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세검정
박제가
성곽을 나선니 이삼 리
마음에 시정이 서리네
가련하구나, 사물의 참모습
예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떠났네
작은 벼루엔 샘물 소리 담기고
벗어 놓은 짚신 국화 그림자가 들여다보네
뒤에 오는 사람들 달리 보겠지만
이 순간은 정녕 이와 같구나
洗劍亭水上余結跗石坡草畫處(세검정수상여결부석파초화처)
出郭二三里(출곽이삼리) 胸中略有詩(흉중약유시)
可憐眞物態(가련진물태) 不襲古姸媸(불습고연치)
小硏泉聲歷(소연천성력) 空鞋菊影窺(공혜국영규)
後人應見異(후인응견이) 此刻定如斯(차각정여사)
[어휘풀이]
-姸媸(연치) : 아름다움과 추함. 미추(美醜) 媸(치) : 추하다.
[역사이야기]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실학사상가로 호는 초정(楚亭)이다.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명성을 얻었다. 그는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양반 교육을 받았으나 신분적 제약으로 차별을 받았기에 봉건적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 실학사상을 전개했다. 박지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백탑파의 한 사람으로 북학파의 거장이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 통해 중국에 소개되었고 한시사대가로 불린다. 네 차례의 연행(燕行)을 통해 청조의 문물을 접히고 청나라 석학들과 교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학의』를 저술하고, 청의 문물을 수입해 생산기술을 향상시키고 이용후생을 실현할 것을 역설했다. 그는 상공업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는 수레를 쓸 수 있도록 길을 내어야 하고 화폐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학의(北學議)
1778년(정조 2) 실학자 박제가가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 등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그 보고 들은 바를 쓴 책, 북학이란 맹자에 나온 말로 중국을 선진 문명국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배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박제가는 채재공의 호의적인 배려로 연경에 갈 수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동안 자신이 연구해 왔던 것을 실제로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그는 자신이 연구한 것과 3개월의 청나라 여행과 1개월여의 연경 시찰에서 직접 본 경험적 사실과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북학의』를 집필하였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