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현대문학』 9호, 1955.9)
[작품해설]
이 시는 ‘나’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꽃’이 존재 의미를 가지듯, ‘나’도 ‘그’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부재와 하무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그’와 ‘나’의 상응 관계는 인간 존재이 조명(照明)을 희구하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이 시의 제재인 ‘꽃’은 실제로 존재하는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꽃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꽃이자 모든 존재를 포괄하는 의미의 꽃이다.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의 1연은 두 존재가 아직 서로의 의미를 인식하기 전의 단계이다. 2연은 내가 그를 ‘꽃’으로 불러 주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가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됨을 확인시킨다. 3연은 다른 존재에게 의미를 확인받고 싶은 ‘나’의 T HAKD, 즉 ‘그’로부터 ‘나’ 역시 존재 의미를 부여받고 싶은 소망을 노래한다. 4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존재와 ‘나’가 ‘우리’로 합일되어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어줄 수 있는 관계로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처음엔 무의미한 관계였던 ‘나’와 ‘그[너]’가 ‘이름을 불러 주는’ 상호 인식의 과정을 통해, 서로는 서로에게 ‘꽃’이라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변모하고, 마침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인 ‘꽃’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명명(命名)’ 행위는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실제적인 형상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을 뜻한다. 이것은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독일의 철할자 하이데거(1889~1976)의 명제와 비슷한 시적 발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를 조명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이 시는 주체와 객체[대상]가 주종(主從) 관계가 아닌 상호 주의적 ‘만남’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익명(匿名)의 상태에서는 고독하고 불안하다. 그러므로 이름이 불러지지 않은 상태[존재를 인시하기 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에게서나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원한다. 명명(命名)이라는 과정이 있기 전까지 꽃은 참다운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부재(不在)의 존재이다. 이러한 ‘꽃’이 이름을 불러 주는 ‘나’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의 양태를 지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 존재도 누가 나의 이름을 명명할 때에만, 부재와 허무에서 벗어나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작가소개]
김춘수(金春洙)
192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중퇴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 시화전』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
1958년 제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대한민국문학상 및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경북대학교 교수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 『구름과 장미』(1948), 『늪』(1950), 『기(旗)』(1951), 『인인(隣人)』(1953), 『제1집』(1954),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打令調)·기타』(1969), 『처용(處容)』(1974), 『김춘수시선』(1976), 『남천(南天)』(1948), 『비에 젖은 달』(1980), 『처용 이후』(1982), 『꽃을 위한 서시』(1987), 『너를 향하여 나는』(1988), 『라틴 점묘』(1988), 『처용단장』(1991), 『돌의 볼에 볼을 대고』(1992),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1993), 『서서 잠자는 숲』(1993), 『김춘수시선집』(1993), 『들림, 도스토예프스키』(1997), 『의자와 계단』(1999), 『가을 속의 천사』(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