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목욕탕 / 자몽 》
작년에 혼불을 읽었었는데 혼불에서 정월 대보름이랑 달보고 기운받고, 소원비는 장면이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인상깊게 남아서 같이 보려고 가져왔어.
이씨 집안으로 시집온 장군같은-그래서 남편과 시어머니의 미움과 시할머니의 사랑을 받는- 며느리 효원이 임신을 위해서 흡월정하는 장면과
천것 신분으로 태어난 춘복이 자신의 아이는 양반으로 태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양반가 규수를 임신시키게 해달라고 흡월정하는 장면은시리도록 차갑고 두렵고 간절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이야.
우동이들도 달 보고 빈 소원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혼불에 대한 글조각을 공유해봐.
[이 한권의 책] 혼불/최명희
'신비로운 달에 날줄을 맞추어 일어나는 몸의 흐름이라 이를 월경이라 하며 그 이치가 조금'사리의 바닷물과 꼭 같아서 초조'홍조라 하는가. 이 정혈은 생명의 비밀이었다. 쏟지 않고 소중하게 모두면 그 피 속에서 한 목숨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을 강력하게 흡인하여 끌어내 쏟거나, 가만히 몸 속에 머물러 생명으로 어리게 하는 것은 오직 음의 어미, 달의 숨결이었다. 그래서 아들 낳기를 간절히 원하는 여인들은 몇 날 며칠 공을 들여 목욕재계하고 더러운 것을 피하며 마음을 정하게 하여 초열흘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달 아래 서서 흡월정(吸月精)을 하였다. 한낱 인간의 몸 속으로 저 우주의 광명인 달의 심오 신묘한 정기를 그대로 빨아들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리.'
최명희는 책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너나없이 그 해 들어 처음으로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농사를 점쳤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랬다. 요즘도 대보름이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많다.
설을 지나고 대보름 달을 보며, '혼불'의 등장인물들은 한마디씩 한다. 대보름 달에 관한 인물들의 독백이지만, 바로 우리민족이 대보름 달을 보는 인식을 담고 있다.
'대보름 달빛이 희면 그 해에는 비가 많이 온다. 황토같이 붉은 달이 뜨면 한발이 심하다. 달빛이 깨끗하고 맑으면 풍년이 든다. 안개 낀 듯 부옇게 달빛이 흐리면 흉년이 든다. 보름날 비가 오면 안 좋은 일 생기고 흉년 든다. 설은 질고 보름은 맑아야 좋다.' 등등.
'혼불'의 춘복이가 정월 대보름 달 아래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 정수리에서 어깨뼈와 가슴팍, 그리고 단전과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터질 만큼 달빛을 들이키는 모습은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조두진 기자
출처 ㅣ https://news.imaeil.com/page/view/2007021516192469420
설의 윷놀이, 정월대보름 달집놀이와 큰줄다리기, 삼월 삼짇날의 화전놀이, 단오날 씨름, 유월 유두(流頭)놀이, 칠월 백중(百中)의 술멕이굿, 한가위의 보름달놀이, 구월 중양절의 단풍놀이, 동짓날의 팥죽 나누어 먹기….
명절은 절로 흥이 나는 날이다.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종갓집 맏며느리나 상여금 삭감에 주머니가 가벼운 가장들도 설이나 한가위가 다가오면 명절 기분에 술렁거린다. 이번 대목에 한 밑천 뽑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상인들과 색동옷에 마냥 흥겨운 아이들, 정자나무 밑에서 벌어지는 온갖 밤놀이…. 모처럼 가까운 친인척들과 둘러앉은 것만으로도 새 기운이 채워진다.
명절, 그것은 어미의 품이었다. 이렇게 세상살이가 고되고 서러워 온몸이 다 떨어진 남루가 될수록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육신을 끌고 와 울음으로 부려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명절이었다. 그 울음은 정중 엄숙한 차례나 세배로 나타나기도 하고, 얼음같이 차고 푸른 하늘에 높이 띄워 올리는 연이나, 마당 가운데 가마니를 베개처럼 괴고 뛰는 널, 혹은 방안에 둘러앉아 도·개·걸·윷·모, 소리치며 노는 윷놀이로 나타나기도 하였다.(5권 130쪽)
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글을 쓰기 위해 무수히 많은 문헌과 현장과 전문가와 어르신들을 찾아다녔다. 손때 묻은 자료들은 세월의 혼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모국어로 생생하게 복원됐고, 살아 있는 존재로 자신을 드러냈다. 전주와 남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 「혼불」이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의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가의 기억에 담긴 명절과 작품 속 풍경으로 이 땅의 설과 정월대보름을 읽는다.
◦ 설, 오직 맑은 청수(淸水) 한 대접 올리고
신원(新元)·원일(元日)이라 불리는 정월 초하루는 일 년이 시작되는 새해의 첫날이니, 명절 중의 명절이다.
“제물(祭物)을 넉넉하고 풍부하게 갖추어 성대히 차리는 것만이 성효가 아니니, 오직 변함없는 마음으로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제사를 받들어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처지대로, 메 한 그릇과 갱 한 그릇이라도 온 정성을 다 바쳐서 정결하게 올리면 신명이 기꺼이 흠향하실 것이다.”(4권 278쪽)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달력을 들여다보며 날짜를 짚어보고, 다시 손가락을 꼬부려 꼽아보면서, 몇 밤을 자고나도 또 몇 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애가 타던’ 설. 식구들의 설빔을 짓는 어머니의 턱 밑에는 작년보다 한 뼘은 더 자란 어린 자식들이 바짝 머리를 들이밀고 앉아 인두판 위에 놓인 꽃분홍과 연노랑 옷감에 흘려,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손길을 또랑또랑 바라본다. 달빛이 이슬에 씻긴 듯 차고 맑게 넘치면서 점점 둥글어지면 마음은 더욱 설렌다.
‘지나치게 어려워 몇 마디 말씀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던 작가의 아버지도, 이날만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고향 남원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성품이며, 선대 어른들이 남긴 말씀과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지금 큰집에 가면 만나 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려주었다. 최명희가 소설 속 청암부인의 입을 빌어 ‘그저 오직 맑은 청수(淸水) 한 대접 올리고 돌아앉아 우는 한이 있어도, 정월 초하룻날 원단(元旦)에는 나름대로 차례를 모셔야한다’(5권 120쪽)라고 쓴 것도 다 그 ‘말씀’에서 시작됐다.
◦ 둥그렇게 차 오른, 정월대보름
당산제와 샘굿, 지신밟기. 정초에는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물소리가 마을마다 울려 퍼진다. 꽹그랑 꽹 꽹 꽤 꽹 꽹 꽹. 두두 디다 두두 디웅. 저 아래 어디선가는 꽹매기 소구치는 소리도 아슴히 들리고, 그에 섞여 간간이 사람들이 터뜨리는 웃음소리도 함께 묻어온다.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 초하루 설날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 명절이지만, 새 달이 신령스럽게 둥두렷이 뜨는 보름달도 그 못지않게 흥겹고 즐거운 날이라,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징과 꽹과리를 꺼내 놓기도 하고, 북이며 장구, 소구에 앉은 먼지를 털어 내기도 하면서, 한쪽에서는 흰 고깔을 접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 고깔에 달 종이꽃을 함박꽃같이 부얼부얼 노랑·진홍·남색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대보름날 저녁에는 그야말로 한 판 걸게 풍물을 쳐야하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된 명절의 흥겨움은, 집집마다 풍물을 돌며 안택굿·조왕굿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다가 보름날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5권 51-52쪽)
일 년 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이 날, 사람들은 부럼을 깨고 더위도 판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집을 태우면서 소원을 빈다.
“마앙우울(望月)이야아. 망울이야아아. 액운(厄運)은 다 살라버리고 행운만 불같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먼 논배미에서 아이들이 쥐불을 놓으며 소리 높이 지르는 함성은 달에 울려 긴 여운으로 낭랑하게 들려온다.
사람들은 아직 해가 뜨기 전에 보리·조·콩에 기장을 섞어 찹쌀로 지은 오곡밥을, 고사리·도라지·호박오가리 같은 담백한 나물 반찬에 먹고는, 귀밝이술 이명주(耳明酒)를 마시는데, “이 술을 한 잔 마시면, 일 년 내내 소식을 빨리 듣고, 귀가 환히 밝아져서 남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잘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부름 깨물자.”하고는, 콩이나 밤, 호두를 이빨로 깍, 소리가 나게 깨물었다.(5권 54쪽)
휘영청 둥근 달. 옛적엔 달맞이가 친숙한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달빛을 쏘이기는커녕 달 한 번 제대로 바라보기도 힘들다. 우중충한 날씨나 텁텁한 공해를 탓하기보다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를 갖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 년 중 가장 크고 또렷한데다 복까지 많다는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 이 날 하루쯤 복잡한 일은 잊어도 좋으리.
대보름날 밤이면, 집집마다 멀리 날리어, 앞으로 다가올 액을 미리 막으려는 액막이연을 띄우는 것이었다. 마치 소복을 한 듯 아무 색도 입히거나 칠하지 않은 백지의 바탕이 소슬한 흰 연에다, 섬뜩하리만큼 짙고 검은 먹빛으로
厄(액).
送厄(송액).
送厄迎福(송액영복).
을 써서, 갓 떠오르는 새 달의 복판으로 날려보내는 이 액막이연은, 얼음같이 푸르게 비추는 정월의 달빛 속에 요요한 소지(燒紙)처럼 하얗게 아득히 올라갔다.
얼레에 감긴 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모두 풀어 그 연을 허공에 놓아주었다.
멀리, 저 멀리, 더 먼 곳으로 날아가라고.(5권 234-235쪽)
∥글: 최기우 (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출처 ㅣhttp://www.jjhee.com/m20400/?mod=document&uid=54348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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