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8)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11ㄴ)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12)
마태오 복음 19장 8절에서 '너희'라는 복수 2인칭 대명사가 원문에는 세 번 나오는데,
모세 율법을 들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폄하하려는 소위 선민이라는 '너희'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의 피폐함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영적 피폐함은 '마음이 완고하기'로 번역된 '스클레로카르디안'
(sklerokardian; hearts were hard)이라는 단어에서 드러난다.
이 단어의 원형 '스클레로카르디아'(sklerokardia)는 '딱딱한', '거친',
'엄한', '잔인한' 등의 뜻이 있는 '스클레로스'(skleros)와 '마음'이란 뜻을 가진
'카르디아'(kardia)의 합성어로서 '완고한 마음', '냉담한 마음', '잔혹한 마음'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완고하고 잔혹한 마음을 품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아내를
내어쫓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책으로 이혼을
하려면 최소한 이혼증서만은 반드시 써주라고 하셨던 것이다.
당시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던 근동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로부터 소유물의 일부처럼
취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마땅히 종사할 직업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남자들의 일방적인 횡포에 의해 이혼당한 여자가 다시 결혼하지 못하면,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폐단을 막고 이혼당한 여자도 최소한 다시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하기 위해 이혼증서를 써주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 율법은 바리사이들이 주장하듯이 이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무분별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법 제정의 동기로 볼 때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보호법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율법의 대가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던
실정법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공격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창조의 원리와 근본에서부터 점검되어야 하는 법 제정의 정신을 밝힘으로써 이것을
비판하신다.
즉 인간이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려 죄를 짓고 타락하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혼인법에는 둘이 완전히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내용(창세2,24)만
나올 뿐, 이혼은 그 가능성 조차도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후대에 인간의 타락 이후에, 이혼 문제에 있어서의 일방적인 여성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약자 보호 차원에서 이혼 문제를 거론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한 사회를 전제로 한 방편적인 이 법을 절대화시키려는
바리사이들의 시도는 혼인의 신성함을 전제로 한 하느님의 혼인법을 뒤엎을 수는
없는 것이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허락된'으로 번역된 '데도타이'(dedotai; it has been given)는 '주다'
라는 뜻을 지니는 '디도미'(didomi)의 완료 수동형이다.
이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과거에 그렇게 타고난 것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혼인 생활의 번거로움 때문에 오히려 독신 생활을 선택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독신은 인간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밝히신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9장 1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독신으로 지낼 수 있는 세 가지
경우를 말씀하신다.
즉 선천적인 성불구자와 궁중의 내시나 이교 사원에서 거세되어 바쳐진 자와 같이
후천적으로 성불구자가 된 자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의도적으로 독신으로 지내는 경우를
말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특별한 경우이기에, 독신은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에 해당하는 '호 뒤나메노스 코레인
코레이토'(ho dynamenos chorein choreito; the one who is able to receive
it let him receive it)에서 '들일 수 있는'으로 번역한 '뒤나메노스'(dynamenos)의
원형 '뒤나마이'(dynamai)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할 수 없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또한 '이 말을 받아'에 해당하는 '코레인'(chorein)과 '받아들여라'에 해당하는
'코레이토'(choreito)의 원형은 '도달하다', '차지하다'는 뜻이 있는 '코레오'(choreo)
이다.
이것도 역시 독신이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도달할 능력이 있는 자만 도달하라'는 명령으로서 독신은
인위적인 강요로 되어지는 일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