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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카약을 타며 여행하는 다큐를 방송으로 본 것이 카약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꿈을 10년 만에 이루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밤늦게 출발하는 울란바토르행 비행기에 조립식 카약과 함께 몸을 실었다.
공항에는 코이카 태권도 전수단원으로 지난 3월 몽골에 들어온 사촌형 황인택 관장이 마중을 나왔다. 우리 일행은 4명. 목포의 아웃도어 달인 임연택씨와 유니베라 연신내지국을 운영하는 김지호씨 그리고 김포의 검단초등학교 이창섭 선생이 함께했다. 공항에는 자동차 두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몽골의 도로 사정이 열악해 먼 여정을 떠날 때에는 차량 두 대가 팀을 이루어 떠나야 불의에 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몽골카약 여행은 홉스굴호수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공항에서 홉스굴까지 장장 30시간이나 자동차로 달려야 한다. 비가 오는 밤길을 열심히 달려 여명이 밝아올 즈음 다르항의 강가에 도착해 쉬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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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이 당당하고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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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영장비와 음식물을 카약에 적재하고 패들을 저어가는 임연택씨와 김지호씨.
- 차에서 내려 비가 내리는 초원을 걸으며 몽골을 체험했다. 멀리 말과 양, 염소들이 풀을 뜯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소똥, 말똥을 피해서 훌쩍훌쩍 뛰어야 했다. 푸른 풀 반, 똥 반이었다.
비 때문에 아침 준비가 번거로워, 근처의 에르트네트시에서 체육교육을 봉사하고 있는 코이카 단원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분명 근처라고 했는데 차로 무려 4시간을 달려야 했다. 코이카 정두리 대원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홉스굴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정 대원도 우리 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비포장 길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초록의 사막 같은 모습이었다. 그 광활함은 이제껏 보아왔던 모든 것을 넘어섰다. 어떤 단어를 사용해 표현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내 느낌에는 어린 왕자가 초록의 행성에 여행을 온 느낌이었다. 전혀 해롭지 않은 느낌의 푸른 행성을 우리가 지나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기를 반복하며 밤에도 계속 초원을 달려 간신히 홉스굴 입구의 마을인 하트갈에 도착했다. 한밤중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텐트를 펴고 곧바로 잠에 골아 떨어졌다. 해가 뜨자 모두 깨어나 밥을 짓고 처음으로 야외의 초원에서 제대로 식사를 했다. 홉스굴호수로 들어가는 길에 낙엽송이 높게 자라고 있어 북미의 로키산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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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십대 후반의 강남스타일과 목포스타일의 두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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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렝그강의 경관을 바라보며 경쾌하게 패들을 저어가는 카야커들.
- 한국어로 쇼핑이 되는 몽골의 시골
마침내 홉스굴에 도착했는데, 뭔가 대단한 느낌을 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왠지 허전한 느낌뿐이었다. 몽골인들이 ‘어머니의 바다’라며 신성시하는 이곳을 떠나기 서운해 주변을 산책하며 캠프에서 식사를 했다. 따뜻한 커피와 수테차를 마시며 몽골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말을 타고 호수 주위를 트레킹하는 모습이 보였다.
홉스굴에서 나오면서 우리 일행은 자동차를 수리했다. 하트갈에서 한나절을 기다리며 동네를 구경하고 식량과 칭기스즈칸 보드카, 맥주 등을 보충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도중에 이흐홀 대초원 가운데 들어가 야영했다. 하트갈에서 사온 양고기와 소고기를 모닥불에 구워 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넉넉히 채워 행복한 여행을 기원했다.
홉스굴에서 시작하는 에깅강은 너무 구불구불하고 가까이에 도로가 없어 외부의 도움을 받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크고 넓은 셀렝그강을 탐험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몽골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이 강은 중간에 탈출도 용이해 보였다.
몽골 카약탐험여행의 기본 줄기는 홉스굴호수에서 바이칼까지 1,200km 물길이다. 하지만 한 달이나 걸리는 이 긴 여정에 함께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열흘씩 세 차례에 걸쳐 탐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이 그 첫 번째 탐사였다.
호턱 언더르라는 지역에서 강을 건너는 큰 다리를 기점으로 카약 탐사를 시작했다. 비가 내린 후라 유속이 빨라 출발이 경쾌했다. 강가에서 보트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솔롱고스’(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많은 몽골인들이 우리나라에 취업을 한 뒤 돌아와 한국말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투어 도중에 들른 오지마을의 슈퍼마켓에서도 무리 없이 한국어로 물건을 사고 계산할 수 있었다.
첫날은 30여 km를 저어 가며 처음 만나는 유목민 겔에서 야영했다. 우르거라는 곳으로 영화 속에 나올 법한 멋진 풍경과 배산임수의 언덕에 펼쳐진 초원이 일품인 장소였다. 이번 몽골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최고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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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어 중에 만난 선돌. 아마도 몽골인들은 저런 멋진 곳이 있는 줄도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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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가에 늘어선 하얀 줄기의 자작나무가 많이 보인다.
- 유목민과의 교류가 큰 즐거움
겔과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고 불을 피워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니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고 반갑게 맞아 주니, 엄마와 아이들이 돌아와 갓 짜온 우유 한 통을 건네주었다. 모닥불에 끓인 우유는 너무나 맛있었다. 초원의 자유로운 맛이 들어 있는 우유라서 더욱 신선하고 진했다.
원래는 유목민과 함께 밤에 영화를 보려고 프로젝터를 가지고 갔는데 짐이 너무 많고 전기 사정도 나빠 포기하고 태권도전수단의 황 관장에게 기부했다. 유목민과의 교류를 통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공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서 많은 것을 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준비가 부족했다. 내년에는 정말 좋은 공정여행을 만들고 싶다.
이튿날 카약 구경을 온 유목민 아저씨들을 뒤로하고 출발했다. 이날 목표는 셀렝그강과 에깅강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준비한 지도에서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우리가 하루 동안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심은 강가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열심히 저어서 가다 보니 왼편에 우락부락한 느낌의 바위산이 나타났다. ‘임연택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산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에깅강의 깨끗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우리가 카약을 탔던 셀렝그강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라 흙탕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