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문제는 벌써 오래 전부터 교회 입장을 명백히 한 바 있다. 다시 한 번 말한다면 교회에서는 피임 그 자체를 이유 없이 금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질병이나 기타 중한 사유 때문에 피치 못하여 피임을 하는 것은 옛날부터 허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이「교회는 피임을 못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 인식한 것이다.
교회에서 금하는 것은 피임이 아니라 그 방법들의 어떤 종류를 금하는 것이다. 피임의 방법을 대체로 구분한다면 약품 기구 혹은 사정을 여자 밖에서 하거나 남녀 접촉의 기회를 피하는 것 등이다. 학계의 통계나 보고에 의하면 현재 피임약 사용에 의한 부작용은 대단하단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개발하려는 인간의 노력 역시 대단하나 아직은 안 되는 모양이다. 약품이나 기구 등은 교회에서 금한 방법이다. 이유는 첫째 자연법을 거스리게 되고 둘째는 쾌락만 누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고 그 욕망들은(식욕 성욕) 생명 유지와 종족 번식 때문에 필요한 것이고 그 책임은 막대하다. 만일 인간이 식욕을 안 느낀다면 생명을 유지하겠는가? 또 성욕이 없다면 종족 번식을 하겠는가? 의심스럽다. 그렇게 때문에 식욕이나 성욕에는 쾌락이 따르게 마련이다. 불필요한 피임은 쾌락만 가지고 인류 번식의 책임은 안 지려는 것과 같다. 같은 욕망이라도 식욕에 있어 옛날 로마 사람들이나 현대인들이라 하더라도 탐도를 할 때 즉 음식의 감미로운 맛만 탐내고 배가 부른 다음 토해 버리고 또 먹음으로써 감미로움만 느끼려는 것은 죄악으로 단정한다. 지식 있는 사람들이라도 성욕에 대해서는 그것을 죄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동물들은 교미기가 아니면 절대로 서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을 동물의 본능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인간도 욕망의 도를 넘치는 무질서한 생활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유가 있어(질병이나 기타 사유) 피임을 해야 하면 그 쾌락마저 포기하는 것이 더 알맞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허락하는 피임 방법은 남녀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성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배란기 동안 참으라는 것이다. 흔히 그 시기가 일정치 않아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약품 개발보다 주기법의 개발을 하는 것이 좋겠다. 약품에 의한 부작용은 당대에서보다 후대에 더 많다는데 자기의 순간적인 쾌락 때문에 자기 후손에 면치 못할 아픔을 줄 수 있겠는가? 기구 사용 역시 정신적 부작용이 크다는 것은 너무나 널리 알려진 바다.
/ 김영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