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먹은 남편 실직의 충격에서 벗어날 즈음 또 청천벽력 같은 친정 아버지의 병환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평소 '단 것', '몸에 안좋다고 소문난 것'과는 담 쌓고 지내시던 울 아버지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당뇨수치가 두배, 요로결석이라는 으스스한 진단과 함께 입원과 인슐린, 식이요법 교육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방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울 아버지는 46년 개띠시며 손재주 좋고 하모니카 잘 부는 분위기파이시며,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강직 보수파, 군대 글씨체로 정성껏 일기쓰는 것을 신념처럼 여기시는 낭만파, 그리고 죽을 고비를 세번 넘긴 월남전 맹호부대 참전용사이십니다.
인조가죽디자인계에 일맥을 긋고 반평생을 가열차게 활동하시던 아빠가 트럭 운전기사 및 짐부리는 사람으로 직업을 바꾼 것은 IMF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현금지급긴가 뭔가하는 커다란 짐덩이를 옮기시다 엄지발가락이 뽀개져 피가 철철나도 안산에서 서울 화곡동 까지 짐걸레로 칭칭 말고 트럭을 몰아 동네 병원에 입원해야 직성이 풀리는 '묻지마 아픔' '묻지마 가장' '묻지마 고독파'이기도 하십니다.
일단 요로결석은 비뇨기과에서, 당뇨수치는 내과에서 조절하기로 했으니 치료는 병원에 맡긴다 쳐도 당신이 아니면 한국은, 우리집은 안된다는 이 못말리는 책임감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저 역시 부전여전 그 성미를 고대로 닮긴 했지만서도요.
몇주전엔 월남참전용사를 위해 나라에서 줬다는 월남참전용사 증명서를 품에 받아들고 훈장보다 더 자랑스레 메모를 해놓으셨더군요.
"혜영아, 동욱아(제 남동생입니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이 증명서를 이용하도록 하여라."
오 마이 파더! 그 증명서엔 각종 놀이공원 무료이용과 사망시 얼마의 돈이 지급된다는 것 뭐 기타 등등의 각종 '혜택'들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걸 보신 울 엄마 (47년 돼지띠. 울 신랑이랑 쿵짝이 잘 맞으시죠.) 말씀은 더 가관입니다.
" 여보, 그거 당신밖에 못쓰잖어. 흥."
어쨌든 아버지께 저는 투박한 재생노트를 한 권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곳에 사랑얘기만 한번 적어보시라구요. 가뜩이나 갱년기로 신경 날카로워진 엄마 그만 괴롭히시고 드라마 같은, 다큐멘터리 같은 아빠의 인생얘기를 한 번 적어보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