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김성춘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누구나 자유롭게... 스크랩 정선에서의 하루
푸우 추천 0 조회 26 15.01.24 22:17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정선에서의 하루

 

기차는 새벽 3시경에 도착했다.

인적 드문 산골의 선평역 새벽 시간엔 역무원도 없다. 개찰구에 표를 던지고 나오자 낮은 지붕의 집들이 검게 엎드려 있다.

청량리역에서 늦은 밤 강릉행 기차를 타고 증산역에서 다시 3량으로 갈아타는 구절리역이 종점인 기차는

밤별을 머리에 이고 산 골골을 돌아 줄곧 달려왔다.

산골의 11월은 이미 겨울이 들어서고 온 누리가 적막하다.

 

졸다 깬 눈이 퀭한 사람 몇몇이 내려 갈 곳으로 다 간 다음, 눈 붙일 여인숙이래도 찾을 양으로 역사를 나와 

골목을 헤매었지만, 나그네가 쉴 곳은 없다.

불 켜진 집 대문을 두드려도 인적은 없고 개 짓는 소리만 마을에 퍼진다.

제자 왕근이와 스케치도 할 겸 사진도 찍어야 하는 하루가 바쁘게 열리는 새벽이다.

다리를 건너와 밭 가에 불을 피우고 다섯 시간만 버티면 될 성 싶어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데 허름한 집에서 불이 켜지더니 아저씨 한 분이 나와 마당 가에서 추루루룩 소변을 본다. 잘 됐다 싶어

"저~아저씨, 좀 전에 기차에서 내렸는데 잘 곳이 없어서 그런데요. 어디 묵을 곳이 없을까요?"

"아, 여는 잘 데가 없으요오~"

우리의 처지가 딱했는지 아저씨는 벽을 더듬어가며 따라오란다.

자세히 보니 아저씬 시각장애인이다. 고맙고 반가워서 지폐 몇 장을 쥐어 주었다.

그건 책임을 져 달라는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인도한 곳은 슬라브 지붕의 노인정이다.

문을 두드리자 허연 머리를 한 노인 한 분이 귀찮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자 퀘퀘한 냄새가 확 끼쳐 온다.

"여~ 사람들이 잘 데가 없어서 그러는 모얀데 하룻밤 여서 재~ 주오"

"허~ 회장님 알면 크일 아이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는 노인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방으로 들어 가더니 이불을 안고 나와 던지다시피 건네주고 들어간다.

차가운 거실 바닥에 옷도 벗지 않은 채 추위에 떨리는 몸을 뉘이자 이불에서 노인냄새가 머리아플 지경으로 난다.

깊은 새벽 내 웅크리고 자서인지 깨어나니 어깨가 아팠다.

노인에게 고맙다는표시로 담배라도 사 태우세요! 하고 지폐 몇 장을 드렸더니 처음과는 반대로 눈가에 웃음이 번지며 친절해진다

"하~간밤에 춥지않아쏘오?"

"네,괜찮았습니다. 여기 식당은 있는가요?"

"업으요오~ 저어 가겟집 가면 라멘이라도 끼레 줄란지모르겄쏘!"

가게에 가서 오래된 빵과 우유로 아침을 먹고 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바라본 아침 풍경이

냇가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로 자욱하고 절벽을 이룬 산이 참 아름답다.

산위로 오른 햇볕에 십일 월 풍경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냇가를 따라 올라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파란 줄을 두른 하얀 경찰차가 서더니

경찰 두 명이 가까이 와서 어디서 왔으며, 뭐하느냐 물으며 신분증을 보잔다.

신분증을 제시하자 요모조모 살피더니 차에 타란다.

직감으로 누군가가 우릴 수상한 사람(간첩)으로 신고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서에 끌려 가는 거 아닌가 덜컥 겁이 났지만 간첩이 아닌 이상 별일 없겠지 생각했다.

경관은 우릴 태우고 남면 쪽으로 가며 예의 그 사무적인 투로 여러 가지를 묻고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자

"여어 처음 인기래요?"

"네. 이곳 풍경이 참 예쁘네요"

"뭐~ 볼거나 있는 기래요. 저어 가면 좋은디가 있쟎오." 우릴 태우고 산길을 20여 분 남짓 오르더니 

"여~ 겡치가 좋소 ,사진 마이 찍어가오~" 하곤 뒤돌아 가버린다. 

딴에 우릴 좋은 풍경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고 친절을 베푼 곳은 진즉  폐광이 된 탄좌와 사택 몇 가호가

빈집으로 남아 있는 골짜기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연필 스케치를 하고 터덜터덜 산을 내려와 처음 자리까진 두 어 시간이 족히 걸렸다.

한 20여년 전이니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생생한 것은 그때의 모습 그 대로  늘 머릿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까닭이다.

 

지금도 해가 일찍 떨어지는 11월의 산골은 여전히 부지런하지 않음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림을 계속 그렸음 좋았을 왕근이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보고 싶고 궁굼하기 짝이없다.

                                                                                                                               소순희

 

  

                                                                                                                        <선평역앞 낙동리>

                                                                                                                 <별어곡역 부근>

 

 

 

 

 

 

 

 

 

 

 
다음검색
댓글
  • 15.01.25 22:03

    첫댓글 그런 곳이 있었군요. 지금도 그 곳엔 기차가 다니나요?
    선평역, 구절리역, 지금은 기차가 다니는 곳일까?
    저는 아직도 탄공촌이나 폐광역, 탄좌, 빈사택 그런 곳엘 가보지를 않아서요.
    이런 글 읽으면 콩닥콩닥 가슴이 뜁니다.

  • 작성자 15.02.05 23:03

    구절리역은 이제 레일바이크 관광으로 인파가 붐비는 곳이 되었고
    여량역까지만 기차가 다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늘 감사드립니다.

  • 15.01.26 21:37

    저 그림들이 사진이라면 마치 그림 같고 그림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터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 구분이 안가 몇번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림이라면 나뭇가지와 소나무의 터치가 신적인 존재?
    연필 스케치도 마치 목탄 같은 굵직한 선이 멋집니다.

  • 작성자 15.02.05 23:05

    아 저것은 사진입니다. 예전의 스케치라 좀은 ...ㅎ ㅎ
    고맙습니다.

  • 15.01.28 00:01

    20여년 전에 일을 그림과 함께 참 맛깔나게 끄집어 내 놓으셨군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아이고 아쉬워라' 했답니다.
    어찌하여 제자 왕근이를 데불고 가셨나요?
    옆에만 서도 가슴 뛰는,바라만 봐도 황홀한, 묘령의 여인을 데불고 가셔야지,
    그래야
    역사가 이루어지든,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을 찬란한 추억이 생기지예?
    추운노인정에서의 하룻밤, 취조당하듯한 경찰서,
    그녀와 함께였다면......너무나 아쉽습니더.....

    하하하 지가 또 이렇습니더.소설을 쓰지예
    푸우님 반갑고 그림 글 고맙습니다.

  • 작성자 15.02.05 23:07

    ㅋ ㅋ 참 잘 못한 여행이었던 거 같습니다.ㅡㅎㅎ
    재미납니다. 소설로 써보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