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78
■ 1부 황하의 영웅 (78)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 11장 떠나가는 배 (9)
송(宋), 노(魯), 위(衛), 채(蔡) 나라의 4개국 연합군을 지연작전으로 막아낸 정나라 제족(祭足)은
그 후 대릉에서 신정으로 돌아왔다.그러나 역성의 정여공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는 어떻게 하면 정여공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제(齊)나라만 동맹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정나라와 이웃한 네 나라인 송, 노, 위, 채나라는 모두 정여공을 지지하는 반(反) 정소공파였다.
한마디로 정나라는 주변 제후국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 국면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동방의 대국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어 그로 하여금 이 네 나라를 견제케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제(齊)나라가 정(鄭)나라와 동맹을 맺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가능하겠소?“"최대한 노력을 해보는 수밖에요.“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제족(祭足)은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지난날 제나라가 기(紀)나라를 쳤을 때 정여공은 기나라를 도운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제희공의 복수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이후로 제(齊)나라는 정여공을
원수처럼 미워했다.제족(祭足)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그 정여공을 치는 일입니다.
지금의 정(鄭)나라 임금은 제희공이 사위로 삼으려 했을만큼 아끼던 정소공입니다.
도와주십시오.제족은 제양공(齊襄公)에게 이렇게 말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제족(祭足)의 복안을 들은 정소공은 비로소 불안한 기색을 씻어버렸다.
"예물을 아끼지 말고 듬뿍 가져다 바치시오.
제(齊)나라만 우리를 도와준다면 정여공은 물론 송(宋)나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소."
며칠 후
제족(祭足)은 열 대의 수레에 황금과 구슬과 비단 들을 나누어 싣고 직접 제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그런데 이것이 제족에게 있어서, 아니 정소공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될 줄이야!
제족(祭足)의 지혜는 천하가 알아줄 정도로 뛰어나다.
그동안 정소공이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신정으로 돌아와 복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정여공의 저항에 대응하여 군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제족(祭足)의 지혜
덕분이었다.이번의 임치행 또한 정소공의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한 때문이 아니던가.
확실히 그것은 가장 효과적인 외교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러나 옛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 꾀 많은 자가 천 가지를 생각할지라도 반드시 한 가지 실수는 있다.
천려일실(千慮一失).바로 제족을 두고 한 말인 듯 싶다.그는 정소공을 위해 정여공만 방비할
생각을 했지,바로 눈앞에 또 다른 적(敵)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정소공이 귀국하여 다시 군위에 올랐을 때 속으로 가장 불안에 떨었던 사람은
대부 고거미(高渠彌)였다.그는 정소공과는 악연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관계가 나빴다.
정장공 시절, 고거미가 대신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세자이던 정소공이 반대를
하면서부터 그 악연은 시작되었다.그 후 제족(祭足)이 정소공을 몰아내고 정여공을 들여 앉힐 때
고거미는 제족의 집에서 칼까지 쓰다듬으며 다른 대부들을 위협할 정도로 정소공 축출에 앞장섰었다.
누구보다도 그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는 고거미(高渠彌)는
복위한 정소공이 언제 자신에게 보복의 칼을 들이댈지 몰라 늘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보복당할 두려움을 제거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상대를 해치우는 방법이다.
그는 겉으로는 정소공에 순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자객들도 이미 끌어모았다.고거미에게 제족(祭足)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가 정소공 곁에 버티고 있는 한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거미는 제족(祭足)의 눈을
딴 곳으로 돌릴 일만 궁리했다.그런 중에 제족 스스로가 사신이 되어 제(齊)나라로 떠나간 것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거미(高渠彌)는 소리없는 웃음을 지었다.
먼저 비밀리에 채(蔡)나라에 망명해 있는 공자 미를 불러들여 자기집에 숨겨두었다.
공자 미는 예전부터 고거미가 지지하던 사람이었다.마침 겨울로 접어들면서 증제(烝祭)할 때가 되었다.
증제란 겨울철, 즉 12월에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납제(臘祭)라고도 한다.
당시 제사는 임금의 주임무 중 하나이다.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리인을 내세울 수 없다.
고거미(高渠彌)는 바로 이 증제날을 거사일로 잡았다.제삿날이 되자 정소공은 궁인들을 거느리고
신정 성문을 나섰다.정소공을 태운 수레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별안간 복면을 한 도적들이 양편 언덕 뒤에서 달려나와 정소공의 수레를 에워쌌다.
"웬놈들이냐?“정소공이 놀라 소리쳤으나 도적들은 아무 말없이 수레 위로 올라타 칼을 휘둘렀다.
정소공은 어깨에 칼을 맞았다.몸을 움츠리며 좌우를 향해 소리쳤다.
"누가 나를 위해 도적들을 물리칠 것인가?"그러나 제사를 올리기 위한 행차였다.
대부분의 수행원들은 궁 안에서 일하는 잡인일 뿐 무기를 지닌 병사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병사들조차 이미 반은 도적들의 칼에 맞아 죽고 나머지 반은 목숨을 구해 줄행랑을 친 뒤였다.
다급해진 정소공은 수레에서 뛰어내려 수레 밑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도적들의 긴 창이 마구 찔러댔다.단칼에 목이 베어졌으면 고통이나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소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느라 10여 군데나 깊은 상처를 입었다.
결국 그는 무수히 난자당한 끝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본국으로 돌아온 지 채 3년도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고거미(高渠彌)는 공자 미를 앞세워 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모든 신하를 불러 정소공의 죽음을 선포하고 공자 미를 새 군주로 받들어 모시니,
정나라 정권은 하루아침에 고거미(高渠彌)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공자 미는 자미로 불리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시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가들은 이때의 일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정소공은 세자 시절부터 고거미(高渠彌)가 흉측한 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두 번이나 군위에 있으면서 그를 제거하지 않다가 끝내는 자신이 먼저 재앙을 당했다.
이것은 오로지 정소공의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정소공을 살해한 고거미(高渠彌)를 욕하기 보다는 고거미를 먼저 제거하지 못한
정소공을 비웃고 있는 것이 재미나다.당시의 시대풍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일면이다.
그 무렵,제족(祭足)은 임치성에 머물며 제양공을 상대로 정소공을 위한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지략가이기도 했지만 화술도 좋았다.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제양공을 설득해 동맹을 맺고,
정여공을 치려는 정소공을 적극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중에 정나라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 정소공이 교외로 나갔다가 자객들에게 살해되고, 대신 공자 미가 군위에 올랐습니다.
자객의 배후가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제족(祭足)은 고거미가 주범인것을 직감했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공자 미가 군위에 오른 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정소공 외에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가?“소식을 전해주러 달려온 가재(家宰)에게 물었다.
"정소공 말고는 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고거미(高渠彌)는 오로지 정소공만을 제거했을 뿐 다른 신하들에 대해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대부들을 적으로 돌리면 정권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정나라로 돌아가도 무방하겠구나."
제족(祭足)은 고거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제족과 고거미는 정적(政敵)관계는 아니었다.오히려 정여공 시절에는 둘도 없는 동반자였다.
정소공이 복위하면서 고거미(高渠彌)의 행동이 위축되기는 하였으나, 제족과는 아무 말썽이 없었다.
굳이 제족(祭足)을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더욱이 정나라 내에서의 제족(祭足)의 기반은 공실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제족을 제거하려거나 정적으로 삼는 것은 곧 경대부(卿大夫) 전체를 적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였다.고거미쯤 되는 자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어쩌면 제족(祭足)을 제거하려
들기는 커녕 반대로 제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마음이 더 강할지도 몰랐다.
정소공 외에는 일체 다른 대부들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생각되자 제족(祭足)은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제족(祭足)의 예측은 정확했다.고거미(高渠彌)는 제족의 귀국을 성대히 맞아주었다.
이로써 제족(祭足)은 변함없이 정나라 국정을 책임지는 제1인자 자리를 유지했고,
고거미는 일약 제2실력자로 부상했다.
79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