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장편소설『안나 카레니나』(연진희 역, 민음사, 2020)는 전체가 3권 8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제 2권 제 5부 20장(p.552~563)에만 '죽음'이란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소설의 전편을 관통하는 '죽음'이란 명제는 주로 안나 카레니나와 알렉세이 브론스키를 둘러싸고 수시로 명멸(明滅)하곤 했는데, 이 장에서는 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죽음'이란 부제를 갖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니...
형 니콜라이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레빈이 형에게 가려 하자 키티도 막무가내로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형의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키티는 병자를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침대 시트를 가는 등 정신없이 환자 간호에 힘쓰고 남편에게 의사를 데려 오라고 다그친다. 공작의 막내딸로 곱게 자란 키티가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어려운 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치우니 레빈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수밖에...
환자 수발에 온 힘을 쏟다 마침내 키티는 과로로 인해 병을 얻어 쓰러진다. 이윽고 레빈의 안타까운 바람과 키티의 정성어린 간호를 뒤로 하고 형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병상에 누운 키티를 진찰한 의사는 병을 얻은 게 아니라 임신이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죽음과 탄생은 같은 시각, 같은 방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 진실로 삶과 죽음은 깻잎 한 장 차이가 아닐까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이웃 일본이나 베트남의 마을에 가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죽은 자의 집인 묘지가 산 자의 집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죽음과 삶은 깻잎 한 장 차이의 경계가 있는 게 아니라 아예 경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데...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 시인이었던 고바야시 잇사(小林 一茶)는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파리 쫓는 것밖에 없다는 삶의 허망함을 한 줄로 묘사하고 있다.
곁에서 파리 쫓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가(寝すがたの蠅追ふもけふがかぎり哉)