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묵상 요나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들려주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루가 11,30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마태 12,40 위 구절의 의미를 쉽게 풀이하면 물고기는 영혼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영혼도 하느님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때문이다. 요나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즉 그러니까 요나가 큰 괴물물고기속에 들어 갔다는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심으로써 우리 영혼의 밥이 되셨다는 뜻이다. 물론 요나를 토해내는 의미는 예수님부활을 의미한다. 큰 물고기의 의미는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의 밥이 되셨다는 의미다.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를 그토록 거부했던 이유는 그 당시 니느웨가 자신의 민족을 식민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니느웨사람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하고 다리가 아프도록 돌아다니는 수고를 해야 하는 그들의 희생양 즉 그들의 밥이 되어 주기 싫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나서의 핵심주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밥이 되셨듯이 우리도 이웃 아니 웬수까지도 밥이 되어 주어라는 것이다 물고기뱃속은 밥이 소화되는 과정으로서 남에게 철처히 짓밟히는 상태로서 남에게 심하게 상처입고 모욕당하는 그런 상태로서 인간이 겪는 가장 불안 공포의 상태요 죽음이 아닌 하느님의 빵틀이다. 어떤 이들은 요나가 박해를 당한 것도 아닌데 왜 니느웨의 밥이 되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애국심이 투철한 요나에게는 원수같은 니느웨사람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야 하는 것이 어쩌면 죽기보다 싫은 굴욕이요 매국행위가 되기때문이다. 요나의 이 거부반응은 예수님의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 하고 기도하시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그 만큼 남의 밥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오늘 복음말씀인 다음 구절에서도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의 표징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만에 튀어 나온 것이나 예수님부활을 의미하기보다는 예수님과 요나가 밥이 되었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그 사랑의 행위자체가 표징이요 기적의 표가 될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즉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만에 튀어 나온 사건이나 예수님의 부활사건 같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은 사탄도 할 수 있지만 밥이 되어주는 사랑은 사탄도 할 수없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있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요나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이끄신다는 것이다. 그 예로 하느님은 초대교회때 사도들에게도 동일한 상황을 연출시킨다. 자신의 민족을 식민통치하는 그것도 모자라 제2차 침공으로 자신의 민족들을 흔적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던 원수같은 로마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만들고 로마가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고 세계로 통하는 문이기에 세계복음화를 위해 로마가 복음화되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끝내 로마에서 사도들과 신자들이 순교에 이르도록 이끄셨다. 이런 사랑이야 말로 하느님만이 하실 수있는 표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