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서 올립니다...^^
----------------------------------------------------------
야구 감독과 CEO의 리더십-두산 김인식의 휴머니즘 VS 삼성 김응룡의 카리스마
나는 200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감상하면서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야구를 즐기는 순수 야구팬이라면 의아스럽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으나 필자의 인사컨설턴트라는 직업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절대 열세'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가볍게 뒤엎고 정규 리그 3위 두산 베어스가 1위의 삼성 라이온스를 꺾고 당당히 우승하였기 때문에 더욱더 승패의 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두 팀 감독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덕장(德將) 김인식의 인화와 단결력
먼저 두산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덕장지도(德將指導)에 호감이 간다.
그는 95년부터 7년 동안 다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어 오면서 '인화와 단결'을 강조한 '맏형' 같은 존재였다. 그는 막둥이 투수 박명환이 기복이 심해 애를 태우면서도 '공은 좋았다'며 어깨를 두들겨 주며 6차전에 선발로 내세우는 한편, 허리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심재학을 4번 타자로 연속 출전 시켰다. 이들은 결국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6차전 승리에 수훈을 세웠다. 그 밖의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실수를 덮어주고 믿음으로 격려하며 배려를 하였는데 저마다 결정적 순간에 맹활약을 함을써 감독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두산은 포스트시즌 내내 한 선수가 부진하면 다른 선수가 이를 만회하고 부상 선수가 생기면 대타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등 그야말로 악전고투하면서 준플레이오프(PO)와 플레이오프(PO)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한화와 현대 땐 하위타선이 맹활약을 했고, 우즈를 비롯한 팀의 간판 타자들은 한국시리즈에서 제 기량을 백 퍼센트 발휘하였다. 이처럼 김인식 감독의 두산에는 기록으로 나타나는 객관적 전력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선수단 전체의 단결과 응집력이라는 팀스피리트(team spirit)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큰형님'격인 김 감독이 자리하였음은 물론이다.
용장(勇將) 김응룡의 채찍과 불화
다음으로 삼성 김응룡 감독의 리더십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맹장지도(猛將指導)에 관심이 간다. 사실 김 감독은 해태에 있으면서 9차례나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우승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삼성은 한국시리즈 6차례 실패의 한을 풀고자 거액을 투자하며 그를 영입하였던 것인데, 과연 삼성은 14년 만에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는 등 절반의 성공을 거두어 대망의 우승컵을 거머쥐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백전노장 김 감독과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큰 무대 경험부족의 신참들로 이루어진 삼성은 정작 한국시리즈에 와서는 지지부진 오합지졸(烏合之卒)의 기량 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그 동안 김 감독은 '채찍'으로 선수단을 장악한 전형적 엄부(嚴父)의 카리스마를 보였다.
다정다감한 격려 대신 질책을 받아온 신세대 선수들이 막상 중요한 승부처에서는 '새가슴'이 되는 안타까움을 선수들 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해태 시절과는 달리 위기상황에서 침착하게 동료들을 붙잡아 줄 노련한 고참선수마저 없는데다, 김 감독 마저 맥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3차전에서 경기가 뒤집히자 덕아웃의 감독석에서 물러나 앉음으로써 스스로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갖게끔 했다. 물론 투수진 자멸이 결정적 패인이라지만 그점에 대해선 두산도 마찬가지였으니 김 감독의 리더십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을 물 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요즘은 불도저로 밀어부치듯 훈련하고 탱크로 몰아버리듯 경기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나는 이런 시행착오의 폐단을 남자 양궁선수단이 해병대입소훈련장을 이탈하는 '항명사태'를 보면서 '말을 물 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말에게 물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다'는 금언을 떠올린 적이 있다.
지난 8월 남자 대표팀 선수들은 진해 해군본부 특수전 여단에서 3박4일 일정으로 UDT체조와 야간 보트훈련에 이어 이튿날 오전 달리기까지 하고는 "힘이 든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훈련 불참의사를 밝히고 훈련장을 이탈하였다. 결국 여자 선수들과 감독, 여자팀 코치만 부대에 남아 일정을 마쳤고,남자 선수들은 인근 숙소에서 대기했다가 태릉선수촌으로 따로 복귀했었다.
이에 협회는 선수들과 면담을 한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4명에게 주동,동조 등 훈련거부 정도에 따라 각각 5년,2년,1년의 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리는 한편,코치와 감독에게는 태릉 선수촌 퇴출 명령과 엄중경고 조치를 각각 내렸다. 아울러 지난 6월 대표 최종선발전에서 5-8위를 차지한 4명을 대표팀 1진 자격으로 제 41회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시켰었다.
선수단 지도부의 이런 시행착오는 어쩌면 예견된 일인 지도 모른다.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선수단의 성적이 나쁠 때마다 선수관리와 훈련방법 및 선수촌 운영 등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검토를 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꾸준히 제기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양궁선수에게 군 입소 특수훈련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양궁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정적인 집중적 지구력인데 반해 군 특수 훈련은 동적인 집중적 인내력을 요구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때리는 견마지로(犬馬之勞)의 리더십
현대의 스포츠 심리학에선 지도자의 일방적인 훈련법의 강요로는 보다 높은 경기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훈련이라도 선수의 이해와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는 우리에 가둬 놓고 강제로 조련을 시키는 놀이공원의 동물이 아니듯이 지도자 역시 무섭게 채찍만 휘둘러 대는 조련사이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프로야구의 경우 장기의 정규시즌을 마감하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루어지는 단기의 한국시리즈에서는 더욱 그렇는 것이다. 자고로 용인법(用人法)이다 리더십이다 하지만 그 근본은 진실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훈련이고 교육이 되어야 선수의 견마지로(犬馬之勞)도 기대되는 것이다.
김인식 감독이나 김응룡 감독 둘 다 말을 물 가로 몰고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달랐으니, 전자는 뒤에서 다독이며 밀어주었고 후자는 앞장서 다그치며 끌어당겼다. 그 결과 두산의 선수들은 스스로 물도 마시고 마음껏 물놀이를 했지만, 이미 6번 이나 '물 먹은' 바 있는 공수증(恐水症)의 삼성 선수들은 물 마시기를 마다하다 쓰디쓴 고배(苦杯)를 들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덕장의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두산이 우승했다 해서 용장이 이끄는 삼성이 절대 두산 보다 약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단기전에서는 운도 많이 작용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인식 감독의 휴머니즘 리더십(humanism leadership)이 김응룡 감독의 카리스매틱 리더십에 비해 반드시 우수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어떤 리더십의 선택이나 우열을 논하고 평가하는 데는 멤버와 리더 외에도 고려해야 할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말(馬)을 모는 데는 법이 있고, 선수를 훈련시키는 데도 도(道)가 있다.
스포츠에서 선수를 이끄는 지도자나 기업에서 임직원을 대표하는 CEO나 그 리더십의 본질에는 하등 차이가 없음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법(法)을 바르게 쓰면 말이 화답하여 신명이 나고, 도를 바르게 쓰면 선수와 멤버가 감응하여 분투노력하는 것이다. 말과 주인,멤버와 리더 사이에 진정한 '이심전심'이 안 되고서 어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운위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마음의 리더십'을 암시하는 성인 공자의 말씀이 이미 '시경(詩經)'에 있어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