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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참고말씀: 사43:7; 슥4:6; 마26:41; 행9:4-6; 12:24; 18:5; 19:19,20; 20:22,32; 롬7:19; 고전2:1,4; 고후10:4,5; 딤전4:13; 히4:12
읽을말씀: 행6:7
주제말씀: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해져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행6:7 상)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무엇을 잘해야 합니까?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또 무엇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점점 왕성(旺盛)해져갑니다. 즉 매우 활발하게 역사를 일으켜 나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행6:7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活力/살아 움직이는 힘, 활동하는 힘)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히4:12 상) 힘이 있어 세력을 얻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19:20)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표현이 본서에 세 번씩이나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4)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19:20)
왜 이런 표현들이 반복되고 있습니까? 본서에 등장하는 역사들은 성령과 말씀의 주도적인 역사들로써,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왕성하여 갔는가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성령과 말씀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들을 본서 곳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든든히 세우며 성령에 매인다는 등의 표현 말입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행18:5) /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20:22) /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말씀운동의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정적(靜的)이거나 수동적(受動的)이지 않고, 오히려 주도적(主導的)이며 점점 더 왕성(旺盛)/흥왕(興旺)해져간다는 점입니다.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 같은 원리를 깨닫고, 우리 가운데서도 이 같은 말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간절히 사모하면서 부지런히 동참하고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할 때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행6:7 상)
본문에 의하면, 어떻게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했습니까?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전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행6:7 상)
무슨 말입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은 말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었고 그 수가 허다하게 많아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말씀운동과 제자훈련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곧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입니다. 즉 말씀운동이 곧 제자훈련을 가능하게 하고, 또 교회의 부흥도 가능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을 ‘세워나가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은 하나, 곧 말씀운동에 진심이어야 합니다. 즉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4:13)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씀을 얼마나 읽고 있습니까? 혹 성경통독을 중단했거나 소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식어버린 성경통독 운동의 불씨를 다시 일으켜나가기를 원합니다.
또한 말씀을 얼마나 권하고 있습니까? 즉 얼마나 ‘말씀으로’ 권하고 있습니까? 혹 ‘말씀을 빙자해서’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거나 ‘말씀도 없이’ 자기 경험담이나 세속철학을 철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원컨대 말씀을 권하는 것이 곧 말씀으로 권하는 것임을 깨닫고,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이 말씀으로 권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즉 얼마나 자기 주관이나 경험담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만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습니까? 의외로 많은 교육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자기 주관이나 경험담만 늘어놓을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할 때 곧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운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직시하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이 말씀운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즉 말씀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다시 전념하기 시작하여 말씀들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거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할 때 온전히 복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질 때 누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되었습니까?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입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절 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혹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된 것입니까? 사람의 말의 논리와 설득으로 그리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도,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도 된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2:1)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아니하고...”(고전2:4 상)
허면 무엇으로 된 것입니까? 점점 더 왕성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허다한 무리를 그 앞에 복종시킨 것이며,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절 하)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경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제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할 수 있습니까? 언제 우리의 높아진 생각들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낮아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왕성해질 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꽉 채워질 때’ 비로소 그 앞에 순순히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어떻습니까? 말씀에 복종하는 척은 할지언정 온전히 복종할 수 없고, (말씀에) 따르는 척은 할지언정 기꺼이 따르지는 못하며, (말씀에) 순복하는 척은 할 수 있을지언정 겸손하게 순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슥4:6 중)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26:41 하) 오직 성령, 곧 성령으로 말미암은 말씀의 역사로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하)
사실 바울의 경우도 언제 거꾸러질 수 있었습니까? 말씀이 임했을 때입니다. 말씀이 그 심령 가운데 부딪혔을 때입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행9:4-6)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할 때 비로소 온전히 복종하게 됨을 깨닫고, 날마다 말씀 가운데 풍성히 거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 운동이 내게서도 점점 더 왕성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안에서 무엇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 운동입니다. 즉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되, 점점 더 왕성하고 흥왕해져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다시 무엇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말씀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이 말씀을’ 읽고 ‘이 말씀으로’ 권면하며 ‘이 말씀만을’ 가르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말씀 앞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땐 말씀이 우리를 붙잡게 되고,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행18:5 하) 말씀이 세상의 허망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돌아서게 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19:19,20) 말씀이 우리를 든든히 세우게 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하)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되, 먼저는 우리 개인에게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나아가 우리 가정과 사업장, 교회에서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https://www.youtube.com/live/kgFrgCaWE3o?si=UqSZMRo-2Ddqj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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