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포역 싱그랭이
윤희경
동네병원 닥터 해리니는
몸통을 눕혀놓고 오래 진찰했다
바람이 할퀴고 간 곳인데,
짚어낼까?
다리 사이로 검안경을 밀어 넣고
작은 핀셋으로 벌레 먹은 살을
쥐 콩만큼 뜯어냈다
거즈로 닦고 커튼을 거두며
입꼬리에 힘을 모았다
곧, 강한 봄날이 올 것이니
며칠 후 다시 보자 했다
지갑을 열어 남은 겨울을 다 털어줬다
‘강한’이라는 말,
뜨끔한 쪽 아닌가
느티나무 앞에까지 걸어서 왔다
신발 한 켤레 빌어, 먼 길이나 떠나볼까
이참에 집이나 다녀올까
아니, 아니,
맨입으로 뜯어간 속살이나 돌려 달라 빌어야지
누군가 또 어디선가 간절한 봄
올봄이야 꾸역꾸역 돌아오겠지
한번 헤어진 몸은 아무리 닦아도 누런 얼룩이더라
아사나 교실
나마스테~
두 손을 모읍니다
눈을 감아요
진흙 같은 몸을 쓸어
들어 마시고, 내 쉬고
들어 마시고, 내 쉬고
구루를 따라
산으로 들판으로,
몸과 마음에게
숨 길, 살길을 찾아줘요
차오른 욕심은 버려요
비어내고 채우고
접고 뻗으며
우타나아사나!
혈혈단신,
몸을 구부렸다 펴 봐요
나는 나를 지우고
내가 내게 깃들도록
생기를 들고
흙덩어리 속으로,
어제도 그제도 속상했던 일
맨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떨굽니다
우주의 한 소리를 만납니다
내 것 아닌 것 너무 많이 가졌지요
미안합니다
빚을 갚을 시간이군요
차크라!
일곱 개의 구멍을 다 열어
빛이 되어볼까요
은은한 연꽃 한 송이로
사바아사나!
세상에게 신세 진 일 다 못 갚고
종착지로 떠납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손바닥에 잠을 고이 들고
우리 거기서 봐요.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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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역 싱그랭이 / 윤희경
김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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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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