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감사합니다
안레지나(가명, 당시 50대 직장인)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 또한 주님의 이끄심이라는 사실을 저는 나이가 들어서 깨달았습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결혼한 저는 3남매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은 제 생일이었는데, 가장 잔인한 생일선물을 받은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 7살이던 아이들도 갑자기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장례미사에 오신 많은 어르신들이 저를 위로하시면서, 아이들 키우다 보면 외로울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항상 주님께서 보살펴 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저는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리고 성모님께서 저희 가정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기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마음속에서 겸손함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일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작년 겨울, 십 년 넘게 알고 지내던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도서관이나 문화회관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분입니다. 선생님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지인까지 포함해 셋은 틈틈히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걱정거리도 의논하며 정을 쌓아갔습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선생님은 셋이 한번 뭉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저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는데, 브레인 트레이닝을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기들은 이미 참여했는데,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기고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좋아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제안을 혼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며칠 뒤, 선생님은 브레인 트레이너와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브레인 강사는 각종 도구를 가지고 와서 저의 뇌파를 검사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저의 대답은 차곡차곡 강사의 노트북에 저장되었고, 며칠 뒤에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강사는 제 심리 상태에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심한 우울증이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영성이 위태로운 상태라서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영성이 깊으면 우울증 치료에 좋다는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이들보다 저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너무 돌보지 않은 것 같다며 매일 자신에게 선물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우울증 극복의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맛있는 밥도 사줄 수도 있고, 오후의 한가함을 선물하는 것도 좋다면서 여러 가지 실천 사례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매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그림치료도 하고 도형치료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먼저 이 과정을 거친 두 사람이 저를 격려했고 잘 해낼 거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의 브레인 트레이닝 과정은 하나씩 데이터로 쌓였고, 저는 그 자료가 좋은 일에 잘 쓰이길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브레인 강사가 저랑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른 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강사는 먼저 MBTI와 영성훈련을 함께 병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강사도 저를 소개한 선생님들과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모두 자신에게 지도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은 주로 젊은이들을 지도하는데 그중에는 목회자 자녀들도 많고 명문대 학생들도 여러 명 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강사는 성경을 아주 잘 아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을 비유로 풀어서 설명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흥미진진했습니다. 두 번째 강사는 하느님께서 저를 무척 사랑하셔서 중요한 일을 맡기려고 하시는데, 제가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고, 지금 이 과정을 통해 준비하기를 원하신다고 하면서 자신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베드로 전서 2장 9절개역한글성경의 왕 같은 제사장 역할을 할 거라면서 저를 부추겼습니다.
두 번째 강사의 말은 제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마치 온 세상이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게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제가 반짝이는 것 같다며 좋은 일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브레인 트레이닝에 대해 들려주었고, 엄마들은 아이들에게도 그 과정을 받게 해주고 싶다며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친언니에게도 브레인 트레이닝을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신앙심이 깊고 또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는 눈치가 매우 빨랐습니다. 저의 변화를 수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언니는 브레인 트레이닝이 이상한 것 같다며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성경공부는 성당에서 허가한 곳에서만 하는 것이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는 언니가 이 재미있는 걸 왜 못하게 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언니에게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언니를 속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두 번째 강사에게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온누리 교회에 다니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계속 찜찜했습니다. 언니의 말이 시시때때로 생각났습니다. 그런 상태로 저는 부활판공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고해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초심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11년 전 겸손한 자세로 기도드리던 제 모습은 사라지고 세상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만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주님께 지혜를 청했습니다. 묵주기도도 다시 시작하고 수시로 성호를 그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저 자신을 찾아가던 중에 우연히 교회에 다니는 지인을 만났습니다. 제 입에서는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저는 그분께 혹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몇 년 전에 센터하는 곳에서 7개월간 공부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신천지였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그런 곳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온누리 교회에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친구는 온누리 교회에서도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며 자기도 신천지의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당장 브레인 트레이닝을 그만두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부터 제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에 관한 정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다큐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로 가족들은 해체되었고 자신마저 황폐해졌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이 모두 저에게 쓴 방법들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얼마나 변변치 못하면 그런 것에 속을까 싶었는데, 그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저는 즉시 두 번째 강사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속인 두 사람에게 연락했습니다. 두 사람은 저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에 더욱 놀랐습니다. 그리고 신천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미혹시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다가와서 약 2개월 동안 여러 가지 심리 테스트를 겸해 성경공부를 시키고 센터라는 곳으로 넘겨 120시간 정도 교육한 뒤 신천지 교인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센터 교육을 마칠 때쯤 자신들이 신천지라고 밝혀도 이미 세뇌 되어 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신천지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마약중독자들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저를 소개한 두 선생님은 저를 끝까지 붙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저도 두 선생님이 너무나 가엾습니다. 진짜처럼 꾸민 거짓에 속아 인생을 낭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천지의 실체를 알고 나면 '뭐 이런 게 다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기막히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신천지에 빠져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저는 무릎을 끓고 신천지의 미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몇 달 동안 저에게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전하면서, 누군가 설문지나 성격검사를 하라고 하면 경계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대일 성경공부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도 강조했습니다. 요즘은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겪은 일을 들려주면서 조심하라고 합니다. 제가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마다 조용히 저를 이끌어 주시는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