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禮)이다, 예(禮)이다 말하지만, 옥과 비단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악(樂)이다, 악(樂)이다 말하지만, 종과 북을 말하는 것이겠는가?”라고 하셨다.
敬而將之以玉帛 則爲禮 和而發之以鐘鼓 則爲樂 遺其本而專事其末 則豈禮樂之謂哉 공경하면서도 옥과 비단으로 그를 떠받들면 곧 예가 된다. 조화로우면서도 그것을 종과 북으로 피워낸다면 곧 악이 된다. 그 근본을 버려두고 오직 그 말단만 일삼는다면, 곧 어찌 예약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는가?
胡氏曰 玉帛 五玉三帛 禮文之重者也 鍾金聲鼓革聲 樂器之大者也 非玉帛無以爲禮 非鍾鼓無以爲樂 然禮樂有本有末 玉帛鍾鼓 末也 禮之本在於敬 假玉帛以將之 樂之本在於和 假鍾鼓以發之 周末文滅其質 但以玉帛鍾鼓爲禮樂耳 호씨가 말하길, “옥과 비단은 5가지 옥과 3가지 비단으로서 예의 文(격식) 중에서 중요한 것이다. 종은 쇳소리를 내고 북은 가죽소리를 내니, 악기 중에서 중대한 것이다. 玉帛이 아니면 예를 행할 수 없고, 鐘鼓가 아니면 악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예악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는데, 옥백과 종고는 말단이다. 예의 근본은 敬에 있으니, 옥백을 빌려서 그것을 떠받들고, 악의 근본은 조화에 있으니, 종고를 빌려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나라 말기에 문식이 그 바탕을 없애버렸기에, 단지 옥백과 종고를 예악으로 여겼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玉帛固可以行禮也 鍾鼓固可以爲樂也 謂玉帛鍾鼓爲非禮樂 則不可 然禮樂豈止乎玉帛鍾鼓之間哉 得其本 則玉帛鍾鼓莫非吾情文之所寓 不然特虛器而已 所謂本者 反之吾身而求之 則知其不遠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옥백은 본디 이로써 예를 행할 수 있는 것이고, 종고는 본래 이로써 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옥백과 종고를 일컬어 예악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예악이 어찌 옥백과 종고 사이에만 그치겠는가? 그 근본을 터득한다면, 옥백과 종고는 나의 감정과 문식이 깃들어 있는 바가 아님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텅 빈 기물일 뿐이다. 이른바 근본이라는 것은 그것을 내 몸에 돌이켜 구한다면, 그것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敬者在中之禮 禮之本也 玉帛則禮之器 所以將吾敬而播之於外者也 禮之末也 和者在中之樂 樂之本也 鍾鼓則樂之器 所以發吾和而播之於外者也 樂之末也 本末具擧內外兼備 夫然後可謂禮樂之全 苟惟專務其本而不事於末 固爲不可 至於徒 事其末而反遺其本 則又豈所謂禮樂者哉 云乎哉者 猶言此不得謂之禮樂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敬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예로서 예의 근본이다. 옥백은 곧 예의 기물이며, 내 敬을 받들어서 그것을 밖으로 퍼뜨리는 수단이니, 예의 말단이다. 和라는 것은 마음속에 있는 樂으로서 악의 근본이다. 종고는 곧 악의 기물이며, 내 和를 드러내어 그것을 밖에 퍼뜨리는 수단이니, 악의 말단이다. 본말이 함께 쓰이고 내외가 겸비되어야 하니, 무릇 그렇게 된 연후에 예악이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오직 그 근본에만 힘쓰고 말단은 일삼지 않는다면, 이것도 본래 옳지 않은 것이지만, 헛되이 그 말단만을 일삼고서 도리어 그 근본은 버려둔다면, 이 또한 어찌 이른바 예악이라고 하는 것이겠는가? 云乎哉라는 것은 이를 일컬어 예악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 程子曰 禮只是一箇序 樂只是一箇和 只此兩字 含蓄多少義理 天下無一物無禮樂 且如置此兩椅 一不正 便是無序 無序便乖 乖便不和 又如盜賊至爲不道 然亦有禮樂 蓋必有總屬 必相聽順 乃能爲盜 不然則叛亂無統 不能一日相聚而爲盜也 禮樂無處無之 學者須要識得 정자가 말하길, “예는 그저 하나의 순서이고, 악은 그저 하나의 조화일 뿐이다. 그러나 단지 이 두 글자에 상당히 많은 합당한 이치를 함축하고 있다. 천하에 예악이 없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또한 만약 여기에 의자 두 개를 놓는데, 하나가 바르지 못하면, 곧 질서가 없게 된다. 질서가 없게 되면 곧 어그러지게 되고, 어그러지게 되면 조화롭지 못하게 된다. 또다시 가령 도적은 지극히 무도하지만, 그러나 역시 도적에게도 예와 악이 있다. 대체로 반드시 두목과 부하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서로 듣고 따라야만, 비로소 도적질도 해먹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반란이 일어나 계통이 없게 되므로 하루라도 서로 모여 도적질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악이 없는 곳이 없으므로,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程子欲人知禮樂之理無所不在 學者記其語雜以方言 至於盜賊亦有禮樂 姑借近且粗者以明之 非眞所謂禮樂也 序和二字 尤親切 又見禮爲樂之本 호씨가 말하길, “정자는 사람들이 예악의 이치가 없는 곳이 없음을 알기를 바란 것이다. 배우는 자는 그의 말에 방언이 섞여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도적에게도 역시 예악이 있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잠시 가까우면서도 거친 것을 빌려서 그것을 밝힌 것일 뿐, 진짜로 이른바 예악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序와 和라는 두 글자는 더욱 친밀하고 절실하며, 또한 예가 악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禮樂之本 雖細微之事 凶惡之人 一皆有之 不特玉帛鍾鼓之間 要之 只是箇序與和底道理 人能識得此箇禮樂 則知天下無一物無禮樂隨處受用 然其實不出序與和二字 경원보씨가 말하길, “예악의 근본은 비록 세미한 일이거나 흉악한 사람일지라도 하나같이 모두 그것을 갖고 있으니, 단지 옥백과 종고의 사이에서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요컨대 그저 하나의 序와 和의 도리일 따름이다. 사람이 능히 이런 예악을 알아서 터득할 수 있다면, 곳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예악이 없는 사물이 천하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 실질은 序와 和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趙氏曰 朱子以敬與和言 是就心上說 程子以序與和言 是就事上說 二說相須 其義始備 조씨가 말하길, “주자는 敬과 和로 말하였는데, 이는 마음으로 나아가 말한 것이고, 정자는 序와 和로 말하였는데, 이는 일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이 2설은 서로를 필요로 하니, 그래야만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진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二說相須其義始備 如人而不仁如禮何章 集註擧李氏人心亡矣 亦是就人心上說 擧程子失正理則無序而不和 亦是就事理上說 쌍봉요씨가 말하길, “두 설이 서로 필요로 하니, 그래야만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진다고 하였는데, 예컨대 ‘사람이면서 어질지 못하면 예가 무슨 소용인가?’의 장에서, 집주가 ‘사람의 마음이 없어진다’는 이씨의 말을 거론하였으니, 이는 역시 사람의 마음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올바른 이치를 잃으면 질서가 없어지며 화합하지 못하게 된다’는 정자의 말을 거론하였으니, 이는 역시 사리에 나아가 말한 것이라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復曰云者 謂人所常言也 乎哉疑而反之之辭 謂禮樂之所云者 止云玉帛鍾鼓而已哉 蓋禮者 天地之序 樂者 天地之和 玉帛有等差 所以明其序 鍾鼓有聲音 所以發其和 是時禮樂廢壞 皆僭竊其文而不知其本 諸侯僭天子 大夫僭諸侯 則無序矣 征伐相尋 國異政 家殊俗 則不和矣 夫子之言 亦必有爲而發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云을 거듭해서 말한 것은 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바라고 말한 것이다. 乎哉는 의심하면서 돌이키는 말이니, 예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옥백과 종고를 말하는 것에 그칠 뿐이겠는가? 라고 말한 것이다. 대체로 예라는 것은 천지의 질서이고, 악이라는 것은 천지의 조화로움이다. 옥백에 차등이 있는 것은 그 질서를 밝히는 것이고, 종고에 소리와 음이 있는 것은 그 조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당시에 예악이 폐지되고 무너졌는데, 모두들 그 문식을 僭竊하면서도 그 근본을 알지 못하였다. 제후가 천자를 참월하고 대부가 제후를 참월하면, 질서가 없는 것이다. 정벌하여 서로 치면서 나라마다 정사가 다르고 家마다 풍속이 다르면, 조화롭지 못한 것이다. 공자의 말씀은 역시 반드시 무슨 연유가 있어서 하셨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