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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32. 구레네 시몬 - 마 27: 34. 쓸개 탄 포도주
5.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 27: 32-44. 막 15: 21-32. 눅 23: 26-43. 요 19: 17-27 )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 27: 32. 구레네 시몬 -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
군병들은 사형집행을 위해 예수님을 데리고 나가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자를 만나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웠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친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에 나오셨다.
* 요 19: 17 -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렇다면 십자가 형틀이 무거워 예수께서 혼자 지기에 힘드셨고 함께 져 줄 제자들도 없었으므로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그의 십자가를 함께 지웠던 것 같다.
1] 나가다가
'시골에서' 올라온 구레네인 시몬과의 만남이 곧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정으로부터' 나갔다는 말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갔다'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막 15: 20-21 –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사형 집행이 성 밖에서 집행되었던 규정과 사람들이 많은 곳을 통과하여 형장에 이르게 하는 그 당시 관례에 따라 예수는 예루살렘 시민이 모두 목격할 수 있는 대로로 나아갔을 것이다.
* 레 24: 14 - 그 저주한 사람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들의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 왕상 21: 13 -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오늘날 예수께서 나아갔던 그 고난의 길을 가리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sa)라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당시 심한 매질로 인해 거의 기진했기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 형장에까지 완전히 나아갈 수 없었다.
* 요 19: 17 -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 히 13: 13 -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2]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는 리비아 서북 편에 위치한 구레네의 '디아스포라'란 큰 유대인 집단에(Jos, Antiq., XIV. 7, 2; Cont. Apion., 제 2권)소속된 일원이었던 것 같다.
구레네 거주자들은 예루살렘에 자기들의 회당을 갖고 있었던 것 같으며, 시몬은 이때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입경한 것으로 보인다.
* 행 11: 22 –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행 13: 1 –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사도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로 미루어 볼 때에 시몬 역시 이 사건 이후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어느 누가 유월절과 안식일을 눈앞에 두고 피 흘리는 십자가를 지고자 했겠는가마는 이때 구레네 시몬은 아무런 원망과 불평 없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였다.
* 막 15: 21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 롬 16: 13 -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비록 항거할 수 없는 로마의 군법에 따라 징발(徵發)되는 비운을 맞았으나 그는 피 흘리며 죽어 가신 예수의 최후를 누구보다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으며, 그 후로 전 가족이 구원 얻는 크나큰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3]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엥가류산) 지워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말로서 마치 중앙정부로부터 특명을 받은 진령이 목적지로 가기 위해 강제로 말이나 사람을 차출해갔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5: 14).
여기서는 '징발하며'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결과적으로 '억지로' 축복을 받은 격이 되었다.
본 절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중대한 오해를 일으키는 구절이기도 하다. 2세기 영지주의의 이단자였던 바실리데스(Basilides)는 예수가 아니라 구레네 시몬이 도중에 바꿔치기 당해 십자가에 죽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는 34절의 '예수께'는 원문에 의하면 '그에게'이고 따라서 본문상 '시몬에게'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인다.(31절 이후에는 원문에 예수라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35절의 '예수를 십자가에'도 원문에는 '그를 십자가에'라고 되어 있어 이 경우 역시 '시몬을 십자가에'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바실리데스의 견해는 이 장면을 철저히 오해한 것이며, 이일로 인해 그는 이단자로 정죄되었다.
법 적용에 있어서 철저했던 로마 당국자들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심히 원했던 유대 지도자들이 이러한 실수를 용인할 리 만무하다. 그와 더불어 요 19: 17에 의하면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나가셨다'라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 요 19: 17 -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총독의 군병들은 사형 집행을 위해 예수를 데리고 골고다로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친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에 나오셨다. (요 19: 17). 십자가 형틀은 무거웠을 것이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혼자 지기에 힘이 드셨던 것 같다.
그의 십자가를 함께 져주거나 대신 져줄 그의 제자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군병들은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만나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그의 십자가를 함께 지웠던 것 같다.
4] 가게 하였더라.
예수님은 이제 그의 마지막 가실 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 길을 올라가야 했다. "희롱을 당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31).
끌려갔다는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형틀을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실 힘이 없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채찍과 희롱과 재촉에 의하여 끌려가다시피 따라가신 모습을 말하고 있다.
주님은 오래 걸어가지 못하시고 그 자리에 쓰러지셨다. 당장에 그의 등에 로마 군병들이 채찍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아무리 일어나라고 채찍을 쳐대도 땅에 쓰러지신 채 꼼짝하실 수 없으셨다. 그들은 이제 이 죄수가 십자가의 무거운 형틀을 지고 언덕까지 올라가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1) 주님을 따른 무리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길에는 많은 무리들이 주님의 좌우와 앞뒤에서 따랐다.
① 많은 사람은 주님을 희롱하려는 무리들이다.
"왜 그토록 잠잠히 따라가느냐? 그 십자가를 벗어 던지고 이리로 나오라"고 희롱하는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빈정댄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② 그 결과를 보려고 따라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빌라도의 뜰에서 빌라도가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고 물었을 때 그들이 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고 외쳤다.
그들은 과연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이냐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③ 주님을 뒤따르며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에 예수님을 따른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이들이다. 그들은 발을 구르며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그가 채찍에 맞을 때마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느끼면서 가슴을 쳤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다. (눅 23: 28).
(2) 시몬의 등장
예수를 끌고 간 로마 군병들은 주님의 쓰러진 몸을 더 일으킬 생각을 포기하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비교적 순박하게 보이고 아주 건장한 체구의 한 청년을 보았다.
그들은 그 청년을 억지로 잡아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 청년의 이름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이 시몬은 원래가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태어난 곳은 구레네였으며 유월절 명절을 당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것이다.
구레네란 지금의 리비아를 말한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근간에 일어난 사건을 듣게 되었다. 그도 예수의 재판을 구경하려고 빌라도의 뜰에 갔다. 그는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자기도 예수를 따라 골고다까지 올라가 볼 요량으로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 예수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보려고 예수님 가까이 있다가 로마 군병의 눈에 발견되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가는 사람으로 붙잡혔다.
① 시몬은 이 십자가를 억지로 졌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고 했다. (32).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무척 다행스러운 일로 여겼을 것이다.
시몬의 생각 역시 "내가 오늘 왜 이처럼 재수 없지,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내게 이런 일이 걸렸지"라고 마음속으로 자기가 예수를 따른 일을 몹시 후회했을 것이다.
②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자기 옆에 있는 예수와 함께 골고다의 언덕길을 올라갔다.
시몬은 피가 낭자하게 묻은 십자가를 지고 주위의 많은 사람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그 언덕길을 올라간 것이다.
③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주님의 온유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는 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와 함께 골고다에 올라가면서 이 청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무엇인가 알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아마 이 시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시간까지 그 자리에서 이 청년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④ 시몬은 그 후 주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음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했다.
* 막 15: 21 –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했다.
* 롬 16: 13 -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 구절을 보면 시몬의 아들 루포는 바울이 편지를 보낼 당시 로마에 살았으며 그 어머니는 이 사도 바울을 도와 준 여인처럼 보인다.
만약에 시몬이 이때 로마 군병들에 의하여 지기 싫은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짊어지지 아니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 때는 어려웠지만 그 십자가를 진 시몬에게는 이처럼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찾아온 것이다.
이후에 시몬은 자기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간 일에 대하여 한평생 감사히 여기며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 벧전 4: 14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마 27: 33. 골고다 -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
군병들은 골고다(라틴어,calvaria)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1]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골고다'라는 말은 아람어 또는 히브리어의 '길갈타' 또는 '굴골토'(*)를 헬라어로 음역(音譯)한 것으로 '해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가 그곳이 많은 시체가 버려짐으로 자연히 해골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학자들(Jerome, Hieronymus)도 있고, 그곳이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학자들(Bengel, Cyril, De Wetty)도 있다.
후자의 견해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곳을 지칭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갈보리'(Calvary)는 고든(Gordon)이라는 한 장군에 의해 명명되었으나 아람어와는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보리'라는 말은 원뜻과 조화되는데 그 이유는 '갈보리'가 '해골'을 의미하는 라틴어 '칼바'(Calva)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골고다'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가장 가능성 있게 생각되는 것은 그곳이 '성에서 가까운'(요 19: 20), '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29절), '성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주요 도로변'(32절)에 위치한 오늘날의 '성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가까운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 외에도 고든 장군이 주장하는 '고든 갈보리'(Gordon's Calvary)일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마 27: 34. 쓸개 탄 포도주 -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
로마 병정들은 쓸개 탄 신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했으나 마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사형수로 고통을 덜 느끼게 하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NBD). 그러나 그는 이미 십자가의 고난을 각오하셨다.
1]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 시 69: 21 -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시편 69: 21을 반영하고 있으며 48절에서 비슷한 구절이 다시 반복된다.
마가복음에는 '몰약을 탄 포도주'로 되어 있는데 이 같은 차이는 아람어의 '몰약'(morah)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의 '담'(marrah)과 유사할 뿐 아니라 그 쓴맛이나 독성에 있어서도 유사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에서 마태복음이 중언하는 '쓸개 탄 포도주'란 말이 구약 시편에 더 가깝다.
'쓸개'(*, 콜레)란 '쓸개'나 '담즙'을 뜻하기보다 쓴 맛이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carson, Lenski).
'포도주'는 독주(毒酒)로서 취기가 속히 들고 마취 성분이 강한 술을 가리킬 것이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쓴 포도주를 사형당하는 죄수에게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①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에게
순간적으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거나, 그 고통을 참아낼 힘을 주려했다.
② 술로 인해 마취되다시피 한 죄수들은
사형 집행관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제공되었다.
이러한 독한 포도주를 최후의 순간에 이른 자에게 제공된 것은 잠 31: 6-7의 교훈에 근거한 관습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때 예수께 드려지는 포도주는 예루살렘의 어느 부유한 여인의 자발적인 헌납에 의해 자비의 선물로 전해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Lightfoot).
* 잠 31: 6-7 – 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7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예수께서는 자비의 선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일단 맛을 보시는 정도로 그치셨다. 적어도 그 포도주에 마취 성분이 있음을 익히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여기서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우크 에델랜)는 말은 계속적인 거부 의사를 내포한 말로서, 예수는 그 당시 몇 번에 걸쳐 마실 것을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마시지 않을 것을 고사(固辭)하셨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마취제의 도움으로 고통을 덜어보려 하기보다는 모든 감각을 지닌 체 맑은 정신으로 끝까지 다가오는 뼈저린 고통에 맞서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이 순전히 당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것으로서 십자가가 제공하는 아주 세미한 고통조차도 친히 감수하시며 인성(人性)으로서 당하셔야 할 모든 고통을 끝까지 체험하고자 하셨다.
진정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당신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고자 하셨다.
* 마 20: 22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 요 18: 11 –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 같은 행동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바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26: 29)는 당신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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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오고 행복을 안겨 줍니다.
사랑이 꽃피고 행복이 넘치는 웃음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