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에 산땅 9450만원에 판 중국인… 외국인 이상거래 437건
국토부, 6년치 토지거래 조사-적발
명의신탁-분양권 전매제한 위반 등
위법의심, 중국인 56% 미국인 21%
‘검은 머리 외국인’ 상당수 포함된 듯
#1. 미국인 A 씨는 2017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인과 공동 명의로 경기 용인시에 있는 땅을 매입했다. 총매입 가격은 9억8200만 원. 법인과 A 씨는 지분을 각각 50%씩 나눠 매입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A 씨는 매수자금 4억9000만 원을 모두 법인에서 빌렸다. 자신의 개인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은 셈. 국토부 관계자는 “차입한 금액이 과도하고, 대표가 법인 자금을 마음대로 유용한 것으로 의심돼 국세청에 통보했다”고 했다.
#2. 중국인 B 씨는 2020년 중국인 C 씨에게 빌린 5억3300만 원을 갚기 위해 제주도에 보유한 토지의 소유권을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국토부 조사에서 토지 소유권이 C 씨가 아닌 제3자인 중국인 D 씨에게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C 씨가 실제 토지 소유자이지만 명의만 D 씨에게 빌린 ‘명의신탁’이 의심돼 경찰청에 통보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세금을 회피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어 경찰청에 넘겼다”고 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이 전국에서 매매한 토지 거래 100건 가운데 3건이 위법 의심 거래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고 없이 해외에서 매수 자금을 수억 원 끌어오거나 계약일이나 거래 금액을 허위로 신고하는 등 시장 교란 행위가 다수 포함됐다. 외국인 토지 매매 거래량 자체는 전체 거래 대비 적지만 수도권 등 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에서는 이런 거래가 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부는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외국인 토지 거래 불법행위 기획조사를 벌인 결과 437건의 위법 의심 거래를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17∼2022년 외국인 토지 거래 1만4983건 중 이상 거래 920건을 조사한 결과다. 외국인 토지 거래를 국토부가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부는 ‘외국인의 투기성 주택 거래 규제’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된 뒤 지난해 주택 투기 기획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국토부는 위법 의심 거래 437건에서 총 527건의 위법 의심 행위를 찾아내 관할 지자체와 관련 기관에 통보했다. 그중 가장 많은 시세차익을 거둔 거래는 중국인이 인천 계양구 토지를 2017년 800만 원에 취득한 뒤 2020년 9450만 원에 매도해 상승률 1081%를 기록한 거래였다. 국토부는 가격을 부풀리려 했거나 실수로 잘못 기재했을 것으로 보고 지자체에 해당 거래를 알렸다. 또 다른 중국인이 인천 서구 토지를 2020년 9억7000만 원에 매수했다 2021년 12억3000만 원에 매도한 거래도 있었다.
사례 중에는 일정한 소득이 없는 한 20대 외국인이 한국인 4명과 함께 인천에 있는 토지를 12억8400만 원에 매입하면서 외국인 지인에게 3억 원을 빌린 사례도 있었다. 국토부는 해외 자금을 불법으로 반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외국인은 경기 하남시 토지 분양권을 15억3800만 원에 매수한 뒤, 14억7300만 원에 매수했다고 신고했다 적발됐다. 해당 분양권은 전매제한 기간에 거래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 남편이 아내에게 경기 평택 토지를 2억6800만 원에 팔았는데, 대금 지급 내역과 증여세 신고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위법 의심 행위자(매수인 기준 376건)는 국적별로 중국인이 211건(56.1%)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미국인 79건(21.0%), 대만인 30건(8.0%) 순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외국 국적의 교포 등 ‘검은 머리 외국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토지 보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 국적 교포가 55.8%(1억4732만 ㎡)로 가장 많았다. 국내 사정을 잘 아는 교포가 한국 국적이 받는 각종 부동산 규제를 피해 땅을 사들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에서 위법 의심 거래가 177건(40.7%)으로 가장 많았다. 충남 61건(14.0%), 제주 53건(12.2%) 등이 뒤를 이었다. 개발 수요가 꾸준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고 토지 거래 규모가 큰 지역에서 위법 의심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