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와 중국의 사주학 계보)뭐 거창한 제목처럼 들리지만
알고보면 다 아는 사실을 올리야구요
그래도 사실 올릴 자료도 없다구요
그래서 항상 저 나름대로 조금은 유익하지 않을까하는 자료들을
요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올립니다
뭐 다른것도 올릴수는 있는데 여기에 다 있으니 제 글이야 뭐
도움이나 되겠으요 하하하^**^
bc7199~3898 환인께서 환국을 개국하신 이래 7대 환인혁서.환인 고시리. 환인 주우양
환인 석제임.환인 구을리. 환인 지위리(단인)까지 무려3300년을 시베리아신석기 문화를
이룩하셨다고 한다
이때 신앙이라고 한다면 원시신앙(토속신앙)이었으리라 대표적으로
태양을 숭배하고 지배자는 태양의 아들로서 절대권력자였을것이다
지배자는 요즘의 무당수준이었을것인데 하늘과 태양. 땅에
제를 올리는 것을 관장하고 인간의 병을치유할수있는 사제자 역할을 하였다
남자무당을 한이라고 하고 여자무당을 하느님이란 뜻의 천군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 두세력은 각자의 업무를 분담하여 남자는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었고
여자무당은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절대권력자인 이들의 공통된 점은 하늘이나 태양의 아들 딸들이며
하늘에서 나라를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고 내려왔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는 신선의 나라로 올라간다는 신화를 가졌다
우리의 조상은 단군인 점을 볼 때 단군이 무당이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듯하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역시 우리의 문화도 무속문화라 할 수 있다
하긴 어느 나라든 무속문화라 얘기하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bc3898~2350까지환웅께서 배달 국을 개국하시고 14대동안 약1500년동안
통치하셨다고 한다 이때 배달국 5대왕 태우의 막내아들(5번째)인 복희씨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여기서부터 역학의 시작이 되지 않았나 한다
문제는 복희씨가 과연 어느 사람이었을까 하는 점인데
우리의 역사가들은 동이족이라하여 한인이라 하고
중국의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는 중국인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즉 삼황오제중 삼황에 복희씨가 있다 문제는 사마천이 사기를 기록할 때
반고와 여와 및 삼황의 얘기들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얘기다 하여
모두 짤라 버리고 오제로부터 써 나갔다는 것이다
이점 때문에 삼황중 한사람인 복희씨가 동이 족이란 설득력이 있다
어찌 되었던 비슷한 연대에 중국에는 반고와 여와씨 염제 신농씨. 복희씨 수인씨 황제헌원
씨등이 있었다
이때 배달국의경전인 천부경.삼일신고.366사(참전계전)등이 있고
천부경은 정확한 분석은 되지 않고 있지만 역학의 집약 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연산역과 귀장역등이 있었는데
연산역은 신농씨의 별칭으로 신농씨 시대의 역이고
귀장역은 황제의 별칭이라 황제시대의 역이라 한다
복희씨의 하도와 복희팔괘가 있는데 우리의 것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있었다고 한다^**^
배달국 말기에 염제 신농씨가 판천이란곳에서 황제 헌원씨와 전투를 하여
신농씨가 물러났고 또한 치우씨와 탁록에서 싸워 이겼다고 전하고있다 이후
황제헌원씨가 십간 십이지를 제정하고 역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귀장역이다
여기서 치우씨가 누군가 하면 바로 우리의배달국 14대 천황이다
중국사에 기록에는 치우는 포악한 괴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아마도 치우시대에 청동기가 발달하였으므로 아마도 청동기로 만든 가면을
써고 전투에임하지 않아나 싶다 (개인생각)
황제는 황하의 누른빛을 담은 지도자란 뜻에서 황제라 했다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배달국시대인 약 3000년전에 석가모니가 탄생했다는 것도 알아두자
bc2333~238까지 단군께서 단군 조선을 개국하고 47대까지 약2000년을 통치하셨는데
단군 조선까지의 신앙은 아직도 천부경을 비롯한 무속신앙에 의해 유지 됬다고본다
이 시대의 중국에서는 요. 순 시대를 거쳐 주나라 .춘추전국시대로 이어진다
여기서 주나라의 문왕이 감옥생활을 하면서 복희팔괘를 다시 정립하여
문왕팔괘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주역이라고 한다
주역이란 말이 주나라에서 만들어져서 주역이라고 전하기도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동시기에 유럽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공자에 의해 유교가 발생되는데 원시유학이라한다
어떤 설에 의하면 유교는 공자이전에 벌써 이론이 정립되었고
주나라 왕가에서 전해지는 것을 공자가 일반인에게 보급을 했다는 설도 있다
어찌 되었던 공자 또한 역에 상당히 조회가 깊은다는것을 알 수 있다
말년에 위편삼절 했다는걸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시대에 주역은 상당히 체계적인 이론이 정립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다 주역의 학설이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여러 자료들을 집약해보면
팔괘와 육십사괘를 복희씨가 만들었다고도 하고
팔괘는 복희씨 육십사괘는 신농씨 또는 하나라의 우왕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주나라의 문왕이라고도 한다
괘사와 효사또한 주나라의 문왕이 지었다고 하기도하고
또다른 일설은 괘사는 주나라의 문왕이 지은 것이고 괘사는 주나라의 문왕의 아들인
주공이 지은것이라고하며 십익은모두 공자가 저작한것이라고한다
어떤 이는 복희씨를 전설. 신화적 인물로 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배달 국의 5대 태왕황웅의 막내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주역이란 것이 한사람에게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단지 복희씨니 공자니 무왕이니 하는 것은 아마도 성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역학의 신비성을 높이려는 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론에
마음이 기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공자의 정치는 주공정치라는 점이다
이는 공자가 주나라의 주공정치을 흡모했다는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유교의 이론은 주나라 왕실에서 나왔다는 설을 뒷받침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잠시 상식하나:문왕은 은나라의 제후국인 주나라의 제후였다 서백창이란 이름을 가지고있다
서백창이 죽고난후 그의 아들 둘째아들 발에게 왕위가 계승되고 이 사람이 바로
무왕인데 무왕은 은나라의 폭군 주왕(탕)을 몰아내고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이때 무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서백창을 문왕이란 시호를 내린다
공자가 흡모했던 주공은 바로 문왕의 셋째 아들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낚시꾼 강태공이랍니다 하하하^**^
서백창이 강태공을 처음만난것도 사냥을 나갔다가
점을 한번쳐 보니 귀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는 것을 봐도
벌써 이때에도 점술은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단군 조선과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넘어가서
전국시대에는 낙록자 귀곡자라는 사람이 있었고
한나라 때엔 마마계주. 동중서.동방삭.엄군평이 있었다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제갈공명과 관로가 있었다는데 제갈공명은 기문둔갑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동시대 우리 나라는 동부여 와 북부여를 거쳐
고주몽에 의해 고구려가 세워지고 혁거세에 의해 신라가 세워지고
수로왕에 의해 가야가 세워지는 시기였다
이때 우리 나라에서는 무속신앙과 더불어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인 시기가 되겠다
참고로 이시기에 로마제국이 있었다
아무튼 이후는 모든 분들이 더 많이 알고 있어 기록을 하지 않는다
역사가가 아닌 다음에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어 아쉽다
내가 아는 바로는 성리학. 도교. 불교. 유교 던 간에 음양오행의 이론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걸 보면 명리학이 만학의 제왕이란 별칭이 붙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이 사주학이 많이 발달한것 같기는 하지만
역학이란것도 시대에 따라 약간씩 변화하는법인데
우리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서 변화된 역학을 구사하고 있으니
너나할것없이 모두다 신통방통한 역학자인데 뭐 자존심 꾸길일은 없겠죠
정말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젊은 역학자에게서 나오는데
연해자평이니 적천수니 상대가 되겠어요
난 도리어 요즘 현실에 맞게끔 체계한 이론을 보면 어매 기죽어 할정도라서 지금가면 또 언제 올련지 나도 모르겠지만
잘들 계시라구요 김삿갓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