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는 온통 물난리로 법석이다.
늘 재해에는 인재를 씹어대며 물건 값을 부추기는 데는 이골이 났다. 벌써 전국의 배추 작황은 엉망이고 채소는 품절이고 우유는 바닥나고 과일은 다 떨어진 듯 거품을 뿜어댄다. 기사거리가 넘쳐 신이 난 듯하지만 여름나무들처럼 제 속살은 감출 수 없는 것일까? 하기야 미인 선발대회에 출연하는 차림인지 핫팬츠보다 더 짧은 팬티 같은 똥끝치마가 연일 활보를 한다.
이런 군상들을 보면서 1960년, 염천에 지급 받은 반바지 같은 군복을 생각해 본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였더니 중대 공급계는 이등병인 나에게 당분간 입으라며 헌옷보다 못한 바지를 주었다. 한쪽 가랑이는 길고 한쪽 가랑이는 짧은 최신형 패션의 군복바지였다.
그 짧은 가랑이 속으로 고무줄을 넣고 아랫단을 끼워 올려 입으니 바로 핫팬츠이었다. 당시 여름용 군복으로는 생각해도 특종 감이었다. 하루는 매점에서 괘도용 G펜을 하나 사고 연병장을 걸어오는데 대대본부 쪽에서 누가 나를 불렸다.
뛰어 가보니 대대장이 아닌가. 지휘봉을 든 대대장은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더니 ‘야, 이등병, 너 바지가 왜 그래’ 하고는 고무줄에 끼운 바지 단을 꺼내어 보라는 것이었다.
이어 대대장은 ‘그 바지 어디서 났어.’하고 묻길래 ‘중대 공급계에서 지급 받았습니다.’ 반바지 군복으로 비상이 걸렸다. 공급계 김 병장이 호출되고 나중에는 중대장까지 불렸다. 아마 바지 가랑이를 잘라서 입었다면 영창감이 아닌가. 하지만 모두들 졸병을 앞에 두고 참고들 있었다. 그 후 반바지 군복 대신 중대장 바지로 뽐내고 다녔지만 말이다
삼복에 반바지 같은 군복을 생각하다 어느 작가가 쓴 식당 집 할머니가 뱉은 똥끝치마를 떠올려 본다. 작가가 문학수업을 할 때 후배들을 데리고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었나 보다. 주인할머니는 걸쭉한 입담과 함께 눈꼴사나운 세상을 풍자하면서 할머니는 그날도 동행한 여학생이 자리를 뜨자 ‘아무개야. 넌 저것들하고는 상종하지 말거래. 똥끝치마 걸치고 다니는 것 중에 쓸데 있는 것 하나 없다. 골이 비어서 저런 것이다. 다 헛것이다. 내 말 명심하거라. 알아 들었제.’
그 후 또 단골집에 들렸더니 늘 그렇듯 ‘아무개야, 이번에는 좋다. 놓치지 말거래’ 똥끝치마를 입지 않아서 그랬는지, 신신당부하더란다.
할머니의 똥끝치마는 요즘 아가씨나 여학생들에게 대성황이다. 경박스러움은 외면하고 똥끝이 보여도 상관없는지 모두가 당당하다. 할머니의 뱉은 똥끝치마는 그의 오랜 질고의 삶에서 곰삭은 언어일 것이고 한심한 사회상을 꼬집은 가십일 것이다.
부끄럽기는커녕 설령 똥끝이 보인다 해도 더 으스대고 싶은 세상이다. 품위도 없어졌고 버르장머리도 없는 세상이다.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한 일이 어디 할머니의 말한 똥끝치마뿐일까?
반세기 전 반바지 같은 군복으로 연병장을 활보한 꼴이나 올 같은 더위에 식당 할머니가 내뱉은 똥끝치마 낱말도 다 염천에 미친바람이리라. 유행의 폭풍에서 똥끝치마라도 입고 건전하게들 한 더위를 보냈으면 한다.
첫댓글 생각을 자극하는 사실들을 핵심만 적어서 올리셨네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