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인 "우키시마마루 등 역사 덮으면 한일간 신뢰 안 생겨" / 10/1(화) / 한겨레 신문
◇ 79년 만에 우키시마마루 승선자 명단 공개를 이끌어낸 일본 언론인 후세 유진 씨
2021년 12월 또 다른 취재를 위해 교토 마이즈루항에 간 일본인 저널리스트 후세 유진 씨는 현지 주민으로부터 우키시마 마루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1945년 8월 24일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를 태운 배가 폭발로 침몰해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는 오랫동안 안보문제를 취재해온 후세 씨도 전혀 모르는 얘기였다.
"나도 몰랐고 아마 일본인의 99.9%가 모를 것이다. 취재를 시작하고 책과 자료를 찾아봤지만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정보 공개를 요구했는데, 여기저기가 검게 칠해진 자료가 도착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8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감추고 싶은 게 이렇게 많은지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후세 씨의 취재는 결국 일본 정부가 79년간 숨겨온 우키시마마루 승선자 명단 공개로 이어졌다. 이 명단은 올해 9월 한국 정부에도 전달됐다.
3년전 폭침사고 우연히 알게돼 충격 정보공개 요청 후 검게 칠된 자료를 받아 "아직도 감추고 싶은 게 이렇게 많다니" 승선자 명부 외에 600여 건의 문서가 있다 한국, 인양 등 자료 공개 요구해야
9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후세 씨를 만나 우키시마마루의 진실 규명 노력과 한일 역사문제에 대한 생각 등을 들었다.
― 우키시마마루의 취재는, 후세 씨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동안 일본군과 관련된 역사, 안보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재해 왔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자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언론인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 수만 명이 피폭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시기 가해 역사를 기록해 젊은 세대에게 전파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조차도 2021년까지 우키시마마루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끝까지 이 문제를 취재하기로 결심했다"
― 79년간 감춰져 있던 우키시마마루의 승선자 명단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었을까.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1990년대에 일본 외무성과 후생노동성이 어떤 자료를 공개하고 어떤 자료는 공개하지 않을지 검토한 자료를 찾아냈다. 후생노동성과 자료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후생성 관계자로부터 명단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명단이 없다고 말해 왔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였다. 이를 계기로 승선자 명단 공개를 요구했고 마침내 받을 수 있었다"
― 이 명단이 어떻게 쓰이길 바라나요?
"승선자 명단 표지에는 몇 명이 탔다는 숫자가 적혀 있다. 일본 정부는 3700여명이 승선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은 승선자가 8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승선자 수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 명단을 하루빨리 유족들에게 제공해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7월에 한국에 와서 유족들을 만났는데 다들 한결같이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 유족들이 모두 고령인데 명단을 검증하는 데 몇 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를 고의로 숨기고 거짓말을 해왔는가.
"일본 정부는 당연히 명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승선자 명부의 개념을 매우 좁게 해석하여 배에 비치된 명부는 침몰할 때 없어졌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본이 있고, 승선 예정자 명부도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 명단이 공개되면 승선자가 3700여명이라는 그동안 주장의 근거가 약화될까봐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식민지배나 강제동원을 하지 않았다면 우키시마마루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책임이 있다"
―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70여 종의 명단 중 한국 정부에 제공한 것은 19종뿐이다. 나머지 명단도 한국에 제공할 것 같나.
"아마 제공할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19종의 명단이 가장 중요한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출항 직전과 직후에 만들어진 최초의 명단이다. 일본이 침몰한 뒤 만든 다른 명단은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맞춰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질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후생성에는 승선자 명부 외에도 600건이 넘는 우키시마마루 관련 문서가 있다는 것을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다. 침몰 후 배에 대한 조사, 유골 처리 등을 정리한 자료인데 진상 규명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승선자 명단 외에 이 관계 문서도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 일본은 우키시마마루가 미군의 기뢰 때문에 침몰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유족들은 일본군이 선내에서 폭파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원인 규명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우키시마마루는 폭침으로 반 토막이 나 한쪽은 1950년, 다른 한쪽은 53년 또는 54년에 인양됐다. 그때가 사고 원인 규명의 가장 중요한 기회였다. 지금 그와 관련된 자료의 공개를 요청하고 있다. 그 자료를 검토해 보면 사고의 원인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일본 정부는 성실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79년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아 여러 가지 의혹이 생기게 됐다"
◇ 일본 가해역사 기록이 자신의 사명, 우키시마마루 관련 전시·기념관도 필요
― 현재 한일 정부는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미래지향적 협력을 해야 한다며 과거사는 덮어가려 하고 있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는 지금처럼 과거를 지우거나 덮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마주하고 책임을 다해야 신뢰가 생긴다. 표면적으로 한일관계가 좋다고 보여주는 것은 매우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한일 모두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면서 정치도 우경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과거와 마주해야 전쟁에서 일어난 나쁜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원폭과 대공습, 만주나 소련 억류자 등 일본이 입은 피해에 대한 기억을 강조하며 이어오고 있지만 가해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키시마 마루가 침몰한 무학항에도 만주 등에서 억류됐다 돌아온 이들을 기념하는 훌륭한 기념관이 있다. 그런데 우키시마마루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다. 앞으로는 그런 기념관에서 우키시마마루에 관한 전시를 하고 우키시마 기념관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일본 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일도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