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두 곳의 대략적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사를 대략 공부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는... 콘스탄틴이 로마국교를 정하기 이전까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집니다.. 그중 대략 타락한 교회쪽은 콘스탄틴에 합류하고... 순수한 교회쪽은 콘스탄틴에 합류하지 않고 내려옵니다...
콘스탄틴에의하여 혼합된 기독교는 카톨릭이란 명명으로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그중에는 마리아 사상이라든지.. 성인 사상이라든지.. 면죄부라든지... 암튼 그런 교리들과 유전들로 가득찹니다(원문 : 알렉산드리아 원문계열이자 네슬-알란드판계열).. 그러면서 대략 1500년대에... 카톨릭의 사제였던 루터와 칼빈 등등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루터쪽은 루터교... 칼빈쪽은 장로교... 대략 기백년 이후쯤인가(?)에 영국국교회에 속한 요한 웨슬레와 찰스웨슬레가 복음을 전도하러 갔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고.. 회심을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서.... 감리교가 생겨나게 됩니다....
암쪼록, 초대교회의 한 부류 곧 콘스탄틴에 붙은 부류의 대략 1700년 교회사를 간략한 도식으로 설명드렸습니다...
이젠 반대쪽 교회의 부류를 보겠습니다.. 이들의 경우에는... 카톨릭처럼 조직적 체계를 갖거나 거대한 종교적 모양세를 가지고 있지를 않아서.... 솔직 뚜렷한 무슨 거시기 함을 말하기는 조금 그런 면이 있을듯 싶습니다..
암쪼록 이들은 세계각국에 흩어져 있으면서 국가별로 지역별로 성경을(원문 : 표준원문계열) 가지고 교제와 교통을 하면서 수천년을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카톨릭부류에 의해... 상당량의 핍박과 고난을 당하며... 급기야 AD1000~1200년 사이에는 엄청난 피의 숙청이 자행됩니다.. 이들을 왈도파라고도 불리웠으며.. 흔히는 재침례파라고 불리웠습니다만... 그들은 카톨릭에 의해 천기백년동안 대략 7천만명 정도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종교개혁가들과도 초창기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종교개혁가들과도 그다지 좋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으며.. 종교개혁가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습니다.. 암튼 이들이 재침례파라는 부류입니다...
그리고 영국에는 국교회가 생기고.. 이때 영국국교회를 향한 재침례파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양분이 생기는데.... 이때 재침례파를 지지하는 쪽이 있었고... 영국국교회도 인정하자는 그런 뉘앙스의 쪽도 있었는데... 영국국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파들이 모여 만든 것이 침례교의 유래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침례교는 실상 재침례파와는 근본 뿌리와 첫 출발부터 달랐고 분리되어 출발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여기까지가 예수님 이후 사도교회로부터 시작된 근2천년 동안의 교회사에 대한 대략적 흐름임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영국인지 미국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략 30여년전 쯤에 한 선교사가 한국에 옵니다.. 그 선교사의 이름은 '딕욕'이라는 선교사였는데... 그가 와서 여러명의 제자들을 삼고 선교학교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박옥수목사이며 권신찬 목사 그리고 이요한 목사등등이 있습니다.. 모두 한 선교사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크게 세파로 나뉘어지는데.. 권신찬목사를 중심으로하는 한국기독교복음침례교회라는 부류이고... 박옥수목사를 중심으로하는 기쁜소식선교회가 있으며... 이요한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생명의말씀선교회가 있습니다.. 이 두부류가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을 걸고 있습니다...
권신찬목사 쪽은 인원수로는 가장 많으나 상당 와해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별로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박옥수목사쪽과 이요한목사쪽의 두 곳에 대하여 잠깐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두 곳은 구원론에 있어서 상당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며... 오직 이 은혜의 공로와 그분의 행하심 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할 것이 전혀 없다.. 오직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라는 방향입니다.. 전 이런 방향성의 구원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내용면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그리고,
이 두 부류는 방향면에서 비슷한 구원론을 가지나... 내용면으로 들어가면 조금은 다른 측면이 있는듯 싶습니다.. 박옥수목사계열에서는... 죄에서의 구원문제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로 오염되었으며.. 이렇게 죄로 오염되게하여 우리로 죄인되게 한 이 '죄'로 부터 구원받는 것이 진짜 구원이고... 예수님은 바로 이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믿음도.. 이 '죄'에서 구원받은 것을 믿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박목사쪽에서는... 죄인이라하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로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죄인되게한 죄에서 구원받았으면... 죄에게서 벗어난 상태인데... 어찌 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에게서 벗어났는 것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죄에서 벗어났으니... 이젠 죄인이 아니라.. 그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자가 진짜 복음을 발견한 자라는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 죄문제에 대해서는.... 요한1서에서 말하는...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라는 말씀을 액면그대로 말씀의 문자그대로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죄를 사함받았는데.. 자백해야 사함받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요한1서의 핵심주제인.. 교제측면으로 돌립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어둠이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통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러한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허물이나 범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사하심이라는 의미도... 곧 교제가 회복된다는 표현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분명 요한1서는 이 교제와 교통의 회복문제를 다루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1서1장 9절은 그런 목적적인 측면만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좌로가든 우로가든 목적지만 제대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지만... 성경은 그 목적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그 길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를 자백해야 된다는 것이고.. 그 죄를 자백했을때에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요1서1장 말씀을 나누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니.. 혹 다음기회로 넘기겠습니다만.... 암튼 기쁜소식선교회쪽은 제 나름 관점으로 말씀드리면.. 구원론의 어떠한 방향면에서는 정확하고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 있어 상당한 오류가 있고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요한1서1장9절은.. '죄(Sin)'가 아니라 '죄들(Sins)'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죄와 죄들은 성경에서 비슷하면서도.. 또한 다른 무엇입니다.. 그러나, 기쁜소식선교회에에 있어서는... 이 분별이 전혀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전혀 엉뚱하게 주장하고 적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때론 자의적인 해석들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이제 두번째 이요한목사의 생명의 말씀선교회를 보겠습니다.. 구원의 방향면에서는 역시 동일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의 은혜만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신 것이며.. 오직 이 은혜를 믿음으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방향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구원론의 방향은 틀린게 아니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쪽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조금다른 측면은... 생명의말씀선교회쪽은... 죄의 자백 문제에 대하여... 기쁜소식선교회처럼... 지나치게 죄인되게 한 '죄'라는 한정으로 몰고가는 일은 없는듯 싶습니다.. 우리가 혹 죄를 지었을때..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해야하고.. 그럼으로써 주님께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 그리고 우리와 우리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고.. 교제가 회복된다는 방향으로 주장하는듯 싶습니다.. 이 말과 저말이 거기서 거기같아도.. 전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암튼.. 일명 구원파로 불리우는 교회가 세 부류가 있는데... 그들은 비슷한 면도 있으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조금씩은 진리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 가운데에서 보고 판단하기로는... 저는 이들의 무리가 신앙면에서는.. 재침례파의 후예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회의 형식이나 이런 면에서는 중세시대 고대시대의 재침례파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가 보이는듯 싶지만.. 그래도 진리적인 측면에서는 전체적 기준으로 재침례파와 가장 가깝지 않나 저는 봅니다..
그 외에도... 비슷한 부류에는 웟치만니와 윗트니스리를 중심으로 한 지방교회도 있으며... 드와이트 뮐러나 허드슨테일러 등등의 형제회쪽도 있고.. 앤드류머레이, 제시펜루이스 같은 속생명파에 속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 분들과 단체들은 진리면에서... 예수교침례회와 상당히 일치되고 공통된 면들이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견지하에서는... 넓게 보면... 이 모두가 동일 부류에 속한다고 저는 봅니다...
대략적인 소개를 드렸는데..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암쪼록.. 다음에 더 깊은 부분도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세상 죄는 죄(열매)들을 열리게 하고, 하나님의 의는 의(열매)들을 맺게 한다. 죄(열매)들은 몸의 죄로 말미암 생겨나고, 의(열매)는 성령의 의로 생겨 나는법 그러면 죄가 사함 받아 없으면 죄로 말미암아 생기는 죄의 열매도 무효라 오늘 내가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한것이 아니라 죄가 한것이 되는법 .......율법에서 해방된자는 율법이 없는법 그러면 율법이 없는곳에 죄도 없는법......믿는자가 아직도 자기가 죄로 말미암아 생기는 죄들이 내가 한짓이라 믿는자는 사실 진리를 알지 못하는자...그러니 죄들에 대하여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죄가 항상 주관하는 죄의 종이라
'율법이 없는 곳에는 죄가 없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을까요? 있으면 제게 보여주시면 고마울듯 싶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다'(롬5:13).. 죄는 율법의 유무와는 상관이 전혀 없답니다.. 성경은 십자가와 관련하여... 두가지 측면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이요 둘째는 씻음과 관련된 피의 문제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자아와 관련되고... 씻음은 죄들과 관련됩니다.. 성경은 섬세합니다.. 이 섬세함을 사람이 마음대로 두둘겨 뭉쳐도 관계없다는 것은.. 그 섬세하게 하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된답니다..
귀한 자료입니다
죄가 모세의 율법이 오기전에도 있었지요.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자기에게된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무어라 합니까?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 : 20] 이스라엘은 자기가 자기에게된 율법에다 모세의 율법이 더해지니 법이 이방인보다 더 많아 졌지요.......그러니 법이 많으니 죄도 더 짓는법 지금도 죄가 많았다고 하는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도 더 합니다. 사함받은 죄가 더 많으니 말입니다.
귀하신자료 너무 좋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 : 56]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 : 15]
율법을 범하는 자를 무어라 합니까? 죄를 지었다 하지요
고로 율법이 없으면 율법을 범하지 못하니 죄를 짓지 못 하는 법
쉽게 예를 든다면 오늘부터 교통법규가 없다면 교통법규를 어기는 죄가 없는 법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고 율법은 나에 대하여 죽었도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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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내리>님과 <임마느엘>님은 두 분이 사상이 비슷하신 듯 합니다. 늘상 보면 살며시 비틀어서 성경모양새를 취하는 듯 결국은 벗어난 자기만의 해석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보시죠~! 이번에 또 무엇을 비틀었나.
로마서 2장 12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죄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 말씀처럼 율법이 없었던 시대에서 범죄한 자에게는 율법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적용하여 심판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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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15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신 것과 같이 바로 양심의 적용으로 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양심이 달라서 사람의 기준으로는 누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만,
하나님은 중심을 훤히 꿰뚫어 보시기에 그런 이들에게는 양심심판을 적용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로마서 5장 13절에 보시면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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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를 주셨는데요, "교통법규가 없다면 교통법규를 어기는 죄가 없는 법"이라고 하셨는데요,
아닙니다! 위 말씀처럼, 법규가 없다보니 그 법규를 어기고 살아도 그것이 죄인줄 모르고 죄를 지으며 살아간 것입니다. 단지 이들에게는 교통법규가 아닌, 양심을 적용하여 심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로, <율법이 없으면 율법을 범하지 못하니 죄를 짓지 못하는 법>이라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제시하신 롬4:15절의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는 무슨 말일까요? 8절에 그 답이 나와있습니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멘?
성경은 죄와 범함을 같이 보지 않는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다는 것과 범함이 없다는 것을 같게 보시면 않된답니다.. 그리고 한가지 빛내림님께서 간과하시는 부분이 계신듯 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답니다.. 만약 범함의 문제.. 범죄의 문제가.. 율법이라는 법의 잣대에서 기준한다면... 그 율법이 폐지되고 없어진다면.... 당연히 그 율법에 대한 범함은 없으며.. 범죄도 성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답니다.. 성경은 의문의 죽은 율법에서 벗어난 자는 새로운 법 곧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로 들어가게 된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서는 비록 범함이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는 얼마든지 범함과 범죄가 성립된다는 의미랍니다.. 요한1서1장의 말씀은 율법적 기준에 의한 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에서 벗어난 모든 범함들이 이에 해당된답니다..
요한1서1장은 모든사람이 죄인이라는 거듭나지 못한 육(육에속한 사람)의 상태를 말합니다.
2장은 죄를 짓지 않는방법을
3장은 믿는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물과성령으로 거듭난 영(영에속한 사람)의 상태를 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