을 하시든
"이게 뭐지?" ..?
"이게 뭐지?" ..?
하면서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의문투성이로 똘똘 뭉칠 때까지 의심해 들어가야 한답니다.
이것은 간화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모든 수행 방법이 여기에 속한답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스승들도 그랬답니다.
풍선에 바람이 빵빵하게 차서 뭉쳐 있어야 종국에는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랍니다.
우리의 몸은 뇌를 포함해서 어느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면 터질 수밖에 없답니다.
우리의 몸은 뇌를 포함해서 어느 한계점에 다다르면 내가 내려놓기 싫어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버리게 되어 있답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계점에 다다랐는데에도 내려놓고 버리지 않으면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차림 중간중간에 의문이 뭉칠새도 없이
자꾸 그동안 배운 것들로 인해 생각하며 김을 빼고 있으면 풍선이 말랑말랑 해지기 때문에 터질 수가 없는 거랍니다. (진실)
사람은 누구나 내 몸이라고는 하지만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1%도 안 된답니다.
잘 보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몇 %나 되는지요?
기껏 해봐야 움직이고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하는 것뿐이랍니다.
눈과 귀와 코만 해도 내가 보기 싫고 듣기 싫고 냄새를 맡기 싫다고 해서 그렇게 되던가요?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망을 못 채울 때의 그 고통들을 여러분들도 다 잘 알고 계시잖아요?
내 눈에 빤히 보이는 머리카락이나 손톱조차도 우리들은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들은 더 그러하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들이 란 의식, 마음, 생각 등이 여기에 속한답니다.
수행은 보이지 않는 기능들을 가지고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어려워 보일 수도 있는 건데요 사실 알고 보면 되게 쉽답니다.
부처님의 내용들을 잘 들어보면 엄청 재미있답니다.
저도 다 이분이 남겨놓은 말씀들을 듣고 배운 것 들이랍니다.
참으로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더라도 부처님에게 배울게 너무 많아요.
전 지금도 아무리 깨달았어도 부처님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아요.
이것이 진짜 공부랍니다.
참 이러한 것들을 여러 사람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있어요..
경전을 봐도 헛보는 것이지요..
위나 아래나 전 모두 같다고 봐요.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어른들이 살아계셨을 때 법문들을 들어보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물론 지금도 아주 조금은 계시지만 먹고살기 바쁜 분들이 되어버렸어요.
아무튼.. 그분 들은 그렇게 지내라 하시고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저와 함께 이러한 기능들을 손오공처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기술들을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손오공 내용들이 모두 수행에 관계되는 내용 들이랍니다.
우리 쪽 분들은 많이 해서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요.
저도 깨닫고 나서 손오공 내용들이 한눈에 들어왔는데요.
그전에는 저도 이런 뜻이 담겨 있는지를 몰랐답니다.
특히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은 컨트롤하기가 더욱 어렵지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망상이라고 합니다.
내 머리에 쌓아 둔 것이 많으면 망상이 안 일어나려야 안 일어날 수가 없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은 모두 다 버리셔야 됩니다.
그래야 잘 터질 수 있답니다.
여기서 터진다고 하는 표현은 간화선으로 하면 [화두 타파]를 말하는 건데요.
타파라는 뜻은 깨 버린다는 뜻이랍니다.
뭐가 뭉쳐있어야? 깨 버리든지 말든지 하겠지요.
타파는 간화선뿐만이 아니라 어느 수행을 하던 다 해당된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용이고요.
문제는 궁금증이 뭉쳐 있어야? 타파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그 궁금증을 공부 등을 통해 해결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궁금증이 뭉칠 수가 없는 거랍니다.
이것은 내 마음 안에 궁금증이 가득 들어 있어야 된답니다.
이것이 안 되는 것이 지금까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단점이랍니다.
처음에만 잠깐 궁금증을 몇 번 일으키고 유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평생을 하셔도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책 속의 내용들이나 스승의 말들이 맞는 내용이라 해도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모두 방해만 될 뿐이랍니다.
차리리 이해가 안 가도 경전을 보십시오.
그것이 훨씬 득이랍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알고 싶어 하는 갈증이 가득해야 되는데 그래야 종국에는 터지는데 그 갈증을 중간중간에서 해결 함으로 해서 터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뜻입니다.
수행이란 알아가는 것이 아니랍니다 모르는 것이 가득 뭉쳐 있어야 비로소 터질 수 있는 거랍니다.
어느 수행을 하시던 무조건 의식이 깨어서 알아차리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고 비워 보십시오.
책이나 그 외에 공부 등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요,
모든 수행은 사성제를 기반으로 두고 있답니다.
모든 수행의 순서는 대상만 다를 뿐..
1
의식이 깨져서 바라보고 알아차린다.
2.
원인과 의문과 궁금증이 내 마음에 가득 찰 때까지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고 알아차린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알아차림의 확립)
3.
타파를 다른 말로 소멸한다. 없애버린다. 버린다. 외면한다. 내려놓는다. 등등..
4.
이렇게 하면 저절로 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공부를 해서 궁금증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의문 덩어리가 형성되지 않는답니다.
이 의문 덩어리가 크게 생기지 않으면 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지는 거랍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거꾸로 하시면 안 됩니다.
참고로 제 경우는 단 한 번도 수행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된 경우랍니다.
그리고 불자로 시작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행 방법도 몰랐습니다.
그 대신 제 경우는 고서(古書)를 좋아했던 관계로 법화경을 2년 반 동안 거의 하루도 안 거르고 읽고 듣고 해석했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00에서 700번 이상은 읽고 들었을 겁니다.
그 이유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이게 뭐지?" 하는 그 궁금증이요.
미련하게 그렇게 많이 읽고 들었는데도 저는 단 한 줄도 이해를 못 했답니다.
저는 그 당시 이것이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답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법화경 내용을 아주 우습게 보고 접근을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책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반야심경을 따라 하다가 저는 터진 경우인데요.
지금 돌이켜 보면 법화경이 저에게는 화두였던 것이고 반야심경이 타파 역할을 해줬던 것이지요.
다행히 그때 저는 중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옆에서 이것을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저는 그 당시만 해도 기독교인으로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선교사들을 뒤에서 돕고 있었거든요.
기독교인들은 좀 극성스러운 편이잖아요 저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답니다.
만약에 그때 누가 옆에서 가르쳐 주고 알려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 또한 머리로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제 경우는 환경 자체가 알음알이가 전혀 들어갈 수 없는 환경이었던 거지요.
왜냐하면 주위에 수행에 관계됐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법화경 하나만 파고들었던 것이 저에게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
이것은 다른 거 다 필요 없어요.
어느 것이든 앞으로 알려 드릴 것들 중에 하나만 붙들고 늘어지십시오.
그러면 안 터지려야 안 터질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의문이 뭉칠 대로 뭉쳐 저 있는데도 터트리는 방법은 몰라서 문고리 만 잡고 밀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는데요.
아무튼 뒤에서 관찰해 보면 뒤죽박죽인 사람들이 아주 많았답니다.
(이 외에도 거꾸로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요, 차차 뒤편에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오늘 내용을 간추려 보면
풍선 속에 공기가 더 이상 찰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우는 것처럼
여러분들 속 마음에도 의문과 궁금증들이 가득 찰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 방법은 의문의 대상이 어느 것이 되었던,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이 바람을 주입시키는 펌프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방법은 뒤에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공부는 기껏 불어 넣었던 공기를 김을 빼게 하는 것이고요.
갈증이 너무 나서 목구멍이 터져 버릴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다가 물을 주면 말짱 꽝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가장 훌륭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의문 덩어리를 던져주는 스승이었답니다.
그래서 간화선이 탄생되었던 것이고요.
선문답이나 선문염송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고요.
그러나 지금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잘 먹혀들고 있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졌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예전과는 달리 스님들보다 훨씬 박식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많아졌답니다.
이런 상태에서 스님들이 중생들을 제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답니다.
예전에는 글만 읽고 쓸 줄 알아도 남들을 가르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 그런가요.
가르치는 사람들이 지혜가 없으면 지식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지금은 매우 적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부처님을 끌어오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이것이 성공을 하든 못하든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성공을 했거든요.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문제이지요.
이렇게라도 하는 이유는 부처님이 저에게 너무나 좋은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는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답니다.
페북을 통해서 단 한 명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저에게는 큰 성공이라 할 수 있고요.
처음에는 말로 이 법을 전해 보려 했는데 제가 스님이 아니다 보니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방편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인데요.
차라리 이것이 말로 하는 것보다 편하더라고요.
끝으로 저는 불교신자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에는 신앙심이 0.01%도 없거든요.
저는 그냥 부처님 제자일 뿐이랍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에게 이것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저는 불교가 번성하던 말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답니다.
겉으로 번성하고 화려해 봐야 뭐 하겠습니까?
알맹이가 깡통이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인데요.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불교 안에 수행자들이 얼마나 넘쳐나느냐? 가 저의 관심사랍니다.
저의 닉네임을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 이라고 붙인 이유도 본 가지들에게 보내는 조크랍니다.
곁가지인 나도 이러고 있는데 본 가지들이라 자청하는 사람들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지금 뭣들 하고 있느냐 이거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모욕 주기 위해 한 말이 아니랍니다.
그 반대의 말이지요.
지금 한국 불교는 큰 어른들부터 부끄러워하셔야 한답니다.
이게 뭡니까? 지금..
(간화선은 화두 보기가 펌프 역할을 함)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수행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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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이것은 어떤 한계점에 다다르면 안 터지려야 안 터질 수가 없답니다. (진실)
★
이것은 무식(無識) 하게 해야 한답니다.
무식하게 하라는 뜻은 막무가내로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식(識)이 없이 하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생각 없이 지식 없이 해야 빨리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공부를 하고 하면 지식이나 생각들이 방해를 안 할 수가 없답니다.
그렇게 되면 김이 빠져서 절대로 의단으로 뭉칠 수가 없답니다.
의단으로 뭉치지 않으면 절대로 저절로 터질 수가 없답니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터지는 것입니다.
풍선이 부풀지를 않는데 어떻게 저절로 터질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이 부분에서 이렇게 표현을 하셨답니다.
"만약에 나 또한 그러했다면 간탐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
이것은 방법만 알고 바로 하는 것입니다.
★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질문을 주셔야 한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디에 걸려 있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
이것은 절대로 깨닫기 전에는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없는 내용 들이랍니다.
그래서 미리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자동으로 알게 되거든요.
이것은 먼저 깨닫고 나서 공부를 해야 내 것이 될 수 있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글들도 어디까지나 저의 살림이지 여러분들 살림이 아니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스스로 살림살이를 넓혀 나가야 한답니다.
그리고 이 살림은 그 어떤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는 살림살이랍니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저의 살림살이를 보여드리는 이유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답니다.
하나는 초보자분들을 이쪽으로 안내를 하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초보자분들을 수행으로 유도하려는 의도랍니다. (발심)
이미 방법을 아시는 분들은 제 글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글을 봐야 뭐 하겠습니까 바로 알아차림을 하십시오.
이 글은 제가 알아차린 것들을 적어 두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보이는 것이고요.
저는 단 한 번도 불교 쪽에서 공부를 해본 사람이 아니랍니다.
저는 이것이 저에게 크게 작용을 했다고 본답니다.
여러분들도 일단 먼저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지금 굳이 공부를 안 하셔도 모두 자동으로 알게 된답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핵심과 목적은 알아차림과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을 통해
[내 마음을 깨닫고] [불성의 마음을 증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답니다.
이것을 줄여서 [견성성불]이라 하지요.
불교의 최대 핵심과 목적은 [견성성불] 이랍니다.
이 외에는 그 어떤 것도 0.01%도 없답니다.
★
오늘 내용도 부처님과 유마거사 와 그 외의 역대 조사들에게 배운 것인데요.
제 경우는 지인들에게 이 법을 전화할 때 상대에게 살짝 던지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랍니다.^^
예를 들어,
"수행이 뭔지 알아요?"
"수행 같은 거 해볼 생각 없어요?"
하고 제가 물으면 상대는 바로 네 종류의 반응을 보인답니다.
이 반응을 보고 저는 법을 전하든 포기를 하든 하지요.
그리고 반응이 좋으면 방법을 알려 주고 있지요.
이렇게 해서 지금은 100여 명 가까이로 늘었답니다.
(1) 첫 번째 반응은 아주 적지만 바로 알아듣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이런 분들은 말해 줄 것이 별로 없답니다. 방법만 알려 주면 본인들이 다 알아서 하거든요. 아주 편하고 근기가 높은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반응은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이런 분들도 저에게는 아주 편한 부류랍니다. 왜냐하면 미련 없이 바로 포기를 하면 되니까요. 억지로 해보려 했다간 서로 피곤하기만 하답니다.)
(3) 세 번째 분들은 마구 아는 체하는 사람들입니다.
(수행에 있어 가장 골치 아프고 힘든 분들이 여기에 속하는 분들이랍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듣고 또는 책을 읽고 알음알이만 잔뜩 들고 있는 분들이 여기에 속한답니다.
이런 분들은 고집도 얼마나 센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 진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어른들과의 결과랍니다.
제 주의에 도반 분들이 이름은 밝히지는 말라고 해서 안 밝히는 것뿐이지..
참으로 우리 한국불교가 개판이랍니다.
제가 이쪽 분들에게는 이렇게 질문을 해보곤 한답니다.
"하루에 수행은 얼마나 하시나요?,"
하고 물으면 머리부터 들린답니다.
왜냐하면 수행은 안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행은 안 하면서 책으로 열심히 공부 한 것들만 잔뜩 가지고 와서 법이 어떻고 공이 어떻고 하시는 분들을 말하는 내용인데요.
이러한 행위는 전부 잘못된 행위랍니다.
여러분들이 진짜로 깨닫고 증득을 하시고 싶다면,
무엇이든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고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고 버려 보십시오.
그 외에는 답이 없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말고 알아차림을 하라고 하는 거랍니다.
(4)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기복 신앙을 하시는 분들인데요.
이런 분들에게는 수행 이야기가 아예 씨알도 안 먹힌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부처님을 무슨 큰 신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절대로 넘볼 수 없는 그런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본래 부처인지도 모르고요.
부처님 같은 경우는 이러한 사람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그냥 가게 내버려 뒀답니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시는지 모르지만 부처님 법은 아주 냉정하답니다.
그리고 결과가 아주 분명한 것이랍니다.
그 결과란
"깨달았느냐?" "증득했느냐?"
딱 두 가지 박에 없거든요.
오죽하면 가족들까지 버리고 하겠습니까?
마음에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하셔야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공(空)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렇게 했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여러분들은 아실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중요)
★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버리는데 선수들이랍니다.
그런데 하물며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친견 비다? 천도재다? 명패다? 하면서 몇 십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받고 해 준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랍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자리는 도저히 그런 마음이 일어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실)
★
그리고 이것은 깨닫고 보면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늘 여러분들과 같이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 이곳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살았던 것뿐이랍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4살 때까지는 이것과 같이 했답니다.
이것은 위대할 것도 거룩할 것도 없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인데 뭐가 위대하고 거룩할까요.?
다시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요.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너무 화려하고 특별하고 위대하게 만들어 놓은 것뿐이랍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대우를 받을 수 있거든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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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자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들도 이 법을 알리는데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팔만대장경이라는 긴 말씀을 남겼던 것이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자니 오죽했겠습니까?
이것은 말로 하자면 한도 끝도 없고, 바로 보고 알면 한마디 말도 필요 없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이것은 방법만 알고 빨리하는 것이 최고랍니다.
★
사람은 누구나 배움에 있어서 크게 두 종류가 있답니다.
첫 번째는 지식(知識)이라는 것이 있고,
두 번째는 지혜(知慧)라는 것이 있지요.
지식은 머리에 영역이지만 지혜는 마음의 영역이랍니다.
지식은 머리로 쌓아두는 거지만 지혜는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요.
공부란 배움에서 오는 산물이지만
지혜(知慧)는 경험을 통해 오는 산물이랍니다.
지혜란 배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경험에서 오는 것이란 뜻입니다.
불교는 공부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림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수십 억겁을 통해 쌓여 있는 경험의 지혜를 꺼내서 쓸 수가 있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인들은 아주 많은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거의 없지요.
그 이유가 배우기는 잘 배우는데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분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주 많았지만 지식인들은 거의 없었지요.
왜냐하면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서당을 보내거나 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지식인들이 인재였답니다.
왜냐하면 배운 사람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글자만 알아도 면서기를 시켜 주었던 시절이 바로 그 시절이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지식인들은 넘쳐나는 반면 지혜로운 사람들은 많이 부족하답니다.
지혜란 배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 지혜]랍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혜를 얻는 데는 그만큼 멀어진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겐 누구나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수십 억겁을 통해 경험으로 쌓여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개발해서 쓰고자 하는 것이 부처님이 핵심 중 하나랍니다. (진실)
쉽게 말해 수행이란 배우는 것이 아니랍니다.
방법만 알고 바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 매우 중요)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실행을 해서 증득하는 거랍니다.
머리에 쌓아두는 공부가 아니고
반대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과
자신들이 품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비우고 버리는 것이 수행의 핵심이랍니다.
(※ 매우 중요)
그 수행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 이랍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 중에 핵심이랍니다.
[간화선]도 같답니다.
말 그대로 화두를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 간화선이랍니다.
뒤에 다시 설명을 드리겠지만 간화선 수행법은 자신에게 맞는 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행 방법이랍니다.
왜냐하면 간화선은 화두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에 반해 부처님이 하셨던 방법은
내 몸과 밖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것을 [위파사나]라고 하지요.
대신 이것은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대상이 많답니다.
이것은 자신의 근기에 따라 선택하시면 된답니다.
조각을 하시는 분들은 조각을 하면서 깨어서 알아차리면 되고..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상담을 하면서 깨어서 알아차리면 되고..
참고로 제 경우는 부처님이 하셨던 방법을 취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깊은 선정에 들고자 할 때에는 [무] 자 화두나 [이뭣고] 화두를 들고 하면 힘이 매우 좋은 경우랍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간화선 박에 모른다는 큰 어른들도 있으신데요.
이것은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랍니다.
왜냐하면 하나가 되면 모두가 다 잘 된답니다.
왜냐하면 원리 같거든요.
수행은 좋고 나쁜 것이 따로 없답니다.
본인에게 맞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수행 방법이랍니다.
간화선이 잘 맞는 분들은 그것으로 하시면 된답니다.
위파사나가 잘 맞는 분들은 그것으로 하시면 된답니다.
문제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셔야 된답니다.
했다가 안 했다가 하면 소용이 없답니다.
어떤 것을 하시든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은 알아 차림과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는 것 외에는 없답니다.
저도 이 두 가지로 해결을 한 것이고요.
잔소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