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 풍경 2
중부권에 심하다는 가뭄이 우리 지역도 심상치 않다.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유월 첫 주말이었다. 그간 틈이 나면 창원 근교 산자락을 누비거나 들녘으로 나갔는데 생활권에서 좀 멀게 동선을 잡았다. 이른 아침 창원 버스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양산을 거쳐 언양에 들렸을 때 내렸다. 그곳에서 주말이면 울산을 벗어나 경주 산내 농장으로 향하는 친구와 접선했다.
친구는 겨울은 산방 문을 닫고 나머지 세 계절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친구와는 지난 사월 말 몇몇 지기들과 산방에서 염소 숯불구이 자리를 가진 바 있다. 그때는 일손 돕기보다 잔디밭에서 잔을 기울이며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고 이튿날 아침나절 땀을 좀 흘리고 나왔다. 이번 걸음은 밀린 안부도 나누고 산방 농장에서 친구와 둘이서 힘을 합쳐 해야 할 일이 있어 들어가는 걸음이다.
언양 시장에서 생선회를 마련 석남사 방향으로 들어 단석산과 문복산 사이 골짜기를 빠져 면소재지를 거쳤다. 당고개 못 미친 감산리 지음산방에 닿았다. 친구는 주말마다 농장에 들려 많은 일들을 해 놓았더랬다. 채소들도 가꾸지만 여러해살이 약초나 산나물도 키웠다. 농장을 빙글 둘러보고 거실로 들어 여장을 풀고 잔을 몇 순배 기울였다. 전에는 곡차였는데 매실주로 바꾸었다.
작업 설계는 첫날 오후 할 일과 이튿날 할 일로 구분했다. 작년 봄 하우스 안에 너른 지리를 차지했던 눈개승마를 산언덕 숲으로 옮겨 놓았더니 그늘이 지고 토양이 척박해 생육이 부진했다. 그걸 구지뽕나무와 아로니아가 심겨진 아래 밭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친구가 토마토에 물을 주는 사이 나는 낫으로 묵은 밭이랑 풀을 잘랐다. 어린 구지뽕나무가 잡초에 가려 맥을 못 추었다.
나는 풀을 자른 뒤 산언덕으로 올라가 눈개승마를 캐 날랐다. 눈개승마 근처는 산양삼이 자랐다. 친구는 눈개승마를 심을 골을 파 가지런히 심었다. 둘이서 힘을 모으니 많은 눈개승마 옮겨심기가 수월했다. 호스로 물을 끌어와 주고 나니 길어진 여름해가 저문 여덟시였다. 거실에 들어 샤워를 끝내고 야간 전투에 돌입했다. 생선회가 나오고 약재백숙이 익혀졌다 산양삼도 등장했다.
전년도까지는 내가 지음산방을 찾아간 횟수가 잦았다. 이제 기력도 달리고 친구도 나름의 영농 기술을 터득하고 농사 경험이 쌓여 날로 익숙해갔다. 내가 산방을 찾아간 목적은 일손을 돕는 목적 외에도 중년을 넘겨 살아가는 인생의 후반전을 점검해 보는 기회다. 생활권과 떨어져 지내는 친구지만 허물없이 지내는 말벗과 통음하면서 서로는 묵혀둔 속내를 꺼내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잔이 몇 순배 돌자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지인에게 전화로 안부를 나누었다. 자녀와 집안 이야기 대목에서 서로는 멘토가 되어주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창밖 잔디밭에는 고라니가 찾아와 우리들의 얘기를 엿듣고 갔다. 산방에 하루 묵을 땐 으레 그렇듯 날짜변경선을 훌쩍 넘겨 자리에 누웠다. 산새소리와 함께 밝아온 새벽은 보일러로 덥힌 방바닥이 뜨거워 잠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살그머니 바깥으로 나갔다. 내가 산방을 찾아간 세 번째 목적 달성을 위해서였다. 나는 주중에 모아둔 기를 주말 노동에 다 쏟아냈다. 자연산 땀을 흘리면서 내를 치유하고 힐링시켰다. 산방 진입로와 잔디밭 가장자리에 무성한 풀을 잘랐다. 이러 산방 뒤란으로도 가서 말끔하게 잘랐다. 세 시간 넘게 제초작업을 끝내고 거실로 들어 친구를 깨웠다.
거실탁자 널브러진 간밤 흔적을 치우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후 산나물을 챙겼다. 참나물과 곰취를 땄다. 어수리나물의 보드라운 순과 당귀 잎도 따고 잔대 순도 잘랐다. 이어 아침나절 일에 착수했다. 토마토와 옥수수와 가지와 고추에 웃거름을 넣고 김을 매주었다. 오이와 호박과 신선초와 셀러리 이랑도 손질했다. 이랑마다 물을 흠뻑 주고 귀로에 건천 장터에서 어탕으로 점심을 들었다. 1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